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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 행동하며 ‘함께’ 살아간다
2018-12-27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2017년 6월, 장혜영 감독은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 장혜정씨를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둘만의 일상을 꾸리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12살에 들어간 시설에서 18년 만에 나온 동생과, 그와 함께할 새 보금자리를 꾸민 언니의 적응 과정을 일기처럼 담았다. 그동안 장애계의 핵심 이슈였던 장애등급제에 관해 정부가 2019년부터 단계적 폐지 결정을 내린 2018년, 장혜영 감독은 그 가운데에서도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이라는 첨예한 화두를 이끌었다. 현재 그는 유튜브, 다큐멘터리, 단행본 등 형식과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지속 중이다. 자매가 중년이 되고 할머니가 될 때까지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장혜영 감독. 직접 만나본 그는 자유롭고 저돌적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타고난 액티비스트였다.

-시설에서 벌어지는 상습적인 인권침해를 알고 나서 감독님이 문제제기를 하려 할 때, 다른 학부모들이 시설이 문을 닫을까봐 염려해 오히려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계속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시설 내 인권침해 이슈를 선생님들간의 권력싸움, 즉 노조 문제로 치부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다. 단 한분도 나와 의견이 일치하는 분이 없었다. 시설의 존재가 정말 절박하셨을 테니 이해도 간다. 나와 혜정이 탈시설한 후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 과거에 가장 심하게 반대하셨던 학부모 중 한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설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면서, 자신의 아이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난 후에 나에게 뼈아프게 사과를 하시는 거다. 그때 같이 전화 붙잡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동생 장혜정씨가 탈시설을 한 지 이제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 운영, 다큐멘터리와 도서 출판 등 쉬지 않고 달려온 셈이다.

=혜정의 탈시설 이후로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후원 모금 사이트인 텀블벅에서 다큐멘터리 펀딩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텀블벅측에서도 나중에 밝히기를 내가 올린 프로젝트가 의미는 정말 좋지만 모금은 실패할 확률이 높을 거라 판단했다고 한다. 장애 이슈는 늘 있는 문제여서 신선하고 힘 있게 다가오질 않는다는 거다. 사실 금액대가 꽤 컸는데, 이 프로젝트가 달성된 데에는 어떤 새로운 점을 봐주신 것 같다. 나도 그게 무엇일까 계속 고민 중이다.

-9월에는 청와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평생케어종합대책 발표 및 초청 간담회에 초대받아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만났고,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그 경험과 관련해 강연을 했다.

=장혜영과 장혜정이 청와대에 다녀왔다기보다는, 장애인과 그 가족이라는 집단의 일부로 다녀온 셈이다. 굉장히 상징적인 포지션인데, 나는 이것이 장애인 인권 이슈에 대한 현재의 한계까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문재인 대통령이 앉아 계신데, 막상 그분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갑자기 막막해지면서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결국 지금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은 청와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이 인터뷰를 읽어주실 분들. ‘발달장애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확히 지금 당신의 자리에 있는 발달장애인을 상상할 수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통해 동정과 시혜가 아닌 진정한 불평등 해소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싶다.

-혜정씨와의 탈시설을 결심하기 전에, 감독님의 표현에 의하면 ‘중증발달장애인의 비장애인 형제’로서 과거의 삶은 어땠나.

=애니메이션고 영상연출과를 다니면서 무엇이 됐든 창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형식의 경계 없이 작업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들었고. 스토리텔러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꾸준했지만 동생의 상황이나 부모님과의 관계를 이유로 선뜻 영화판에 뛰어들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곳에 들어가서 안정적으로 사회에 발을 걸치는 쪽을 택했다(장혜영 감독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이던 2011년에 고려대생 김예슬, 서울대생 유운종에 이어 세 번째로 대자보를 쓰고 명문대 자퇴를 선언했다.-편집자). 신기루 같았던 시간이다. 결국 많이 겉돌았고 방황도 했다.

-여러 플랫폼에서 두루 활동하기까지 관심사가 옮겨간 순서도 궁금하다.

=유튜브 채널이 일종의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2015년에 개설만 해놓고 휴업 상태였다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계정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콘텐츠만을 주로 다룬다고 생각하시지만, 실은 다양한 도서를 소개하는 등 넓고 얕은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내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웃음) 탈시설을 결심하고 나서, 나와 혜정 같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공적 자원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다. 나의 사적 자원을 채워넣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오롯이 동생에게 집중하는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가졌다. 이전까지 유튜브 채널로 공개했던 영상들이 브이로그 형식, 즉 일상의 스냅숏이었다면 이제는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와 단행본까지 쭉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을 고수한 이유는.

=반어적인 제목이라서 더 좋았던 부분이 있다. 발달장애인을 친근하게 설명하려는 의도로 ‘몸은 어른이지만 머릿속은 세살 아이’ 같은 표현들이 쓰이곤 하는데, 이는 옳지 못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은 마치 장혜정의 성장이 있을 것처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전혀 다른 지점으로 나아간다. 막상 영화를 보고 예상과는 다른 감정들을 많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큐멘터리 촬영 시 생활공간에 카메라를 설치할 때 정해둔 원칙이 있었나.

=초기에는 큰 카메라가 들어오는 게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핸드폰으로 찍었다. <어른이 되면>을 함께 만든 멤버들은 다큐멘터리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생존 TF, 장혜정 탈시설 TF 같은 것이어서 실질적인 생활의 영역까지 깊이 고민하는 친구들이었다. (웃음) 때문에 하루하루 일정을 정리하는 것이 자연스레 제작회의가 됐다. 뭐가 됐든 혜정이 잘 적응하는 게 최우선이고, 카메라가 조금도 방해하면 안 된다는 대원칙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카메라가 익숙지 않은 상황이었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초창기 푸티지는 엉망진창이었다. 특히 혜정의 경우 내내 정수리밖에 안 보이더라. 아무래도 카메라가 어색했는지 자꾸만 고개를 숙였다. 시행착오 끝에 혜정을 제대로 담으려면 아이레벨이라든가, 180도 원칙 같은 관성적인 방식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오로지 혜정을 위한 숏을 고안해야 했다.

-감정적으로 너무 힘겨운 순간이나 드라마틱한 흐름은 배제하려고 했나. 단단한 매일의 일상,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안정적인 리듬감으로 영화가 지속된다.

=힘들다는 걸 누가 모를까 싶었다. 공동체 상영을 돌면서 장애인 가족의 힘듦을 좀더 강조해주지 그랬냐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사실 장애인은 가족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인식에 맞서고 싶기도 했다. 탈시설이 그렇게나 불굴의 의지와 노력을 요하는 일일까? 굳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단한 이타심을 발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인간으로서 같이 살 수 있다. 생활 패턴, 관점의 차이다. 부모를 배제하는 것 또한 내게는 중요한 화두였다. 아직은 조금 판타지일 수도 있는데, 나는 반드시 부모 중심의 돌봄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장애등급제 폐지 외에 현재 눈여겨보아야 할 장애계의 제도적 이슈가 있다면.

=활동지원사(구활동보조사) 문제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모두가 모두를 돌보는 것에 대한 상징이 활동지원사다. 갓 학교를 졸업한 고등학생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편한 일로 여겨진다면 어떨까. 아마 나와 혜정 같은 사람이 좀더 살기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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