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하남(권나라)은 여고의 스타다. 후배들은 그가 좋아하는 포카리스웨트와 선물을 하트 모양으로 꾸미고 마음을 고백한다. 하남이 로미오를 연기하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도 단연 화제. “로미오가 여자인데 감정이 제대로 나오겠냐”라며 학교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하던 선화(노정의)는 우연한 계기로 연출자 수연(조수향)의 눈에 들어 덜컥 줄리엣 역을 맡게 된다. 과묵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하남을 “은근 자뻑”이라고 생각했던 선화는 공연 연습에 돌입하고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남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소녀의 세계>는 의도적으로 현실성을 지운 첫사랑 판타지다.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 기기가 거의 노출되지 않아 시대 배경이 모호한 데다 인터넷 소설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여럿 등장하며, “시도 낭만도 다 사라졌다”라는 식의 대사도 등장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우주가 있고 첫사랑의 아픔은 현실 세계에 발을 딛는 계기라는 주제는 상상력을 발휘한 예쁜 이미지로 구현된다. 하지만 같은 성별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소녀 집단의 솔직하고 씩씩한 기운은 선화의 성장담을 관전하게 만든다. 또한 ‘오글거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의 당당함이 이른바 ‘백합물’을 남성감독이 만들었을 때 우려되는 불편함까지 밀어내는 것은 뜻밖의 성취. <검은집>(2007), <그림자 살인>(2009) 등의 조감독을 거친 안정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