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이 신은 내 거야! 2018년 한국 영화 속 신스틸러들
2019-01-15
글 : 김진우 (온라인뉴스2팀 기자)

신스틸러(scene stealer). 신을 훔친 사람. 즉, 강한 존재감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훔쳐버린 조연 배우, 배역을 의미하는 말이다. 2018년 한국 영화 속에도 역시 이런 신스틸러들이 여럿 등장했다.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짧은 등장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그들. 2018년 한국 영화 속 신스틸러 7인을 모아봤다.

<독전> 보령(진서연)

<독전>

2018년 한국 흥행 영화 첫 주자 <독전>. 그중 단연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이는 진서연이 맡은 보령이다. 마약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진하림(김주혁)과 함께 등장한 그녀는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닌 모습. 보령은 약에 취해 미친 듯이 웃다가 화내다가를 반복하고, 근육 수축(마약 부작용) 때문에 계속 스트레칭을 하는 등 실감 나는 연기를 선보였다. 또한 진하림과 함께 당최 종잡을 수 없는 행동, 성격으로 극의 긴장감을 더해줬다.

등장 장면을 잡아먹는 듯한 카리스마와 몰입감을 보여준 진서연. 오랫동안 여러 드라마, 영화에서 단역, 조연을 맡아온 그녀의 연기 경력이 빛났던 순간이다. 진서연은 바짝 수축된 근육을 표현하기 위해 6kg을 감량, 혹독한 운동으로 근육을 쪼개는 과정을 거쳤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감이 느껴지는 비주얼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마녀> 영희(고민시)

<마녀>

할리우드 방불케 했던 액션을 선보였던 <마녀>. 액션의 중심이 됐던 캐릭터는 주인공 자윤(김다미)과 그녀를 괴롭히는 귀공자(최우식), 미스터 최(박희순) 등이지만 찰진 감초 역할로 미소를 유발한 배우는 따로 있다. 자윤의 친구 영희를 연기한 고민시다.

늘 앞머리 볼륨을 위한 헤어롤을 장착한 그녀는 구수한 욕과 통통 튀는 발랄함으로 자윤과의 ‘케미’를 보여줬다. 또 고민시는 올해 25살이 됐지만 실제 고등학생을 섭외했나 싶을 정도로 어려 보였다. 특히 그녀가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장난스러운 태도에서 짜증을 거쳐 당황으로 가는 기차 신. 진부한 스토리, 다소 작위적인 대사 등 각본 면에서는 평단의 혹평을 받은 <마녀>지만 고민시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영화의 재미를 더했다. 그녀는 여러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김다미 못지않은 존재감을 자랑했다.

<공작> 김정일(기주봉)

<공작>

기주봉 역시 신스틸러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2018년에만 무려 다섯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은 윤종빈 감독의 <공작>에서다. 특수분장을 통해 북한의 김정일로 변신한 그는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가 됐다. 윤종빈 감독이 섭외한 <링컨>의 특수분장팀은 세 명의 후보 배우 가운데 기주봉을 선택했다.

기주봉은 외관을 넘어 행동, 대사까지 김정일 그 자체가 됐다. 등장만으로 긴장감을 조성했던 그는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로 주위 모두를 얼어붙게 하는 카리스마를 자랑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을 가진 듯 무심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은 인물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탄생된 듯한 연기. 40년이 넘는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기주봉의 베테랑 같은 면모가 드러난 역할이다.

기주봉은 “김정일의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데 무게를 뒀는데, 진짜 김정일을 만난 듯 어쩔 줄 몰라하는 배우들을 보고 성공했구나 싶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작>의 개봉 직후, 기주봉은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죄 많은 소녀> 김형사(유재명)

<죄 많은 소녀>

친구를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오해를 받는 영희(전여빈)의 이야기를 그린 <죄 많은 소녀>. 영화는 힘겨운 영희의 심리가 중심이 되지만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주변 인물들이다. 특히 자살한 경민(전소니)의 어머니(서영화)는 끊임없이 영희를 추궁하고 괴롭힌다. 슈퍼히어로 영화에 비유하자면 ‘메인 빌런’ 격 캐릭터.

