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뉴욕영화제에서 만난 알폰소 쿠아론 감독 - <로마>는 천국과 지상에 대한 이야기다
2018-10-25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알폰소 쿠아론 감독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로마>를 뉴욕영화제에서 만났다. 쿠아론 감독이 <칠드런 오브 맨>(2006)의 후속작으로 기획했으나, 12년 뒤에야 결실을 보게 된 <로마>는 그의 어릴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영화다. 자신을 키워준 유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쿠아론 자신이나 그의 가족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배급을 맡아 오는 12월 14일 미국 내 일부 극장에서 한정 개봉하며, 동시에 전세계에 스트리밍될 예정이다. 영화제 기간 중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전한다. 이 자리에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유모 클레오 역의 얄리차 아파리시오, 어머니 소피아 역의 마리나 데 타비라가 참석했다.

-언제부터 <로마>에 대해 생각했나.

=알폰소 쿠아론_ 어릴 적부터 늘 생각했던 것 같다. 12년 전 <칠드런 오브 맨>의 후속작으로 <로마>를 연출하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인생이 그렇듯이 당시 연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된 것 같다. 아마도 그땐 정서적인 도구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말의 의미를 좀더 자세히 얘기해달라.

알폰소 쿠아론_ 나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감정적인 도구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개인적인 결정이 아니다. 어쩌면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무언가를 놓아버린다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정서적 안전장치 없이 영화 작업을 시도했을 때야말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배우들에게 질문한다. <로마>에 출연한다는 건 일반 영화와는 다른 작업 과정이었을 것 같다.

=마리나 데 타비라_ 배우로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작업이었다. 물론 알폰소는 가지고 있었지만, 배우들은 시나리오 없이 촬영을 해야 했다. 매일 알폰소가 배우들에게 개인적으로 오늘 촬영에서 어떤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는 얘기를 해줬고, 우리가 함께 모여 작업하면서 ‘매직’과 ‘인생’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 거꾸로 작업하는 느낌이었다. 본래 배우로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캐릭터와 상황에 대한 분석인데, 전혀 그럴 수 없었으니까. 마치 현실 같았다. 인생을 살다보면 생각지 못한 놀라운 순간들이 많지 않나. 그렇게 받아들였다.

알폰소 쿠아론_ 촬영을 영화의 순서대로 했다. 마리나의 말처럼 배우들이 매일 그날의 일에 대해 배우면서 연기하도록 했다.

=얄리차 아파리시오_ 무척 복잡했다. 첫 작업이었기 때문에 촬영 중에도 내가 영화를 찍고 있다는 것을 잊도록 노력했고, 실제 상황이라 생각하도록 노력했다. 감독님이 각본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 인생을 사는 것처럼 작품에 임했다.

알폰소 쿠아론_ 덧붙이자면 얄리차에겐 유모라는 역할에 대한 촬영 내용을 이야기해줬지만 다른 캐릭터들이 그녀가 맡은 역할을 하기 힘들게 여러 방향으로 다른 지시나 부탁을 해서 무척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얄리차는 촬영이 처음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더라. (웃음) 또 얄리차는 대사 대부분이 본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미스텍어(멕시코의 아메리칸 인디언 언어)로 돼 있어서 가정부 아델라를 연기하는 낸시(가르시아)와의 대화 내용을 매일 습득해야 했다. 낸시는 미스텍어에 익숙한 배우였다.

-극중에 지진과 화재, 바다 등 자연이 소재로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알폰소 쿠아론_ 질문 그대로 다양한 자연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로마>가 천국과 지상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은 바닥에 고인 물에 반사된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천국이 물에 반영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거지. 하지만 물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모두가 물속에 잠기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처음으로 하늘을 전체 프레임에 담는 것이다. 인생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다. 개개인의 경험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와 이들을 향한 애정이 우리가 유일하게 일부나마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다. 결국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경험한 외로움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뉴욕영화제 레드카펫에 참석한 <로마> 제작진.(©Philip May)

-사운드가 특히 인상적인데, 어떻게 구상을 했나.

알폰소 쿠아론_ 리서치의 수단으로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사용했다. 잊혔던 공간을 다시 기억하거나 복구하는 작업이었다. 실존 인물들과 비슷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이들에게 똑같은 의상을 입히고, 같은 거리에 낯익은 자동차가 주차돼 있고, 이웃 같아 보이는 엑스트라 배우들이 걸어다녔다. 하지만 기억에서 시각적 이미지는 청각적인 기억 없이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특히 후각과 미각에 대한 표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청각적인 표현이 이를 대신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도시의 소리, 지역사회의 소리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데 멕시코에는 특유의 뮤지컬적인 리듬이 늘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다. 자연적인 요소가 우리의 선택지 없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듯이 당시의 소리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이같은 요소를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표현했다. 관객 또한 자신의 기억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극중 여성과 남성 캐릭터들이 극명히 대조된다. 특별한 의도가 있나.

알폰소 쿠아론_ 이번 작품은 지적인 과정을 통한 작업이 아니다. 나의 기억을 모은 작업이었고, 클레오 역의 실존 인물인 리보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말하자면 나의 기억과 리보의 기억이 합쳐져 완성된 작품이다. 공유된 기억 위주로 작업했지만 리보가 집 밖에서 겪은 일들은 그녀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다. 내 현재의 프리즘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절대로 지적인 과정은 아니었다. 이 작품은 클레오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녀가 돌보는 가족은 그녀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가족의 가장이 소피아다. 물론 실제로도 우리 아버지와 리보의 남자친구가 그들을 버리고 떠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성별에 대한 특별한 주장을 하려는 의도는 없다. 실제 인생처럼 개인의 경험을 담은 것으로 느껴줬으면 한다.

-<로마>라는 제목은 어디서 왔나.

알폰소 쿠아론_ <로마>는 극중 배경이 되는 지역의 이름이다. ‘콜로니아 로마’라고 한다. 원래 ‘로마’가 타이틀이 아니었다. 프로듀서가 촬영 허가증을 받기 위해 ‘워킹 타이틀’을 촬영 지역명인 로마라고 적어서 제출했는데, 그 이름이 붙어버린 거다. (웃음)

-극중 <그래비티>(2013)를 연상케 하는 <마루니드>(1969) 장면이 포함돼 재미있었다.

알폰소 쿠아론_ <그래비티>가 <마루니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 <마루니드>가 <그래비티>를 연상시키기 위해 삽입된 것이 아니다. (웃음) 어릴 적 극장에서 <마루니드>를 봤던 기억이 난다. 우주의 거대한 빈 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마도 인간으로서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공감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촬영감독을 겸했다.

알폰소 쿠아론_ 시각은 청각과는 많이 다르다. 처음부터 객관적인 경험을 표현하고 싶었고, 시간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특히 관념적인 면에서. 시간의 경과와 흐름에 따라 캐릭터의 삶을 표현했다. 집안일을 하는 장면이나 화장실에 가는 장면이나 편집없이 시간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함으로써 시간을 존중하고 공간을 존중할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누구라는 점을 분명히 제한한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실험을 창조한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임의적이기도 했다. 배우들에게 많은 공간을 주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프레임의 구속 없이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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