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로 간 아이들> 연출한 추상미 감독, "예전의 목표조차 내려놓게 할 만큼 다가오는 것들을 찾았다"
2018-11-01
글 : 이화정 | 사진 : 최성열 |
<폴란드로 간 아이들> 연출한 추상미 감독, "예전의 목표조차 내려놓게 할 만큼 다가오는 것들을 찾았다"

1951년 김일성의 지시로 1500명의 전쟁고아가 비밀리에 동맹국 폴란드로 보내졌다. ‘위탁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낯선 땅에 보내진 아이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폴란드 교사들의 사랑으로 그곳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후, 북한의 귀환 명령에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 했던 아이들은 또 한번의 아픈 이별을 하고, 북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되었으며, 이후 생사를 알지 못했다. 전쟁의 포화 속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상처와 트라우마. 추상미 감독은 폴란드의 한 언론인에 의해 알려지고, 소설 <천사의 날개>로 발간된 이 비극의 역사를 영화로 조명하기로 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추상미 감독이 극영화 <그루터기>를 준비하던 중, 먼저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요량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감독인 내가 앞서 울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편집하면서 우는 장면을 덜어내느라 애를 먹었다고 할 정도로, 영화가 조명한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접속>(1997)과 <생활의 발견>(2002), <열세살, 수아>(2007) 등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연기를 통해 우리에게 배우로 각인되어왔지만, 이제 ‘감독 추상미’로 또 한번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그를 만났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 초청으로 관객과 첫 만남을 가졌다. 태풍을 뚫고 관객을 만나러가 화제가 됐다.



=설령 한명의 관객이라도 직접 대면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서 보니 150명 정도의 관객이와 있었고,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며 좋은 말씀도 해주시더라. 그간 활동을 쉬면서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극장에서 이렇게 만나니 환대받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



-원래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한 극영화 <그루터기>를 준비하던 중에 다큐멘터리를 먼저 만들게 되었다.



=애초 극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조사를 하다보니 아이들을 돌봐준 선생님들이 이제 연세가 많으시더라. 특히 영화에 나오는 요제프 원장님이 91살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졌다. 극영화도 만들고, 그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남길까 싶었는데 그러자면 너무 늦겠더라. 그래서 바로 찍자 했다. 애초 다큐멘터리로 설정했다면 기획의도라든지 틀이 있었을 텐데, 말하자면 이건 그런 게 없는 영화였다. 이 여정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는 방법밖에 없겠더라.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이들을 만나러 가는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앞서 단편 <분장실>(2010), <영향 아래의 여자>(2013)를 만들었는데 2편 모두 극영화였다. 사실 ‘배우 추상미’의 본격적인 연출 선언을 알릴 작품이자 장편 데뷔작이라면 그 연장선상에서 작업하려는 마음도 있었을 텐데.



=이 작품을 준비하며 예전의 목표조차 내려놓게 할만큼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전쟁고아들이 폴란드로 가고 다시 북한에 가서 강제노역한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극영화를 준비하면서 소재를 이미 1년 반 정도 취재하고 있었고, ‘이건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거야’라는 생각이 드니 사명감이 밀려들더라.



-영화의 초반부에 개인적으로 산후우울증을 겪던 차에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주거지 없이 떠도는 북한 아이들을 일컫는 은어)의 사연을 들었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걸 밝힌다.



=배우로 활동하다가 연출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걸 밝히고 가는 게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중요할 것 같았다. 역사에서 떼어낸 이야기이지만, 기획 초기단계인 2015년만 해도 북한 아이들의 이야기, 탈북자 이야기가 사람들에게는 낯설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에겐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할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 싶었다.



-당시 남북간의 관계, 통일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건데, 얘기한 것처럼 지금과 달리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던 시기기도 했다.



