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연평해전>(감독 김학순, 배급 NEW)의 수익금 배분에 개입하려고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씨네21>이 입수한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중에서 제목이 ‘영화 <연평해전> 제작 지원 국민 성금 처리방안 검토’인 문건)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가 <연평해전>에 모금된 국민 성금(크라우드 펀딩)을 처리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했음을 알 수 있다. 검토 배경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부터다. <연평해전>은 개봉한 지 2주 만인 2015년 7월 8일 기준(이 문건이 작성된 시기로 보인다)으로 37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아 약 130억원의 수익을 벌어들이며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겼다. IBK기업은행 30억원, NEW(배급사) 26억원, 로제타시네마 20억원, 성금 20억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8억원, 펀드 8억원 등을 합쳐 총 110억원 (<씨네21>이 취재한 <연평해전> 투자 리스트는 15쪽을 참고할 것.-편집자)이 투입된 제작비 전액을 회수할 수 있는 성적이다. 청와대는 영화가 흥행을 이어가 상당한 순이익을 거둘 경우, 국민 성금 및 영진위 지원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제작·투자·배급사가 과도한 상업적 이익을 얻었다는 비난이 대두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김학순 감독이 자신의 명의로 제작사 로제타시네마를 설립한 까닭에 상당한 이익을 배분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배경에서 청와대는 <연평해전> 제작 초기에 모금된 국민 성금 2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제2연평해전 유가족 및 부상자를 지원하고, 해군 장병의 복지를 지원하는 등 여러 방안을 검토 가능하다고 보았다. <연평해전> 같은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도록 국민 성금이나 흥행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홍보 방안도 논의했다. 필요하다면 VIP(박근혜 대통령)가 참석하는 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검토 가능하다고 했다. 이 문건만 보면 영화를 제작한 로제타시네마나 투자·배급한 NEW와 공유된 내용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청와대가 상업영화의 수익을 가지고 여러 활용 방안을 모색한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연평해전> 제작사, 성금을 모은 해군본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입장을 각각 들었다. 로제타시네마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개인들(약 10억원 규모 추정)은 투자금에 대한 보상 없이 크레딧에 이름 게재 등의 혜택 제공 조건에 동의했으며, 기타 성금도 반환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나 이익이 발생했을 때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도 검토 가능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해군본부는 “제작비 조달을 위한 성금 모금은 이익이 발생했을 때 반환을 기대하고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사회 환원에 관한 (해군 차원의) 논의가 진행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참고로 제작비 구하기에 난항을 겪던 2013년 6월, 당시 최윤희(해사 31기) 해군참모총장(이후 합동참모의장)으로 발탁된다)의 아내 김아무개씨는 1차 촬영이 진행되던 <연평해전> 제작에 뛰어들었다. 대령급 이상의 군 간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해군 바자회를 열어 모금 운동을 했다. 대령급 군 간부들은 300만원씩 각출했다고 한다. 국방부, 해경, 해수부에서 거둬들인 모금액은 10억4천여만원에 이른다. 모금액은 6월 28일 열린 ‘제2연평해전 전사상자 후원의 밤’에서 김아무개씨를 통해 김학순 감독에게 전달됐다. 김아무개씨는 2013년 8월 6∼7일 1박2일로 장성급 부인 등 40여명과 함께 저도(한때 청해대라 불리던 저도는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의 대 이은 휴가지)의 휴양시설에 가 영화 제작비 모금을 자축하는 낯뜨거운 춤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또, 문체부는 “<연평해전>은 상업영화로서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상황이므로 영진위 지원금 8억원은 회수할 예정”이라며 “이익금 일부의 사회 환원을 강제할 수는 없으나, 과거 <26년> 사례와 비교되어 비판받을 소지는 있다”고 보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26년>은 제작비 7억4천만원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조달했고, 이익의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반환한 바 있다. 제작사, 해군본부, 문체부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국민 성금(혹은 크라우드 펀딩)은 영화가 흥행해도 성금을 낸 사람들에게 되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청와대가 사회 환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고려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청와대가 상업영화인 <연평해전>의 국민 성금에 신경을 곤두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국민 성금과 영진위 지원금을 받았지만 상업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게 당연한 일인데 왜 청와대는 이 상황을 걱정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힌트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 예우법 개정 관련 문제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제2연평해전 당시 법령이 전사자 사망 보상금을 규정하지 않은 탓에 당시 청와대는 전사했던 장병 6명에게 전사가 아닌 공무 중 사망인 순직에 해당되는 보상을 지급했다. 제2연평해전 13주기와 영화(<연평해전>) 개봉을 계기로 6명의 사망자를 순직에서 전사로 격상하여 예우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고, 여야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 처리를 추진하고 있으니 전사자 예우법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국방부, 기재재정부)는 예산 부담과 형평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전사자에 대한 합당한 예우와 보상에는 동의하지만, 과도한 재정 부담과 여타 여러 전투 등에서의 전사자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전사자 예우를 하고 있고, 외부 기관에서 34억원의 성금을 모금해 유가족에게 4억원, 부상자들에게 100만~3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했으니 꼭 금전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전사자 예우를 장기 과제로 추진하거나 폐기하는 것도 검토했다.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두 문건(‘영화 <연평해전> 제작 지원 국민 성금 처리방안 검토’, ‘제2연평해전 전사자 예우법 개정 관련 문제 검토’)을 종합해보면, 박근혜 정권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지만 적지 않은 재정 지출을 우려하던 차에 영화 <연평해전>이 흥행하는 걸 보고, 영화에 모금된 국민 성금을 사회에 반환하는 모양새로 전사자에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건을 두고 김학순 감독은 <씨네21>과의 전화 통화에서 “특별히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영화를 투자·배급한 NEW는 “당시 수익금 배분과 관련해 청와대 같은 외부 기관으로부터 따로 연락이 온 적 없다”며 “영화의 총제작비 중에서 제작사 로제타시네마가 ‘기촬영비용(NEW가 투자·배급사로 합류하기 전에 촬영하는 데 들어간 제작비) 및 크라우드 펀딩’ 합쳐 20억원을 유치하겠다는 책임을 지고, 그것에 따른 지분 정산을 했다”고 전했다. 영진위는 <연평해전>을 ‘3D 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해 8억원을 지원했다가 영화가 극장에서 내린 2015년 11월 26일에 8억원 전액을 환수받았다. 지원약정서의 내용에서 수입금 배분 및 상환 등과 관련된 조항 3항에 ‘수입금의 배분 3순위는 갑(영진위)의 현금 지원금’에 따른 환수다.
청와대가 <연평해전>의 국민 성금을 두고 고민을 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이 문건만 보고 그 돈을 유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5년(2010~15년)이 넘는 긴 제작 기간만큼 제작 및 수익 배분 과정에서 말도 의혹도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크라우드 펀딩, 해군바자회 등 국민 성금은 투자를 목적으로 모인 돈이 아니기에 더욱 투명하게 쓰여야 한다. 그것이 <연평해전>과 관련된 의혹이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