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켄 로치 / 출연 폴 브래니건, 존 헨쇼 / 제작연도 2012년
켄 로치 감독의 모든 영화를 사랑한다. 역사물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작품이 하나의 긴 변주곡 같다. 가난한 소년과 야생 매의 우정을 다룬 <케스>(1969)로 시작해 영국 사회복지제도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꼰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에 이르기까지 켄 로치는 일관되게 노동계급의 애환과 연대를 통한 희망을 그려왔다.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이 유사한 주제와 플롯을 가지고 있음에도 다양한 소재, 디테일한 묘사와 개성 있는 해학이 각각의 이야기에 설득력과 존재 이유를 부여한다. 마니아로서 그중 한편을 꼽는 것은 쉽지 않은데, 누구든 재미있게 보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인 것 같다.
국내 개봉 시 이례적으로 우리말 제목 앞에 원제(‘The Angels’ Share’)가 나란히 적힌 것은 그 뜻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Angels’ Share’를 직역하면 ‘천사의 몫’으로 풀이된다. 증류소에서 위스키가 만들어지면 병으로 유통되기 전까지 큰 오크통에서 숙성 기간을 거치는데, 1년에 2%정도씩 양이 준다. 미세한 증발로 소실되는 이 2%를 ‘천사의 몫’이라 부른다고 하니 얼마나 시적인가? 그러나 은유적 제목에 비해 영화는 다소 직설적인 표현과 사실적 묘사로 전개된다.
로비(폴 브래니건)는 무일푼에다 마땅한 직업도 없는 청년이다.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와중에 여자친구가 아이를 출산한다. 가정을 꾸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지만 폭행사건 상대 패거리의 위협이 끊이지 않고,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집요한 협박과 회유를 통해 로비로부터 자신의 딸과 손자를 떼어놓으려 한다.
켄 로치의 영화 속 주인공이라면 이처럼 갖은 고초를 겪게 마련이고 관객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상황을 보며 마음을 졸이다 끝내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는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은,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최악의 상황에서 기적 같은 반전이 일어난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미세한 빛처럼, 기적은 아주 작은 연대의 손길에서 비롯된다.
사회봉사 관리자인 해리(존 헨쇼)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로비와 그의 친구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이들을 포용한다. 위스키 마니아로서 하루는 로비 일행을 집으로 초대해 위스키 맛을 보여주는데, 로비는 처음 경험한 몰트위스키의 세계에 매료되고 자신이 비범한 후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위스키를 매개로 해리와 로비는 점차 마음의 벽을 허물고 유대를 쌓아간다.
이 영화의 다소 뻔한 전개가 묵직한 감동으로 남는 것은, 고전적 플롯 구조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버무려 인물과 사건을 자유분방하게 이끌어가는 켄 로치 감독의 연출력 덕일 것이다. 한바탕 소동 속에 종잡을 수 없던 스토리는 결국 처음의 화두인 ‘천사의 몫’으로 돌아온다. ‘천사’와 ‘몫’에 대해 느낄 바와 생각할 거리를 가득 안겨주면서. 켄 로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사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이질적인 결을 가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고 난 후다. 형식이나 기교를 떠나 켄 로치는 자신이 의무를 느끼는 이야기에 집중할 따름이고 그것만으로도 모든 찬사는 그의 몫이다.
● 송재경 밴드 9와 숫자들 보컬이자 리더. 《9와 숫자들》 《유예》 《보물섬》 《수렴과 발산》 등과 솔로 앨범 《고고학자》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