=2014년경이었는데, 그때 나의 키워드가 ‘분단’이었다. 우울증이 심했고, 당시 영화나 영상을 보면 모든 아이들이 내 아이처럼 보이더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한 6개월쯤 그런 감정의 기복을 겪는데 나는 그게 좀 심해서 3~4년을 그랬다. 꽃제비 소녀가 나온 영상을 보면서 ‘저 아이 엄마는 어디 있을까’ 했는데, 댓글을 보니 이미 사망했다고 하더라. 남한에서 차로 가면 3~4시간밖에 안 걸리는 거리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300만명이 있는 게 가능한 일일까. 분단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길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리서치했다.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일어난 변화가 더 크게 다가왔을 것 같고, 덕분에 지금은 이 영화의 관객과의 접점이나 개봉 운명도 달라진 것 같다. 작업하는 동안 그 변화에 가장 민감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2018년이 오고, 일련의 변화들이 겪으면서 국민 중 내가 가장 기뻐했을 거다. (웃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곧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 북한에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끊는다’라는 소식이 들렸었다. 더 심각해지면 이 영화도 폐기처분되겠다 싶었다. 그러다보니 작업하면서 진도도 안 나가고, 마침 아이가 소아사춘기를 겪느라 말도 지지리 안 듣고. (웃음) 그 모든 게 한꺼번에 몰려왔었다. 주변에서 이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도 많았다. 그런 시간들을 지내고 보니 지금 관심 주시는 분들이 놀랍고 고맙다. 역사를 다루는 작품에서 시국,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가 절실히 느끼게 되더라.



-<그루터기들>에 출연할 배우들을 실제 탈북자 오디션을 통해 진행했다. 그 과정을 이번 다큐멘터리에도 기록했다.



=조·단역으로 실제 탈북자 아이들을 캐스팅하자는 건 애초 의도였고, 그래서 오디션을 해보자 생각했다. 남한 아이들과 북한에서 어려움을 겪고 이곳에 온 북한 아이들은 분위기가 다르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역할을 할 때 그들이 가진 분위기가 화면에 드러난다. 먼저 캐스팅해서 크랭크인 전에 합숙을 하자 싶었다. 각각 한 사람씩 악기를 다루거나 춤, 노래 같은 전통적인 것들을 영화에서 보여줘야 해서 그 연습도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다큐멘터리 촬영의 동행자로 그렇게 오디션을 통해 발굴한 배우 중 옥순 역에 캐스팅된 이송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극영화의 주인공은 귀덕이고 옥순이는 귀덕이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폴란드에 묻힌 귀덕이의 무덤을 찾아가고 영화에서 귀덕이를 설명해주는 존재라 함께 가면 좋겠다 싶었다. 독기도 있고, 말도 정말 잘한다. 남한 사회에 대한 비판도 신랄하게 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남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는 마음도 있지만, 또 욱하고 올라오기도 하더라. (웃음)



-폴란드로 보내진 아이들과 그들을 돌봐준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바탕이라면, 결국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닫힌 마음을 열고 변화하는 송이의 이야기도 영화의 한축이다.



=처음에는 송이의 스토리는 의도하지 않았다. 극영화를 위한 리서치로 가자, 의도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한달간 폴란드에서 지내면서 송이가 닫혀있던 마음을 열면서 의도했던 게 다 틀어졌다. 송이는 북송되면서 수용소까지 갔었고, 남한에 왔을 때도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는 등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고초가 많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 유대인들의 상처를 보고, 본인도 숨겨뒀던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내가 영화를 찍는다는 명분하에 송이의 트라우마가 상기되는 장소들로 아이를 인도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 같다. 밤마다 자신이 겪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같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렇게 펑펑 울고 난 후부터 나를 언니라고 부른다. (웃음) 그렇게 송이의 이야기가 추가로 더 생겨나니 연출자로서는 너무 어려워졌다. 그런데 그걸 안 담을 수가 없겠더라. 고민 끝에 어느 순간 길이 보였다. ‘상처의 연대’라는. 편집 소스를 보는데 노트에 내가 그 말을 써뒀더라. 이 문장 하나로 어려웠던 것들이 정리되고 풀리더라.



-당시 북한으로 간 아이들은 이제 생사를 알 수 없고 만날 수도 없어졌다면 폴란드 선생님들에게 북에서 온 송이는 그들을 상기시켜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송이의 변화 역시 상처의 연대라는 측면에서 일어났을 텐데, 크게 어떤 부분의 변화가 보였고, 어떻게 담고 싶었나.



