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10년을 앞두고 있는 배우 류선영이 류아벨이라는 새 이름을 알려왔다. 라틴어로 생명력을 뜻하는 ‘아벨’은 류아벨이 오래전에 직접 떠올린 이름으로, 생생한 에너지와 호기심을 담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연애담>(2016)으로 단단한 팬덤을 형성시켰던 류아벨은, <샘>에서 다시 한번 무심히 상대의 심장을 흔든다. 자동차 사고로 안면인식장애를 얻은 두상(최준영)의 주위를 맴도는 <샘>의 여자는 캔맥주를 단숨에 들이켜는 털털한 옆방 친구였다가, 골목길에서 우연히 조우한 일본인이 되었다가, 두상이 그토록 찾아헤매는 첫사랑 샘이 된다. 진짜를 알 수 없는 샘의 정체를 찾아가는 두상처럼, 관객에게도 류아벨은 매 순간 궁금한 존재다.
-최근 에스팀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기고 새 이름도 지었다. 배우 활동의 제2장을 준비 중인 것처럼 보인다.
=만으로 30대가 되었으니 20대 시절과는 조금 다른 계획을 갖고 살아보려 한다. 마침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새 회사를 만났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모든 게 새롭다. 굳이 비유하면 번데기가 드디어 허물을 벗은 느낌이랄까. 속이 시원하다.
-얼마 전 배급사 필름다빈과 함께 류아벨 배우전을 치렀다. 지난해에 대구 오오극장에서 개관 2주년을 맞아 류아벨 단편영화 상영회를 연 것에 이어 벌써 두 번째 배우전이다.
=많은 분들 앞에서 내가 출연한 단편영화들(<기음>(2015), <정글>(2015), <우리아빠 환갑잔치>(2016), <뼈>(2017).-편집자)을 모아서 상영한다는 건 인생에서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보통 단편영화는 영화제를 제외하면 상영 기회가 거의 없기도 하고, 인디스페이스는 나한테 좀 과한 것 같아서 가급적 많은 분들이 예매할 수 있게 사전 준비에 신경을 썼다. 210석이라니! 은근히 부담도 되고 책임감이 샘솟더라. 최대한 객석이 빨리 메워졌으면 하는 마음 반, 아무 계획 없이 극장에 온 분들도 배우전 포스터를 보고 궁금증을 갖고 들어오시기를 바라는 마음 반이었다.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와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샘>에서 사고로 안면인식장애가 생긴 두상의 곁을 여러 인물의 모습으로 맴돈다. 옆방 여자, 첫사랑 샘 등 제각기 다른 정체성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두상만큼 관객도 혼란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감독님의 가장 중요한 디렉션 중 하나였다. 같은 사람이 연기를 하는 것인지 혹은 정말 다른 사람인지 애매모호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변주를 아주 크게 주기보다는, 조금씩 미묘한 차이만 두었다. 감독님을 비롯해 배우들도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라 학교 다닐 때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애초에 내 캐스팅을 생각하고 쓴 시나리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레퍼런스가 나 자신이었다. (웃음) 기억을 더듬어 나가면서,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면들을 다각도로 끄집어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였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
=학생회에서 문화국장으로 일했다. 축제나 오리엔테이션 등 학교 내외의 큰 행사를 담당하는 부서인데, 어쩌다 국장직이 내게 맡겨졌다. 학교 특성상 연극원 외에 타원 재학생들을 알게 될 기회가 많지 않다. 나는 운 좋게 학생회 활동을 통해 학교 사람들을 골고루 알게 됐다. 실험적인 작품에 참여하는 것도 좋아해서 타 전공 수업도 재밌게 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웃사이더도 인사이더도 아닌… 미들사이더 정도?
-<연애담>의 지수, <샘>의 그녀 모두 공교롭게도 관계를 리드하는 쪽이다. 사랑의 해법을 꿰고 있을 것만 같은 관능미가 있다. (웃음)
=희한하게 그렇게 됐다. 주연으로 장편영화를 두편 찍었는데, 운 좋게 두편 모두 개봉했고 또 내가 상대를 이끄는 모습이 부각된 것 같다. <샘>은 믿고 기댈 수 있는 배우들이 있으니까 특히 편하게 했다. 실제로 인간관계를 맺을 때 능숙한 편은 아니다. 그저 최대한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웃음) 낯을 꽤 가리는 타입이고,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관계가 좋다.
