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 라이프>가 사생활의 클리셰를 마주하는 법
2019-01-10
글 : 김소미 |
<프라이빗 라이프>가 사생활의 클리셰를 마주하는 법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라이빗 라이프>는 지난해 10월 5일 공개된 타마라 젠킨스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불임으로 고통받는 레이첼 비글러(캐서린 한), 리처드 그라임스(폴 지아마티) 부부는 전형적인 뉴욕 예술가 사회의 일원으로 “나이 마흔이 훌쩍 넘도록 여전히 임대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한” 경제적 불안 때문에 결정적으로 우디 앨런의 세계와 분리된다. 어쨌거나 영화는 아슬아슬하나마 끝까지 품위를 유지하려는 지식인의 태도로 불임 치료와 입양 절차를 동시에 전개해나간다. 그런데 뉴요커를 그린 많은 영화가 대사 중심의 서사적 디테일에 주력한 것과 달리, <프라이빗 라이프>는 영화적 장치와 리듬감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숏의 크기, 몽타주의 반복 등을 통해 <프라이빗 라이프>가 체득하게 만드는 삶의 지속태가 흥미로웠다.



인스타그램 사이즈와 풀숏



<프라이빗 라이프>는 두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오프닝 시퀀스로 나열한다. 가장 먼저 암전 상태의 화면 위로 부부의 은밀한 속삭임과 숨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화면에 떠오르는 건 어둑한 침실에 속옷만 입은 채 비스듬히 누워 있는 레이첼의 하반신이다. 리처드는 막 레이첼의 엉덩이 ‘4분면 상단’에 배란 촉진제를 주사할 참이다. 제한된 그림과 소리가 암시하던 로맨틱한 상태는 전혀 아니지만, 임신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행위의 목적성은 같다. 이후 화면은 곧바로 불임 클리닉의 대기실로 전환된다. 이번엔 가장 밝고 공개적인 어떤 곳에서 공간을 가득 메운 여러 커플 사이에 주인공 부부가 앉아 있다. 직전까지도 비밀스럽고 사적인 행위였던 부부의 임신 과정은 풀숏에서 드러나는 공간의 지시성만으로 매우 공공연한 것이 된다. 이때의 풀숏은 나의 사생활이 여러 개체 사이에서 일반화될 때의 무력감, 수동적 상태를 포괄한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병원의 로비 혹은 시술 직전의 환자 대기실은 <프라이빗 라이프>가 집요하게 반복하는 부부의 근거지다.



반면 마취에서 깨어난 직후에 등장하는 것처럼 제한적인 시야를 강조하는 클로즈업과 인서트 컷은 어디까지나 주관의 영역이다. 이 감각들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며 대개 형체와 크기가 흐릿하거나 과장되어 보인다. 그러니까 <프라이빗 라이프>에는 선명한 도식이 있다. 클로즈업으로 감각하고 풀숏으로 조망한다는 익숙한 문법을 이 영화에서 구태여 되새김질하게 된 이유는 리처드의 의붓조카 세이디(카일리 카터)가 나타나서다. 일반적인 체외수정을 포기한 부부는 수양조카 세이디에게 난자 기증을 부탁하는데, 세이디는 부부가 차린 아침식사를 보고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하다고 감탄하기 바쁘다. “재수 없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광고” 같다는 얘기다. “물론 두분은 진짜겠지만, 사실은 이상적인 삶을 형성하는 문화적 요소에 길든 거죠.” 세이디가 미디어학과 소비사회학에서 배운 언어가 서늘한 건 그 진단이 유효해서라기보다 세이디가 간밤에 막 도착한 손님이기 때문이다. 세이디는 아직 딱 인스타그램의 프레임으로만 부부를 바라볼 수 있다. 중년의 위기 서사에 이 경쾌한 20대가 등장한 이후 영화에는 종종 필터를 씌운 클로즈업 중심의 몽타주 컷이 삽입된다. 세 사람의 일상을 짧고 즐겁고 ‘있어 보이게’ 편집한 전형적인 SNS식 화술이다. 세이디의 말처럼 이 순간은 진짜일 테지만, 그렇다고 현재 레이첼과 리처드가 처리해야 할 삶의 정수라고 보긴 어렵다. 타마라 젠킨스 감독은 <프라이빗 라이프>에서 내용에 걸맞는 숏의 크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크기를 택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상태가 다르게 보인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리처드가 정액 채취실에서 애를 먹을 때, 영화는 기어코 풀숏을 통해 리처드의 맨살에 붙어버린 일회용 의자 시트가 얼마나 성가신지를 보여주면서 현실의 코미디를 짚는다. 클로즈업이었다면 (일종의 자의식 과잉에 가까운) 리처드의 피로와 수치심을 드러내는 장면이 되었을 것이다. 화면의 크기가 비극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임신 상태의 미혼모들이 직접 아이의 양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에 등록했던 부부는 어느 날 티파니라는 여성과 인연을 맺게 된다. 뉴욕과 아칸소주에서 화상통화를 이어가면서 두 사람은 곧바로 티파니와 사랑에 빠진다. 모니터 너머의 티파니는 꿈같이 예쁘고, 초음파 사진 속 이름 없는 아기는 황홀감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먼 길을 달려 고속도로 옆 한 식당에서 티파니를 만나기로 한 날, 그녀와 배 속의 아기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리는 부부의 모습은 모니터의 클로즈업과 달리 넓은 화면으로 처리된다. 작은 양식 안에 욱여넣을 수 없는 미해결의 상태만이 차갑게 지속된다. 풀숏의 엄중함은 때로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이동과 정지로 지속되는 로드무비