그녀 못지않게 영희를 고통스럽게 하는 인물이 유재명이 연기한 김형사다. 그는 경민의 어머니, 담임선생님, 학생들과 함께 영희를 심연으로 떨어트린다. 김형사가 돋보였던 점은 바로 애매함. 다른 이들에 비해 김형사는 ‘악하다’라고 단정 짓기 힘든 모습을 보여줬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취조를 시작하는 김형사는 얼핏 보기에는 그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한 듯했다.

그러나 이미 형사와 용의자라는 관계가 부여된 상황, 점점 영희를 몰아붙이는 김형사의 말과 눈빛은 숨막힘을 자아냈다. 김형사의 대답을 유도하는 듯한 의문형 어미와 “어쨌든” 등의 단어는 영희에게 너무나 폭력으로 다가온다. 오해와 사소한 말 한마디가 타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는지 알려줬던 장면이다. 유재명은 좋은 어른으로서의 태도와 불확실한 경멸 사이, 그 미묘한 간극을 놀랍도록 세밀하게 표현했다.

<암수살인> 잠수대장(고창석)

<암수살인>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 번만 더 쓰겠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암수살인>의 고창석은 조연이 아닌 특별출연으로 등장해 반가움을 샀다. 그는 바다에 빠진 증거품을 찾는 잠수대장 역으로 딱 한 신에 잠깐 출연했다. 툴툴대며 김형민(김윤석)의 부탁을 들어주는 그는 머리가 커 모자가 안 들어가는 상황으로 깨알 같은 웃음을 자아냈다.

고창석 특유의 자연스러운 코믹 연기가 돋보인 장면. 그가 유명한 배우가 아니었다면 실제 부산 앞바다에 근무 중이신 잠수부를 섭외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또한 이 장면은 단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진행됐으며 모자가 안 들어간다는 설정도 고창석이 즉석에서 뽑아낸 애드리브다. 김윤석은 대중들과 SNS를 통해 소통하는 <암수살인> ‘츄잉챗’ 행사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고창석과의 신을 꼽기도 했다. 그는 “합이 딱 맞을 때 오는 짜릿함이 있다. 창석씨와 그때 뭔가 반짝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전했다.

<미쓰백> 장후남(김선영)

<미쓰백>

<미쓰백>의 김선영도 고창석처럼 ‘생활 연기’로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녀는 아동학대를 소재로 우울하고 진지한 톤을 유지하는 <미쓰백>에서 백상아(한지민)를 돕는 형사, 장섭(이희준)의 누나 장후남을 연기했다. 처음에는 동생을 힘들게 하는 상아를 욕하지만, 도를 넘어선 악인들의 행동에 분노하고 학대받았던 지은(김시아)를 보호해주는 인간적이고 따듯한 심성의 인물이다.

<미쓰백>은 무거운 주제를 조심스럽게 다룬 만큼 억지스럽게 코믹한 장면은 넣지 않았다. 대신 김선영의 구성진 사투리, 욕설로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옆집 아주머니, 단골 음식집의 사장님 등 분명 어디에선가 실제로 본 듯한 친숙한 느낌. 모든 사건이 종결되고 지은을 학대했던 주미경(권소현), 김일곤(백수장)이 처벌을 받는 뉴스를 발로 꺼버리는 혼신의 ‘발’ 연기는 통쾌함과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마약왕> 조성강(조우진)

<마약왕>

올해 조우진이 가장 빛났던 영화는 표정만으로도 짜증 유발하던 재정국 차관을 연기한 <국가부도의 날>인 듯하다. 그러나 큰 비중으로 출연, 조연을 의미하는 신스틸러라는 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짧은 등장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으로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이 있다.

<마약왕>은 난잡한 편집, 늘어지는 이야기 등으로 평단과 흥행 모두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확실히 송강호, 김소진, 김대명 등 주조연 가릴 것 없는 수많은 배우들의 열연만큼은 호평을 받았다. 그중 조직폭력배 조성강을 연기한 조우진은 고작 세 신에 등장했다. 다른 조연 배우들에 비해서도 매우 짧은 출연이지만 그는 충분히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조우진은 마약에 중독된 것을 표현하기 위해 무려 18kg을 감량하고 시종일관 초점 잃은 눈동자를 선보였다. 특히 세 번째 목욕탕 신, 마약을 투여해 고통을 잊은 채 폭력배들을 상대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내부자들>의 “요 썰고, 저 썰고”부터 <국가부도의 날>, <마약왕>까지. 조우진은 확실히 악역에도 어울리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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