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1일,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한국 기자들의 영상 기자회견이 열렸다. 알폰소 쿠아론은 한국 기자들에게 <로마>를 넷플릭스로 보았는지 극장에서 보았는지 묻고는 극장에서 봤다는 대답이 많자 행복하다며 환히 웃어 보였다.
-<로마>는 넷플릭스 방영을 전제로 한 작품이지만 반드시 극장에서 체험해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상황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극장에서 보면 좋은 영화를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 역시 재밌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설명하면 <로마>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이고 제작 방식부터 극장개봉까지 신경 써준 플랫폼이 넷플릭스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로마>를 극장에서 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즐기려면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로마>는 영어가 아니라 멕시코 언어로 만든 흑백영화다. 이런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작품에 접근할 수 있게 하려면 넷플릭스 같은 신규 플랫폼이 필요하다. 또 10년, 20년이 지나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반영한 영화인데, 주인공을 입주 가정부 클레오로 설정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클레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다. 그녀의 상처와 나의 상처, 나아가 한 가정의 상처, 멕시코라는 나라의 상처 그리고 전 인류의 상처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가 클레오였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존경하는 감독이다. 그렇다고 레퍼런스로 삼거나 오마주하진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다르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럼에도 내 영화적 유전자를 무시할 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로마>를 두고 네오리얼리즘을 운운하는데,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찍었어도 그렇게 느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만의 새로운 표현을 시도했지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한번은 편집실에서 편집기사가 무술 장면을 편집하다가 이런 얘길 하더라. “이 장면에선 페데리코 펠리니 느낌이 많이 나는데?” 그래서 아예 펠리니 영화의 느낌이 나게 가는 바람이 부는 효과를 넣자고 했다. (웃음)
-<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의 마지막 장면에도 바다가 나온다.
=최근에 이런 얘기를 또 들었다. 내 영화엔 늘 바다가 나온다고. <위대한 유산>에도 바다가 나오고. 그런데 의도적으로 엔딩에 바다를 등장시키는 건 아니다. <그래비티>와 <칠드런 오브 맨>의 경우 이야기 전개상 필요한 장면이었다.
-민주화 물결이 거세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뭔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모습과 유혈 사태를 담은 장면을 보면서 한국에도 비슷한 역사가 있어 시대적 풍경이 가깝게 느껴졌다.
=개인적인 삶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고, 그 이야기가 1970년대 초반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면서 가정이 깨지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개인의 상처뿐 아니라 멕시코의 상처를 담아내기 위해서 사회의 갈등상도 같이 표현했다. 독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있다는 점에서 멕시코와 한국 사이의 감정적 유대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유사한 특징 중 하나는 사회 고위층의 비리가 많다는 거다. 사회 고위층의 비리와 부패는 한국영화에서도 반복되는 테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