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뷰티풀 데이즈> 아픈 과거를 지닌 채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자’
2018-11-21
글 : 김소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배우 이나영이 6년 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뷰티풀 데이즈>는, 윤재호 감독이 탈북 여성의 목숨을 건 이주를 동행한 다큐멘터리 <마담B>(2016)와 한쌍을 이룬다. 브로커를 이용해 간신히 탈북에 성공했지만, 중국과 한국 땅에 발붙인 뒤에도 탈북민이자 여성으로서의 이중고를 겪는 이들의 역사가 매우 비밀스러운 한권의 일기장에 담겨 있다. 영화는 탈출과 밀입국이 생사를 건 사투이면서, 무엇보다도 무수한 이별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뷰티풀 데이즈>는 탈북 여성의 고통스러운 수난기가 목적인 영화가 아니다. 사회적 비극이 만든 복잡한 가족사와 다중의 정체성, 그로부터 파생된 비련의 관계가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조선족 대학생인 젠첸(장동윤)은 어린 시절 갑자기 집을 나간 엄마를 찾고 싶다. 병든 아버지(오광록)는 그런 젠첸에게 한국 주소가 적힌 엄마(이나영)의 사진을 건넨다. 젠첸의 눈에 비친 낯선 한국은,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허름한 뒷골목으로 기억될 것이다. 술집을 운영 중인 엄마를 만난 젠첸은 실망과 배신감을 이기지 못하고 대체 왜 이따위로 살고 있느냐고 분노를 쏟아낸다. 아들의 섣부른 원망을 타이르고 싶을 법도 한데, 무뚝뚝한 엄마는 좀처럼 동요하는 법이 없다. 버거운 신파 없이 한국에서의 모자 상봉을 짧게 일축해버린 영화는, 헤어지면서 엄마가 젠첸의 가방에 몰래 넣어둔 일기장을 통해 그제야 진득이 참아온 본론을 꺼낸다. 보이스오버를 생략하고, 여성을 향한 착취와 폭력에 있어 자극적인 묘사를 배제한 영화는 감상은 피하되 감정은 끌어안는 성취를 얻었다. <뷰티풀 데이즈>에 따르면, 누군가의 무감각한 얼굴은 이별의 잔혹함을 견뎌내고 얻은 전리품 같은 것이며 그처럼 악의적인 생의 농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날들은 이따금씩 피어올라 마음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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