“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최초의 인간은 이렇게 말했다. 그 이후로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다. 영화 <퍼스트맨>은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신화와 전설의 대상이었던 달을 이성과 합리의 영역으로 끌어온 이 사건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위플래쉬>(2014)와 <라라랜드>(2016)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달 착륙의 역사를 소회하며 팡파르부터 터뜨릴 생각이 없다. 그의 신작 <퍼스트맨>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에 앞선 수많은 악전고투에 대한 기록이자 우주탐사의 새로운 챕터를 연 최초의 인간이 경험했던 고독한 탐험에 대한 이야기다.
하강 20초 전. 영화 <퍼스트맨>은 초음속 항공기 X-15의 시험비행을 진행하는 조종사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의 얼굴로부터 시작된다. 예정대로라면 하강을 시작해야 했을 항공기는 수직으로 상승하더니 급기야 대기권을 벗어나려 한다. 금세 항공기가 폭발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굉음과 한계치를 넘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계기판의 바늘, 날개에서 광폭하게 뿜어져나오는 증기.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조명한 시험비행의 풍경은 두렵고 난폭하다. <퍼스트맨>은 이 비행 장면의 대부분을 조종사 닐 암스트롱의 시점으로 그려낸다. 관제센터의 지시에 의지해 밀폐된 조종석에서 사투를 벌이던 닐은 가까스로 X-15를 모하비사막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한다. 오늘은 무사했지만 내일은 어떨지 알 수 없다. 그런 두려움을 감내하며 기술의 진보를 앞당기는 데 헌신해온 사람들 중에서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은 ‘퍼스트맨’이 탄생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아버지’ 닐 암스트롱의 상실감
<퍼스트맨>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동명 전기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달에 다녀온 뒤 미디어에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렸던 닐 암스트롱은 오직 항공우주기술의 역사를 연구해온 학자 제임스 R. 핸슨 박사에게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핸슨 박사는 여기에 암스트롱의 가족과 친구, 동료들과 우주 전문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더해 그의 전기 <퍼스트맨>(덴스토리 펴냄)을 집필했다. 이 책에는 한국전쟁에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암스트롱의 대학 시절 에피소드와 달 착륙 당시 처음으로 달에 발을 내딛는 ‘퍼스트맨’이 되고 싶어 했던 동료의 시기 등 개인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위플래쉬>와 <라라랜드> 사이, 영화 <퍼스트맨>에 합류한 데이미언 셔젤은 인류 최초의 달 탐사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미국인 닐 암스트롱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데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기 전, 모든 것들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던 시대에 “작은 정어리캔 같은 우주선에 사람을 태우고,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지 못한 미지의 공간으로 그들을 쏘아올린” 역사적 모험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다시 말해 <퍼스트맨>은 우주탐사의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업적 이면에 위치한, 발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에 대한 영화다. 그 중심에는 아폴로 11호의 선장이자 미국항공우주국(NASA, 이하 나사)의 유능한 엔지니어였던 닐 암스트롱이 있다.
영화 <퍼스트맨>은 1962년 닐 암스트롱이 나사에 합류하던 시점부터 1969년 그가 달에서 지구로 돌아온 시점까지, 암스트롱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던 7년간의 시기에 초점을 맞춘다. 닐 암스트롱은 NACA(나사의 전신)의 엔지니어 겸 시험 비행 조종사로, 대기권을 넘어 우주로 가기 위한 시험비행을 계속한다. 혁신적인 기술로 만든 기계의 결함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주요 임무로, 암스트롱은 회사와 집을 오가며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그에게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랑하는 딸 캐런의 병이다. 1962년 뇌종양으로 두살배기 딸 캐런을 잃은 그는 마음속에 딸을 영원히 묻는다. 원작 도서 <퍼스트맨>에 따르면, 자제력이 강하며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던 암스트롱은 딸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의 전기에서조차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아버지로서 그가 느꼈을 상실감에 주목한다. 동생의 장례식인지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들을 뒤로한 채, 어두운 방에 홀로 남은 암스트롱은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의 그림자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암스트롱의 시야에 머무른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야말로 닐 암스트롱이 나사의 우주비행사에 지원한 가장 큰 계기가 아니겠냐고, 영화 <퍼스트맨>은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우주탐사를 다룬 영화로서의 이 작품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다. 달 탐사라는 거시적이고 대의적인 소재를 닐 암스트롱이라는 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여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사의 우주인 면접에서, 우주행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시험관의 질문에 암스트롱은 이렇게 대답한다.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은 달라집니다. (중략) 아마 우주에 가게 된다면 우리가 오래전에 보아야 했으나 미처 보지 못했던 뭔가를 볼 기회가 있겠죠.” 영화가 전개될수록, 우리는 암스트롱의 이 말이 단순히 우주탐사가 중요한 이유에 대한 답변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싶었던 건, 푸른 별 지구뿐만이 아니라 자신이기도 하다.
