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신필(神筆) 김용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서 <영웅문>이란 명칭으로 출간되어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김용은 15편의 무협 소설로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했다. 글을 통해 협을 추구했던 영웅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기고 간 작품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 중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김용의 무협은 <소오강호>(1990), <동방불패>(1992), <동사서독>(1994) 등 9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무협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게임으로도 확장되어 지금도 꾸준히 재탄생 중이다. 사해형제(四海兄弟) 무림강호(武林江湖)인을 자처하는 송경원 기자가 대협객에 대한 기억과 존경이 뒤섞인 추모의 글을 썼다. 이다혜 기자가 국내 정식 출간된 김용의 대표적인 소설들을 함께 소개하니, 아직 책으로 접하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무협의 세계에 입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너 그렇게 무협지만 계속 읽으면 바보 된다?” 중학생 무렵 ‘나쁜 책’ 한권을 읽고 나서 몸에 배는 습관들을 고치려면 ‘좋은 책’ 열권은 읽어야 한다는 국어선생님의 핀잔을 자주 들었다. 그 시절 나는 학교에 ‘나쁜 책’을 퍼트리는 이른바 불온서적 공급책 중 한명이었는데, 국어선생님은 매번 걸려 압수당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책을 또 가져오는 나를 괘씸해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렇게라도 책이라는 걸 읽으려는 고집과 정성을 제법 귀엽게 봐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가 덜 굵은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방법은 대개 공포를 통한 위협이다. 아직 뚜렷한 세계관을 정착시키지 못한 대다수의 ‘착한’ 아이들에겐 잘 먹히는 방법이지만 간혹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나쁜’이라는 딱지는 도리어 모험과 도전에 대한 훈장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호기심과 반항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뒤섞이는 그 시기엔 그래서 괜히 더 열을 올렸던 것 같다. 그렇게 무협지, 정확히는 김용 작가의 <영웅문> 시리즈는 학창 시절 내내 나의 책가방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전세계 3억명의 독자를 사로잡다
신필(神筆)로 불리던 작가 김용이 지난 10월 30일 94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그 시절 멈춰졌던 시곗바늘이 다시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반대로 이제야 한 시절의 페이지가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해야 할까. 존경과 애도의 마음도 있었지만 김용 작가의 부고 기사가 어딘가 현실감 없이 다가왔던 건 그가 이미 진즉에 전설이 되어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김용은 1972년을 끝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81살이던 말년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라 중국사 저술을 위한 고고학에 매진, 박사 학위를 따는 등 이미 은퇴를 한 만큼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마치 예전의 뉴스처럼 들릴 법도 하다. 도리어 김용 작가가 아직 살아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몇몇 주변 반응들을 접하며 내가 김용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인지했던 과정이 떠올랐다. 누구의 작품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무협지를 보던 시절을 지나, 머리가 제법 굵어져 작가의 작품을 골라서 읽을 때쯤 놀랐던 건 빼어나다고 느꼈던 거의 모든 무협 소설의 작가가 단 한 사람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지금의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각기 따로 읽었던 소설 속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었을 때의 전율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사실 내가 김용이 창조한 강호무림의 세계관을 하나로 인지한 것은 책이 아닌 게임을 통해서였다. 1995년 소프트월드(대만 제작사 지관)에서 발매된 <김용군협전>(국내명 <의천도룡기 외전>)은 제목 그대로 김용의 소설들을 하나로 묶어낸 롤플레잉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컴퓨터 세계로 빠져 김용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만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설정으로 춘추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한 <월녀검>을 제외한 김용의 모든 소설(14편)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신조협려>의 양과와 소용녀를 동료로 얻고, <의천도룡기>의 장무기와 함께 구양신공을 배우고, <천룡팔부>의 단예와 허죽의 사연을 들었다가 <소호강호>의 동방불패와 대결을 벌이고 있노라면 김용이 창조한 무협 세계,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른바 ‘김용 유니버스’가 일목요연 정리된다.
김용이 종종 <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과 비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톨킨이 유럽의 역사와 신화를 기반으로 중간계를 창조했던 것처럼 김용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중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무림강호를 창조, 아니 정확히는 복원했다. 김용은 1955년부터 71년까지, 편수로는 15편의 작품을 집필하고 강호를 떠났지만 그의 상상력은 전세계 3억명의 독자들(해적판 포함 10억부 판매 추정)의 세계 속으로 침투하여 지금도 왕성한 생명력으로 피어나는 중이다. ‘흰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인다. 인생의 만남과 헤어짐도 이와 같다.’ <신조협려> 속 명대사처럼 작가 김용은 구름이 되어 우화등선하였지만 그의 신필은 여전히 강호를 떠돌며 속세의 시름을 달래주고 있다.
