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참여한 작품 현장 분위기가 전부 좋았고 스탭과 동료 배우들도 모두 친절하고 좋았다”고 권나라는 말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잘해줄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고 있는 옷이 너무 얇아 외투를 건네주려는 소속사 직원을 마다하며 기자의 녹음기에 패딩 스치는 소리가 들어갈 것 같다고 말하는 데서 느껴지는 배려심이나, 유튜브 세대의 신조어를 못 따라가겠다고 하소연하는 귀여운 표정을 보고 있으니 ‘우월한 황금비율’ 따위의 미디어의 수식어가 그의 매력을 축소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2년 전 권나라가 촬영했던 실질적인 연기 데뷔작 <소녀의 세계>에서도 그는 선화(노정의)를 비롯한 소녀들의 첫사랑이 된, 여고의 우상으로 등장한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극중 하남은 과묵하고 속을 알 수 없다는 것. 자신과 닮은 듯 다른 캐릭터와 조우한 권나라의 ‘첫 순간’을 들여다보았다.
-안정민 감독이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를 먼저 보라고 했다고.
=촬영 들어가기 전에 3번 봤다. 감독님이 작품을 추천해줬지만 나만의 하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실제 권나라의 소녀 시절은 어땠나.
=학교 다닐 때 먹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4교시 시작 전부터 편한 신발을 신고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수업 끝나면 선생님과 동시에 뛰어나갔다. 친구들과 장난치는 걸 너무 좋아하던 개구쟁이였다. 사실 초·중·고등학교 모두 남녀 공학을 나와서 예전부터 여고에 대한 로망이 있어 <소녀의 세계>를 더 하고 싶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남녀 합반이라는 이유로 제재도 좀 있었다. 치마보다 바지가 편한데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돌아다닌다고 벌점 받는 것도 싫었다. 여중 다닌 친구 말로는 여학교는 추울 때 체육복 바지를 입어도 되고 자유롭다고, 자주 안 씻어도 된다고 했다! (웃음)
-<소녀의 세계> 이후 필모그래피를 보면, 이른바 ‘차도녀’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캐스팅이 많았던 것 같다. 실제 성격은 전혀 다르게 보이는데, 이런 간극에 대한 고민은 없나.
=얼마 전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함께한 아이유씨 콘서트에 갔는데, 아이유씨가 했던 말이 굉장히 와닿았다. 내가 원하는 나, 나에게 편안한 나, 대중이 보는 나, 대중이 원하는 나는 다른데, 그걸 잘 맞춰가야 한다고. 요즘 내가 하는 생각과 비슷했다. 초반에는 연기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원래 내 성격과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 그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도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고.
-동덕여대 방송연예과를 다니다가 걸그룹 연습생이 됐고, 헬로비너스로 데뷔했다.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어 급하게 학원에 다니며 희곡 <시련>의 한 신을 연습했는데, 기초적인 발성 같은 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1학기도 채 다니지 못하고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예전에 연기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 학교에서의 추억을 쌓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청춘시대>처럼 대학 캠퍼스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소녀의 세계> 이후 세편의 드라마에 나왔고, 반응도 전부 좋았다. 그동안 배우로서 성장한 부분이 무엇인 것 같나.
=선배들은 현장에서 스탭들을 많이 챙기는데, 그동안 나는 내게 집중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스탭들이 한명한명 보인다. 가장 최근에 출연한 <친애하는 판사님께>에서는 어떤 장면의 스탭이 누구였는지, A팀과 B팀 스탭들의 얼굴도 하나하나 기억난다. 작품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공동 작업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됐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지금까지 전문직을 주로 연기했다. 정말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공포, 스릴러 장르도 경험해보고 싶다. <A.I.>(2001) 같은 SF 장르도 좋아한다. 사실 이건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건데…. 기회가 된다면 직접 연출도 하고 싶다. 좋은 영화를 많이 보고 공부도 많이 해서 언젠가는 도전하고 싶은 꿈이다.
영화 2016 <소녀의 세계> TV 2018 <친애하는 판사님께> 2018 <나의 아저씨> 2017 <수상한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