-<푸른 강은 흘러라>(2008)로 데뷔해서 올해로 10년차, 류아벨로 불리기 이전의 10년을 스스로 어떻게 정리하고 있나.
=웬만하면 그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30대로 넘어오고 싶었는데, 하필 시기적으로 촬영이 겹쳐 그러지 못했다. 20대의 모토는 실험과 도전이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지금 하자’는 식이었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한편으로는 내가 꽤 느린 사람이라는 것도 배웠다.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기보다는, 어디에 재능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샘을 찾아 땅을 파는 사람이라는 마인드로 산다. 지난 10년간 그랬던 것처럼 아직도 여기저기 파고만 있다. 그런데 계속 하다보니, 이제는 이렇게 파다보면 어딘가 나의 보석이 묻혀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10대부터 배우를 꿈꾼 건가.
=전혀. 배우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공부를 하다보니까 어쩌다 배우의 길을 걷고 있더라.
-데뷔하기 전 류승완 감독의 <짝패>(2006)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어떤 계기였나.
=마침 고등학생 때 <주먹이 운다>(2004)를 보고 무척 인상깊었던 터라, <씨네21> 등의 영화잡지에서 감독님에 대해 찾아보곤 했다. 그때 류승완 감독님이 한국에서 이소룡 스타일의 영화를 꼭 찍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도 이소룡의 엄청난 팬이었다. 그러다 2005년 즈음이었나, 어쩌다 <짝패>의 단역으로 나가게 됐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비어 있는 감독 의자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이 감독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어떤 아우라가 있더라. (웃음) 저분과 나중에 영화를 같이 찍게 될 것 같다는 운명적인 생각이 들었는데, 그 예감이 <베테랑>(2014)으로 이뤄졌다.
-이소룡을 좋아한다니 의외인데.
=어렸을 때부터 또래에 비해 취향이 약간 올드했던 걸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소룡은 내 이상형의 남자가 됐다. 그가 내 인생의 첫 번째 이상형이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두 번째 이상형은 금성무다.
-취향이 확실하다. (웃음) 중국, 홍콩 영화를 즐기던 비디오 키드였나.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와 만화책을 잔뜩 빌려오곤 했는데, 또래들이 할리우드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중화권을 중심으로 아시아영화를 팠다. 공리도 정말 좋아한다. <러브레터>(1995) 등 일본영화 붐이 일던 시절도 함께해 그런 작품들도 좋아한다.
-액션영화 제의가 들어오면 굉장히 반갑겠다.
=당연히! 나를 꼭 캐스팅해주셨으면 좋겠다. 어느 시대의 어느 액션이든 다 소화하겠다. 어릴 때 검도를 배웠고, 수영도 잘하는 편이다. 몸 쓰는 데에 겁은 없다.
-그런 와중에 최근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의 회사 선배인 정채령 대리를,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단편 <인사3팀의 캡슐커피>에서도 대리를 연기하며 직장인의 애환을 그렸다. 사무실에 앉아 있느라 몸이 근질거렸겠다.
=오피스 신이 나올 때면 직원들이 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해서 거의 매일 촬영장에 출근해야 했다. <나의 아저씨>는 처음으로 긴 호흡으로 고정 출연한 드라마인데, 모든 분들이 베테랑이었고 정말 따뜻한 분위기였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될 것 같았다. (웃음) 사실 영화와는 리듬이 달라서 처음엔 좀 헤매기도 했다. 계속 마스터숏(한신 전체를 모든 인물이 보이는 구도로 찍는 숏을 의미.-편집자)을 찍으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막상 카메라가 단독으로 들어오면 머리가 하얘지더라. <인사3팀의 캡슐커피>도 비슷한 시기에 찍었는데, 직장에 다니는 지인들의 술자리가 있으면 따라 나가서 무엇이 힘들고 불안한지, 또 상사 욕은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들었다.
-예정된 차기작은.
=김희정 감독님의 <프랑스 여자>가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김호정, 김영민, 김지영 선배님 등 모두 목표 지점까지 연기를 쭉 밀고가는 선배님들의 힘이 대단했다. 내 역할은 약간 히스테릭한 면이 있는 배우다. 현재-과거, 그리고 실제-환상을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