영화는 역사적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보여주기 전, 닐 암스트롱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세계의 풍경을 사실적인 필치로 보여준다. 우주 경쟁에서 러시아에 뒤처지고 있다는 열패감이 팽배한 가운데, 나사의 우주비행사들은 걸핏하면 오작동을 일으키는 기계 속에 몸을 누인다. 그들 앞에 활짝 열린 우주비행선의 입구가 뚜껑이 열린 관처럼 느껴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주인의 잔혹한 임무를 사실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곧 이 영화의 미학이 되었다는 프로듀서 마티 보웬의 말처럼, <퍼스트맨>은 우주선에 밀착한 카메라를 통해 발사부터 비행에 이르기까지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인들이 마주하는 두려움과 위기의 순간들을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영상으로 그려낸다. <인터스텔라>(2014)와 <덩케르크>(2017)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네이선 크로리는 1960년대 당시의 투박했던 우주선을 실제 사이즈와 비슷하게 구현했고, 닐 암스트롱을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을 비롯해 우주비행사로 출연한 배우들은 이 우주선에 탑승한 채로 이륙 장면을 촬영했다. 이들이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실제로 제미니 8호와 아폴로 11호가 우주에서 촬영한 대기 영상으로, LED 스크린을 활용해 우주인들이 내부에서 지켜봤을 대기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촬영감독 라이너스 샌드그렌(<라라랜드>)의 선택이었다. 그가 핸드헬드 촬영으로 담아낸 신묘하고도 광기 어린 우주비행의 순간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순간을 목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체감하게 만든다.
암스트롱의 세계에서 나사와 더불어 중요한 한축을 차지하는 건 가족이다.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탐구하고 모험하다가 갑자기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우주비행사들이 느낄 법한 정서의 괴리는 <퍼스트맨>을 통해 데이미언 셔젤이 반드시 보여주고자 했던 요소였다(그는 이 영화의 목표가 달과 주방의 싱크대를 잇는 것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는 거의 모든 순간 비정상적으로 침착한 암스트롱보다 그에 대한 아내 자넷(클레어 포이)의 반응을 통해 이러한 정서적 괴리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목표가 뚜렷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는 이유로 암스트롱과 결혼한 자넷은 남편이 우주비행사라는 이유로 수많은 상실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친하게 지내던 우주비행사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잃고 정신을 놓아버리는 상황을 목격한다거나 훈련 중 부상으로 피투성이가 돼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자넷은 안으로부터 서서히 무너진다. “못 돌아올 확률이 얼마나 돼?” 아폴로 11호의 탑승을 준비하는 남편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고야 마는 자넷의 얼굴은 결연하면서도 무력하다. 가족의 희생은 탐험가로서의 암스트롱을 고통스럽게 하는 가장 큰 대가다. <위플래쉬> <라라랜드> 등의 전작을 통해 개인의 성취에 수반되는 대가와 희생의 서사에 주목해온 데이미언 셔젤의 관심사는 영화 <퍼스트맨>에서도 이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표출된다.
재즈 뮤지션의 숙명을 다룬 <위플래쉬>와 뮤지컬영화 <라라랜드>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던 음악에 대한 데이미언 셔젤의 애정은 <퍼스트맨>에서도 여전하다. 그의 대학 시절 동기이자 <라라랜드>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저스틴 허위츠가 작업한 <퍼스트맨>의 음악은 암스트롱이 우주탐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순간부터 빛을 발한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미국의 2인승 우주선 제미니 8호와 에이지나 로켓이 도킹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클래식한 왈츠 선율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에 대한 오마주처럼 느껴진다. “지구에서의 삶을 초월한 암스트롱의 슬픔을 표현해달라”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주문에 따라 초월적이면서도 애상적인 느낌을 주는 전자악기 테레민을 선택한 저스틴 허위츠는 테레민의 이질적인 사운드를 달 착륙 시퀀스에 활용했다. 암스트롱의 눈에 비치는 달의 풍경은 저스틴 허위츠의 표현대로 “외롭게 느껴지면서도 아름답다”.
가정집에서 달나라에 이르기까지
테레민 선율이 흐르는 달 착륙 시퀀스는 다큐멘터리적인 필치로 진행되던 <퍼스트맨>의 시네마틱한 아름다움을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데이미언 셔젤은 불필요한 대사나 설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우주인들이 미국 깃발을 달 표면에 꽂는 장면은 스치듯 지나간다-지구에서 온 방문객의 눈에 펼쳐진 이계의 풍경을 광활하게 펼쳐 보인다. 암스트롱과 그의 동료 버즈 올드린이 비좁던 우주선의 문을 열고 달에 ‘위대한 도약’의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들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모든 장면은 65mm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현존하는 영화기술 중 가장 거대한 화면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촬영감독 라이너스 샌드그렌은 “실제 세계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인 달의 풍경을 관객이 체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적막하고 광활한 이 공간은 닐 암스트롱에게 있어서 내면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실존 인물 닐 암스트롱은 이후 자신의 전기를 통해 세간의 짐작과 달리 달 표면을 처음 밟은 우주인들에겐 그 순간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고백했지만, 영화 <퍼스트맨>은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달 표면을 밟은 최초의 인간에게 새로운 전설을 부여한다. 잿빛 달을 배경으로 지구에 남겨둔 이들을 위해, 더이상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의 의식을 치르는 암스트롱의 모습은 ‘최초의 인간’에 걸맞은 숭고함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는 달에 착륙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에 착륙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데이미언 셔젤은 주연배우 라이언 고슬링에게 영화 <퍼스트맨>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한다. 주인공 닐 암스트롱이 겪게 되는 내면의 여정이 그가 온갖 역경을 딛고 달에 착륙하는 것보다 더 험난하다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퍼스트맨>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을 이룬 역사적 사건을 닐 암스트롱이라는 개인의 사적인 여정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다. 다만 그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숭고한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달로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사적으로 추측되는 동기 외에 충분히 얘기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가정집의 부엌에서 달나라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스케일을 자유롭게 확장하는 데이미언 셔젤의 대담한 연출은 그의 행보를 여전히 궁금하게 만든다. <퍼스트맨>은 <위플래쉬>와 <라라랜드>가 우연한 행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데이미언 셔젤의 또 다른 수작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