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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전설> 오멸 감독 - 해녀들의 삶 자체가 곧 자연
2018-11-22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2018년 오멸 감독은 두편의 영화로 관객을 만났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영화 <눈꺼풀>(2016)과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에 도전하는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인어전설>(2016)이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통제와 검열이 은밀하지만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시절 완성된 이 두편의 영화는 시대의 상처와 아픔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 4월 개봉한 <눈꺼풀>이 상징과 비유를 통해 상처받은 이들의 아픔을 가늠하려 하는 진중한 분위기의 영화였다면, 11월15일 개봉한 <인어전설>은 제주도 어촌 마을에서 물질을 하며 살아가는 해녀들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연을 닮은 생명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환희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그녀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어이그, 저 귓것>(2009), <뽕똘>(2010), <하늘의 황금마차>(2013) 등의 전작을 통해 자신이 나고 자란 제주도의 고유한 매력을 탐구해온 오멸 감독은 <인어전설>을 통해 다시 한번 삶과 죽음,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서의 제주도를 조명한다.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에 도전하는 해녀’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어떻게 구상했나.

=해녀들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걸 ‘자맥질’이라고 부르는데 그 모습이 ‘물춤’이라고도 부르는 싱크로나이즈드의 모습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하는 선수들에게서도 해녀들과 흡사한 지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극의 배경이 되는 제주도 어촌 마을은 모계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물질하는 여성들의 영향력이 크다. 실제 제주도 여성들의 모습을 반영한 것인가.

=제주도는 ‘여신의 섬’이라 불릴 정도로 여성성과 모성애가 삶의 뿌리 깊숙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제주 도민들의 삶을 이끌어오는 데 여성들의 노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는 특히 모든 여성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찾고자 했다. 여성 중 누군가는 부모가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고, 또 다른 여성에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희망의 의미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절망이고, 누군가에게는 헌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각기 다른 여성들의 삶을 통해 모성애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주도 출신의 베테랑 배우 문희경이 어촌 마을 해녀들의 대표 옥자를 연기한다. 영화의 초반부 그녀와 갈등을 겪는 싱크로나이즈드 코치 역할로 배우 전혜빈이 출연하는데, 주로 로컬 출신의 배우들과 협업했던 전작을 돌아보면 가장 상업적인 캐스팅으로 느껴진다.

=나름 적극적인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다. 상업적인 선택이라고 볼수도 있겠으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선택해본 경험이기도 했다. 문희경 배우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주연배우로 최적의 선택이었다. 제주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과 지역의 정서를 체감하는 것은 제주 출신의 여성을 연기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니까. 또 제주 도민에게 자랑스러운 배우이기에 촬영지마다 지역분들의 호응이 굉장히 좋았다. 전혜빈 배우는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뛰어난 수영실력과 생존력은 이 영화에 큰 장점이 됐다.

-극중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연습하거나 함께 호흡을 맞춰 공연하는 장면이 적지 않다. 난이도가 있는 연기이다보니 배우들이 작업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이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상당히 고급기술이어서 연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배우들이 촬영기간에도 따로 수영장을 찾아 연습을 해야 했다. 수상에서 아무리 호흡을 맞추고 들어가도 수중에서 호흡이 무너지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바닷가에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연습하는 장면에서는 수중에 조류가 있다보니 배우가 조류에 떠밀려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고, 수온차도 컸다. 작업 과정에서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배우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이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어전설>은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제주도 김녕 어촌을 비롯해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제주 곳곳의 자연친화적인 풍경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하늘의 황금마차> <뽕똘> <어이그, 저 귓것> 등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전작들을 보더라도 제주의 로컬적인 특성이 남아 있는 공간을 의식적으로 찾아나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공간을 ‘살아 있는 배우’로 생각하며 작업한다. 그러다보니 삶을 머금은 장소를 찾는 편인데, 요즘 제주의 급격한 변화에 시대를 머금은 장소들의 소멸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제주도 출신인 나에게는 지난 모든 삶의 기록들이 그 길과 장소에 있었는데…. 발전 혹은 변화는 때때로 수많은 삶의 기록을 순식간에 삭제해버리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한가운데 존재하는 제주의 막바지를 보려고 애쓰고 있다. 한 시대의 끝을, 혹은 막바지를 알리는 풍경들이 내 영화에 기록처럼 담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주의 공간들을 찾곤 한다.

-극중 제주도의 풍경과 사람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공존하고 있다. 삶과 죽음과 신화가 공명하는 장소로서의 공간을 그려내는 건 감독의 작품을 관통하는 연출 방식이기도 한데, 해녀를 극의 중심에 놓은 <인어전설>의 경우 공간과 인물의 관계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어떤 점을 염두에 두며 작업했나.

=극중에서 해녀가 바다에서 아이를 낳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예전에 만삭의 몸으로 물질하던 해녀가 바닷가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힘든 시절을 경험한 분들의 이야기다. 이처럼 해녀들의 삶은 바다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자연을 바라보는 그들의 태도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자연은 곧 신이자 어머니이고 아버지이기도 하다. 때로는 그 품 안에서 생명을 다하기도 하는 해녀들의 삶 자체가 곧 자연이기도 하고. 이처럼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제주의 많은 신화와 주술적 이야기와 어우러져 살아온 해녀들의 삶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인어전설>은 제작 당시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모태펀드 투자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제작비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영화는 어떻게 완성될 수 있었나. 또 작품의 만듦새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한국모태펀드의 투자가 확정적이었던 상황에서 배우들의 스케줄 문제로 먼저 촬영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갑자기 모태펀드의 투자를 집행하는 창업투자회사쪽에서 ‘조건부 승인’을 해주겠다고 했다. 스크린 수 300개관을 확보하면 투자를 해주겠다는 거다. <인어전설>처럼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영화에 납득할 수 없는 조건이었고 결국 투자가 무산돼버렸다. 모태펀드에서 지원받기로 예정되어 있던 3억원이 빠지면서 영화 제작에 차질이 생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PD가 나도 모르는 새 돈을 빌려와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고 그랬더라. 후반작업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제주영상위원회, 다음 스토리펀딩 등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어렵게 완성할 수 있었다. 만듦새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하면 자괴감이 드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해보니 그제야 바로 보이는 것이 있기도 하더라. 힘든 시간을 함께 버텨준 스탭과 배우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JTBC <전체관람가>에서 단편으로 제작했던 영화 <파미르>를 최근 장편으로 촬영하고 있다.

=아직은 어떤 대답도 하기가 부담스럽고 어렵다. 작업이 잘 마무리되는 것이 우선 가장 큰 숙제로 느껴진다. 응원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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