<프라이빗 라이프>는 채취, 이식, 시험 같은 의료적 절차를 적시하면서 플롯을 전개해나간다. 만약 마땅한 명칭이 없으면 시간의 경과를 정확히 기재하는 식이다. 영화가 공들여 묘사하는 병원 생활의 속성은, 자율 제어가 불가능한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것 같은 인생(특별히 중년)의 상태를 기술하는 데 쓰인다. 우리는 병원에 입성하는 순간 효력을 발휘하는 마술을 알고 있다. 설명을 들었고 가족과 상의했고 동의서에 사인도 했지만 어딘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의지와는 미묘하게 무관한 리듬으로 이동하거나 정지해야 하는 검사-수술-회복의 과정이 타마라 젠킨스 감독이 선택한 로드무비의 서두다. 물론 바깥은 훨씬 복잡하다. 감독의 전작 <새비지스>(2007)에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남매가 나온다. 아버지가 배설물로 벽에 글씨를 썼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이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통탄하자 오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면 아직 노란불이야. 그냥 조금 긴장하고 주시하면 돼. 빨간불로 바뀌면 그땐 진짜 큰일이지.” 빨간불은 다음 신에서 아버지의 여자친구가 급사하면서 켜진다. <프라이빗 라이프>에서 젠킨스 감독은 이 신호등 이론을 반복되는 도로 이동 몽타주를 통해 상기시킨다. 막 뉴욕에 도착한 세이디에 의해 풍경 몽타주가 등장한 이후 영화는 종종 이같은 이동 몽타주를 반복한다. 특별한 여행이나 물리적으로 대단한 이동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에 이 움직임의 이미지들은 어딘가 어색하기까지 하다. 후반부에서는 아예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위에 세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오버랩하고 주치의의 얼굴까지 덧붙인다. 인간이라는 존재로서는 그나마 신의 영역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이 여정에서 나름대로 주인공급의 중요도를 가졌다고 할 만하다. 이들이 탄 차는 그렇게 의지나 소망과 무관하게 하염없이 미끄러져 간다. 문자 그대로 ‘로드’무비다.



<프라이빗 라이프>가 특별한 것은 결말에 이르러 사실은 그 도로가 순환로라고 밝히는 데 있다. 모든 시도에 실패한 부부는 1년 후 같은 계절에 다시 한번 기적적으로 입양 부모로 선택받는다. 앞서 언급한 티파니와의 짧은 교류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플래시백으로 처리되는 구간이기에, <프라이빗 라이프>는 러닝타임이 가리키는 가장 과거의 상태, 즉 원점에 다시 서는 형국을 띤다. 이미 학습한 바 있는 예정된 실패를 기다린다는 서사는 무용할뿐더러 보통은 진부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라이빗 라이프>는 그 선택에 일관성이 있다고 곱씹게 만든다. 왜일까. 로드무비가 성장이나 깨달음을 전제로 한다면 두 사람은 어떤 상태에 도달하거나 졸업해야 한다. <새비지스>에서는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그것이 가능했다. <프라이빗 라이프>에서는 응당 탄생만이 해답이 될 텐데, 젠킨스 감독은 “해피 베이비 엔딩”이 거짓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수긍할 만한 말이다. 이 영화는 대신 출산과 양육, 불임 문제가 그 자체로 이미 중년들이 공유하는 사생활의 클리셰, 위기의 클리셰라는 사실을 빠르게 인정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 뻔한 대소사를 버티는 인간의 끈질긴 관성을 체득하는 데 집중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침실 한편에 주사기가 잔뜩 쌓인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문을 열어서 그들이 “도박 중독자”처럼 이유를 불문하고 늦은 임신에 몰두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 사이를 꾸준히 채운 건 기다렸다 달리고, 또 가끔 튕겨져 나가지 않기 위해 애쓰는 반복적인 운동(몽타주)의 양태였다. <프라이빗 라이프>는 진정한 사생활이야말로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이 아니라, 각자의 주머니 속에 든 도보계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얼핏 보기엔 원점 같지만 실은 한번의 놀라운 완주를 알리고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