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스탠 리 추모]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이자 히어로의 아버지
2018-11-16
글 : 송경원
마블 코믹스 창조한 스탠 리(1922∼2018) 별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가 할리우드의 판도를 뒤바꾼 뒤 마블 영화를 찾는 관객에겐 두 가지 습관이 생겼다. 하나는 쿠키 영상을 기다리기 위해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탠 리가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면을 찾는 일이다. 11월 12일 마블 슈퍼히어로들의 아버지 스탠 리가 95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평소 폐렴 등 여러 지병을 앓고 있던 스탠 리는 지난해 아내와 사별하고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주변의 걱정을 사고 있었다. 유가족 변호사에 따르면 스탠 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메디컬센터에서 눈을 감았다. 소식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앞으로 마블 영화는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뇌리를 스쳤다. 물론 스탠 리가 없어도 마블 영화가 제작되는 데 하등의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없는 마블 영화에서 이전만큼의 결속감을 느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스탠 리가 마블의 모든 영화에 등장하는 건 단순한 카메오나 팬들을 위한 놀이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그건 슈퍼히어로 세계로 들어가겠다는 일종의 의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퍼히어로 세계가 낯선 이들조차 스탠 리를 통해 새로운 세계에 위화감 없이 입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태초에 스탠 리가 있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슈퍼히어로를 탄생시킨 성실한 직장인

만화가이자 출판인, 영화제작자이자 미국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스탠 리는 그야말로 세계의 창조자였으며 팬들에게 스탠 리는 MCU의 ‘원 어보브 올’(마블 코믹스 멀티버스를 만든 창조자.-편집자)이나 다름없었다. 스탠 리는 <스파이더맨3>(2007)에 카메오로 나와서 고민에 빠진 피터 파커에게 한마디 말을 건넨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네.” 그 말대로 스탠 리는 만화적 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바꿔온 대중문화의 히어로였다. 1922년 미국 대공황 시기 루마니아 이민자 출신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스탠 리(본명 스탠리 마틴 리버)는 청년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초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들을 창조했다.

하지만 스탠 리의 히어로는 단순히 초월적인 힘으로 세상을 구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고민하며 당대 사회문제를 투영시킨 세상의 거울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는 만화로 시대의 아픔을 달랬고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전쟁, 과학기술에 대한 두려움, 소수자와 인종차별 문제 등 대중의 요구를 빠르게 투영하여 시대를 대변하는 상상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유년 시절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온갖 일을 도맡아 하는 와중에도 스탠 리는 문학에의 꿈을 놓지 않았다. 셰익스피어, 마크 트웨인 등의 소설을 즐겨 읽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사촌의 소개로 타임리 코믹스에 입사하며 만화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1941년 5월 스탠 리라는 필명으로 <캡틴 아메리카>의 각본 작업에 참여, 창작에 첫발을 디딘 이후 스토리 작가로서 잭 커비, 스티브 딧코 등 여러 동료들과 함께 마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스파이더맨,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 판타스틱4, 아이언맨, 토르, 엑스맨 등 수많은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을 창조했으며 이후 마블 코믹스의 편집장,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을 역임한다.

스탠 리가 마블 팬들에게 인지되고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1961년 <판타스틱4>를 통해서인데 완벽한 모습의 히어로에서 벗어나 콤플렉스와 결함이 많은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대중의 공감대를 얻었다. 당시 스탠 리는 업계를 떠나고 싶다고 자주 말할 정도로 제작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는데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건 틀에 박힌 공식들과 이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주변의 압박이었다.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스탠 리는 “월급 받고 집세를 내기 위해서 성실히 했던 일들”이라고 자주 말했는데 그저 겸손의 표현이 아니었다. 당시 그의 상황을 놓고 보면 밥벌이라는 직업적인 마인드로 버틸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일반인의 시선, 소소하고 세속적인 고민들이 오늘날 마블 캐릭터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편집자로 일한 뒤 거의 20년간 스탠 리는 범죄, 서부극, 호러 등의 장르 만화를 제작했다. 당시 컷당 두 단어 이상을 쓰지 못하는 업계의 관행에 막혀 평면적인 이야기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괴로워했던 스탠 리를 구원한 건 그의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 조앤 리의 격려였다. “당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보라”는 아내의 권유에 힘입어 과감하게 시작한 작품이 잭 커비와 의기투합해 제작한 <판타스틱4>였다. 당시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가 성공하며 히어로 만화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하는 시기였고 스탠 리는 이에 마블에서도 히어로팀을 제작할 결심을 한다. 강인한 히어로의 이면에 연약하고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배치한 <판타스틱4>는 당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소시민들의 영웅, 영웅의 힘과 인간의 고민이란 마블 히어로들의 방향성이 자리 잡은 게 바로 이 순간이었다.

더욱더 높이, 더욱더 낮게

헐크, 아이언맨, 토르, 블랙팬서, 엑스맨, 스파이더맨으로 이어지는 마블의 영웅들은 코믹스의 양대 산맥 DC와 확연히 구별되는 차이가 있다. DC 영웅들이 세상의 고뇌를 짊어지고 구하려 애쓴다면 마블의 영웅들은 개인적이고 소소한 고민들에 집중하며 자신의 힘이 닿는 주변을 구하려 노력한다. 히어로로 태어난 자들이 아니라 우연히 힘을 얻어 책임을 각성하는 자들의 이야기 구도를 취해 인간 성장의 가능성과 희망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블의 히어로가 사랑스러운 건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10대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낸 건 지구의 운명이나 앞날보다 옷매무새를 먼저 신경 쓰는 히어로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공감 능력과 함께 마블의 미덕으로 꼽을 수 있는 건 빠른 속도감각이었다. 스탠 리는 본인이 보고 들었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 변두리로 밀려나는 성소수자, 인종차별 문제들을 빠르게 이야기에 반영하며 생생히 담아냈다. 한마디로 마블의 히어로들은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실에서 함께 웃고 울고 구르며 생활한다. 이는 세계의 창조자인, 스탠 리의 성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다. 사장이 된 이후에도 스스로를 월급쟁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창작활동은 집세를 내기 위해 한 일이라고 선을 긋는 스탠 리의 모습은 삶의 철학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실의 팍팍함을 알고 있었던 그는 팬과 제작자의 소통을 강조했고 독자들의 ‘친구’가 되고자 했다.

사업가로서 스탠 리는 크고 작은 실패를 겪어왔다. 1999년 인터넷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해 파산을 겪었고 콘텐츠 제작사 파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영화와 TV시리즈 제작으로 성공했지만 복잡한 저작권 문제로 온전한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영민하지 못한 사업감각이 도리어 그를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으로 살갑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1994년 월 아이즈너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08년 미국국가예술훈장을 받은 유일한 만화업계 인물이 되었지만 그는 결함 없는 히어로가 되기보다는 친구처럼 곁에서 함께하며 고민을 나눠 듣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MCU의 모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행보는 그래서 단순한 팬 서비스 이상의 의미가 있다. 편집장 시절부터 항상 글의 마지막에 남겼던 문구 ‘엑셀시오르’(Excelsior, 더욱더 높이)처럼 그의 손끝은 언제나 더 높은 이상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를 떠나보낸 후에야 깨닫는다. 우리가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던 건 그가 언제나 우리의 눈높이에 서서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해왔기 때문이라고. ‘더욱더 높이’ 외치기 위해 ‘더욱더 낮게’ 임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부디 먼저 도착한 더 높은 곳에서도 MCU를 계속 지켜봐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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