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천당의 밤과 안개> 중국 감독 왕빙의 촬영 현장을 따라나서다
2018-11-28
글 : 송경원

왕빙은 중국 선양시 철서구의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3부작 다큐멘터리 <철서구>(2003)를 통해 변두리로 밀려나는 중국 노동자들의 삶을 담아낸 중국의 대표적인 시네아스트 중 한명이다. 9시간이 넘는 이 다큐멘터리는 인민의 삶을 집요하게 담아낼 뿐 아니라 도시 전체의 얼굴을 기록하고 몰락의 시간마저 새겨넣으며 때때로 시적인 거리를 자아낸다. 정성일은 왕빙 영화의 이러한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왕빙의 촬영 현장을 따라나섰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2013)의 정신병원에서 촬영이 중지되는 난관에 부딪치자 왕빙은 이내 <세 자매>(2012)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카메라는 그해 겨울 중국 윈난성의 정신병원과 정글을, 그러니까 ‘천당의 밤과 안개’를 오가는 왕빙을 성실하게 뒤따른다. <천당의 밤과 안개>는 영화 촬영 현장의 기록을 위한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배움에 관한 영상 에세이에 가깝다. 영화는 4시간의 상영시간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호흡과 영상언어로 왕빙과 영화, 영화와 카메라의 거리, 대상을 대하는 태도를 탐구한다. 형식적인 면에서 왕빙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지만 여기에 치열한 고민이 더해져 ‘배움의 과정’으로 거듭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리드미컬하다. 대상을 관조하다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압축적인 영상을 보여주다가도 종종 수다스러워지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영화라는 과정의 예술, 그 비밀을 향한 모험활극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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