인생 한바탕 큰 싸움을 벌였다가, 조용히 떠난다(人生就是大闹一场, 然悄然离去)
한국에서는 1986년 고려원에서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묶어 <영웅문>이란 이름으로 불법 출간되며 그저 재미있는 무협 소설 정도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오늘날 김용 소설의 위상은 중국의 역사와 정신의 일면을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용의 열렬한 팬을 자처한 덩샤오핑의 초청으로 홍콩 사람 중 처음으로 인민대회당에서 덩샤오핑을 단독 접견했고 이후 김용의 모든 작품이 중국에서 정식 출간되며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천룡팔부>가 2004년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으며 루쉰을 제치고 중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에서 그의 책보다 많이 팔린 책은 <마오쩌둥선집>뿐이다. 문학연구가들 사이에서 <홍루몽>을 ‘홍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하는 것처럼 김용의 작품 역시 ‘금학’으로 일컬어지며 베이징대학 정규 과목으로 개설되는 등 지금도 지속적인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김용의 무협은 단지 많이 읽히고 잘 팔리는 통속, 대중 소설을 넘어섰다. 유교, 불교, 도교 등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을 읽는 창 또는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924년 6월 저장성 명문가 해녕사가에서 태어난 김용의 본명은 차량융( 查 良鏞)이다. 특히 청나라 때 시인 사신행이 유명한데 당시 ‘문중에 진사가 일곱이고 숙질 가운데 한림원 학사가 다섯’이라고 할 만큼 뼈대 있는 가문이었고 일대에 ‘사씨장서’로 소문이 날 만큼 집에 책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읽었던 오래된 서적들이 글을 쓰는 데 바탕이 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용은 본래 소설가가 아닌 언론인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신문사 ‘대공보’에 외신 기자로 채용되어 외신 번역을 시작했고 대공보가 홍콩으로 이전하면서 홍콩으로 거취를 옮겼다. 이후 김용은 운명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데, 1952년 대공보에서 새롭게 석간 <신만보>를 만들며 김용을 부편집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이때 <신만보>는 구독자 확보를 위해 무협 소설을 연재하게 되는데 당시 섭외한 인기작가가 매일 소화해야 하는 스케줄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자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직접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이름의 마지막 ‘융’(鏞)자를 파자해 ‘김용’(金庸)을 필명으로 하여 첫 소설 <서검은구록>을 연재했는데 뛰어난 필력으로 단번에 대중을 사로잡는다.
이후 1956년 <홍콩상보>에서 연재한 두 번째 소설 <벽혈검>이 연달아 성공하자 김용은 자신감을 얻고 1959년 <명보>를 창간하여 <사조영웅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이어간다. 처음엔 신문의 편집장으로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시작한 소설이었지만 해가 갈수록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김용은 1993년 은퇴할 때까지 <명보>의 주필로 활약했지만 소설은 1972년 <녹정기>를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13년 동안 11편의 작품을 연재하며 발행부수 6천부로 시작한 <명보>를 일약 1등 신문으로 성장시켰음에도 그는 “협은 완성되었기에 더이상 쓸 필요가 없다”며 단호히 붓을 꺾고 이후 자신의 소설들을 단행본으로 정리하여 출간하는 일에 매진했다. 1981년 덩샤오핑과의 만남도 이 무렵 성사됐다.
김용은 집필을 멈췄지만 그의 작품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파급력을 더욱 넓혀나갔다. 특히 홍콩 <TVB>에서는 중화권에 절대적인 인지도와 영향력을 기반으로 1983년 황일화, 옹미령 주연의 <사조영웅전>, 1986년 양조위 주연의 드라마 <의천도룡기>를 제작했을 뿐 아니라 1994년부터 2001년까지 7년 동안 8편의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등 그의 작품은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 새로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의천도룡기>만 해도 1979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7번이나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으니 마르지 않는 콘텐츠의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직접적인 제작 이외 주성치의 <쿵푸허슬>(2004)처럼 설정과 인물들을 빌려오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톨킨이 판타지 장르를 창조했다면 김용은 무협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셈이다.