=평소 정말 밝은 아이인데, 선생님들이 한번 안아주니 막 울더라. 폴란드 선생님들 역시 북한으로 아이들이 다시 가고 나서 지난 65년 동안 늘 북한 소식에 귀기울이면서, 아이들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사셨고, 그래서 송이가 탈북했다고 하니 그때 헤어진 아이들처럼 생각한 것 같다. 폴란드 선생님들이 당시 만났던 북한 아이들에 대한 증언을 해주셨는데, 아이들의 작은 것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계시더라. 북한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착하고, 이런 칭찬들을 많이 해주시니 송이가 무척 기뻐하더라. 남한에 와서는 억양이 달라서, 문화가 달라서 늘 무시당하기도 하고, 그래서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게 수치심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시간을 보냈다면 송이에게는 선생님들과의 만남이 난생처음 북한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좀 배신감도 생기더라. 난 그렇게 잘해줘도 말을 안 하고 거리를 두더니. (웃음)



-촬영 과정도 궁금하다. 얼마 동안 찍었는지, 선생님들을 섭외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는지. 그리고 영화 속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기관들의 촬영 허가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쉽지 않았다. 간신히 허락을 받았는데, 막상 촬영 전에 다쳐서 빠진 분이 있는가 하면 각각의 이유로 섭외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또 아우슈비츠에 대한 촬영 허가를 받는 것도 어렵더라. 전 대통령을 알아서 그쪽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한달 내내 촬영했는데, 숨 돌릴 틈 없이 진행되어서 더 상황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영화를 통해 ‘감독 추상미’를 각인시키고 있지만, 이미 단편 작업을 통해 연기보다는 연출자로 활동해왔다.



=예전부터 연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갔다. 첫 단편 <분장실>은 완전 내 이야기다. 내가 했던 연극을 토대로 배우의 마음을 그린 건데, 첫 작품이니 내가 잘 아는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하고 한 거다. 두 번째 찍은 <영향 아래의 여자>는 보험회사 직원인 여성이 하루 동안 겪는 우여곡절이다. 내가 영화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다 어떤 상처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번 작품은 장편으로 진행한 것이라 앞선 단편보다 부담감이 더 컸을 것 같다. 작품의 화자이기도 한데, 개봉을 앞두고 스스로 변한 지점들이 있다면.



=인위적인 결말이 아니라, 촬영을 하는 동안 어떤 결론을 찾아간 것에 대한 의미가 크더라. 상처와 대면하면서 나 역시 내 안에 방황하는 것들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영화의 방향이나 내용도 이번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현재 3고까지 나왔다. 폴란드 현지 촬영지 허가는 다 받아두었는데, 시간이 지나버려 또다시 이야기 해야 하고. 어쨌든 그사이 나도 철이 좀 든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내가 무얼 할지 조금은 형성되었다고 할까. 준비하면서 한국 근현대사 공부를 하다보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더라. 모성, 연민,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름대로 생긴 것 같다.



-직접 연출과 병행해 출연을 생각하지는 않나. 최근 한 인터뷰에서 여배우에게 할당된 적은 기회로 인해 배우를 하지 않겠다는 요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생활의 발견> 때 다들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시고, 영화배우로 길이 열린 것처럼 이야기해주셨는데, 정작 작품이 잘 안 들어오더라. <생활의 발견>으로 쌓은 것들, 이슈를 이을 만한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니다 싶은 작품은 들어와도 거절하고 하다가 한 시즌이 지났고, 한동안은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했다. 그런데 나는 드라마가 잘 안 맞더라.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선 아버지(추상미 감독의 아버지는 연극배우 추송웅이다.-편집자)를 동경하면서 연기를 접했는데, 방송에 오니 막장 드라마가 대부분이었다. 장르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본 것들과는 달라서 적응을 못한 거였다.



-여배우들의 경력 단절이 그간 작업에 미치는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앞으로 감독으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기회를 얻지 못한 배우들에게 주고 싶기도 하고, 너무 ‘리얼’해서 캐스팅이 힘든 연기는 내가 직접 하고 싶기도 하다. 아녜스 자우이를 좋아하는데, <타인의 취향>(1999)에서 연출도 하고 출연도 하면서 멋진 역할을 하는 걸 보면서 부럽더라. 미래의 계획을 한다, 안 한다로 정리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치 연기와 절연한 것처럼 알려져버렸다. 결국 연출을 하든, 연기를 하든 본질은 똑같은 것 같다. 애정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 활동을 한 강점을 살려, 캐릭터의 정서에 최대한 접근해서 이야기를 확장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