협이란 무엇인가
한때 어른들이 무협지에 ‘나쁜 책’이란 딱지를 붙인 건 아마도 하늘을 날고 땅을 가르는 무공, 다시 말해 비현실적인 설정 때문일 것이다. 분명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무공은 읽는 이를 자극하는 화려한 요소다. 하지만 무협(武俠)에서 무(武)를 따로 분리해서 논하는 건 마치 판타지를 곧 마법이 난무하는 세계라고 착각하는 것과 진배없다. 김용의 소설, 중국의 정신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 무(武)와 협(峽)의 세계를 제대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 가령 김용의 팬을 자처하는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김용의 무협 정신은 나와 알리바바 기업 문화에 깊은 영향을 줬다”며 소설 속 문구를 수시로 인용하곤 하는데 이때 강조하는 것이 “상상력과 낭만주의, 특히 정의를 실현하는 의협 정신”이다.
협이란 무엇인가. 사실 김용은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진즉에 내놓았다. “협이란 무를 자랑하고 상대를 이기는 게 아니다. 힘이 있음에도 자신을 낮추고 기꺼이 자기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김용의 일대기를 쓴 중국 작가 푸궈융은 이를 ‘평등한 사회주의, 자유의 민주주의, 인애의 인문주의’로 설명하기도 했다. 김용의 세계관은 중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무협과 강호(江湖)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발굴된 것이라 보는 게 마땅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애정과 비극, 비애가 절절히 녹아 있는데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이때 성취하는 정신이 개인, 자아에 집중하는 대신 대의(大義)라 불리는 시대를 향한다는 점이다. 남송시대 우직한 곽정(<사조영웅전>)이 원나라에 저항해 백성들을 지킬 때, 세간의 윤리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던 양과와 소용녀(<신조협려>)가 그렇게 자신들을 핍박했던 사람들을 도리어 구할 때 협의 정신은 발휘된다. 중국의 협은 한국의 정(情)과 한(恨), 일본의 의리(義理)와 인정(人情)처럼 문화적인 맥락과 시간이 녹아들어간 진득한 개념이다. 이를 단순히 몇 마디 설명으로 풀어내는 건 난감한 일이고, 그래서 긴 시간을 들여 김용의 소설을 읽고 어렴풋이 이를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다만 여기 굳이 ‘발굴’이라고 언급한 건 협의 정신이 중국 춘추전국시대부터 면면히 흘러온 전통이란 점을 환기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긴 전란의 시기를 거치며 중국인들은 협의 가치를 쌓아왔다. 협은 기꺼이 나를 희생해 약하고 힘없는 누군가를 보호하는 정신이다. 국가로 상징되는 거대한 힘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할 때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키고자 꾸렸던 일종의 자경단이자 소규모 공동체, 혹은 이상향이라 해도 좋겠다. 가령 소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걸었던 길이 협이고, 소설 <초한지>의 유방의 집단이 천하를 주유했던 여정이 협이다. 협은 ‘우리’를 보호하고 대의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질 수도 있는 결연한 정신 상태에 가깝다. 여기엔 무공의 수위, 그러니까 힘의 강약 따윈 관계없다. 무협지에서 말하는 강호는 좁게는 무공을 익힌 사람들의 세계, 즉 무림(武林)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힘을 가진 자로서 백성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이들의 결의, 말하자면 탈정치적이고 탈권력적인 ‘관계’로 나아간다. 때문에 사람이라면 강호를 떠나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집단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가 쌓아온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김용은 자신이 발굴한 협의 세계를 소설의 앞 글자를 따서 ‘비설연천사백녹, 소서신협의벽원’(飛雪連天射白鹿, 笑書神俠倚碧鴛)의 대련(對聯, 동일한 형식으로 나란히 적어 문이나 집 입구 양쪽에 거는 시문)으로 표현했다.(<월녀문>을 제외한 14자의 대련이다.) ‘하늘 가득히 눈이 휘몰아쳐 흰 사슴을 쏘아가고, 글을 조롱하는 신비한 협객이 푸른 원앙새에 기댄다’는 문구는 마치 스스로의 삶을 형상화한 것 같아 어딘지 신비하고 애잔하다. 사람들 사이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한, 김용이 남기고 간 이 짧은 대련의 행간을 읽기 위해서라도 무협은 계속 되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