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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가시나들> 김재환 감독 - 노년의 일상을 설렘으로
2019-02-28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경북 칠곡군 약목면 경로당. 이곳 문맹 할머니들의 유쾌한 한글 수업을 그린 영화가 등장했다. <칠곡 가시나들>은 소박하고 하루하루 일상이 즐거운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은 웃음과 감동이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이 사랑스러운 다큐멘터리에서 유일한 ‘예외 사항’은 ‘김재환 감독’이라는 크레딧이다. 미디어(<트루맛쇼>), 정치(<MB의 추억>), 한국 기독교(<쿼바디스>), 보수·진보의 사회상(<미스 프레지던트>) 등 대한민국을 날선 시선으로 비판해온 이슈 메이커인 그에게 무슨 변화라도 생긴 걸까. “안 그래도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 맞느냐고 하더라.” 관객이 보여주는 지금의 반응을 그도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그럼에도 김재환 감독은 “<트루맛쇼>(2011)를 하면서 꼬여서 그렇지 원래 내가 이런 장르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우리 할머니’라고 칭한, 약목면의 일곱 할머니와 그가 함께한 지난 3년의 시간을 풀어놓는다.

-많은 이슈를 낳은 다큐멘터리로 그간 개봉 때마다 순탄치 않았다. 이번엔 따뜻한 격려의 말이 많던데 기분이 여느 때와 다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마음 편하게 개봉할 수도 있구나’ 싶다. 전작을 개봉하면서 워낙 곡절이 많았다. <트루맛쇼>(2011)는 김재철 MBC 전 사장이 개봉 전날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서 지상파 방송에 나가지도 못하고 그 영향으로 멀티플렉스에서도 하루 한번 겨우 상영했다. 지상파의 위세가 셀 때였으니 후폭풍이 온 거다. <MB의 추억>(2012)은 당시 대통령을 소재로 삼은 터라 전국 4개관밖에 못 걸었고. <쿼바디스>(2014)는 기독교 협회에서 멀티플렉스 상영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해서 대형 극장들이 상영을 취소했다. <미스 프레지던트>(2017)는 입장이 다른 양쪽에서 각각 비난했고.

-경북 칠곡군은 전작 <미스 프레지던트> 속 인물이 살던 울산과 가깝다.

=지역적으로 바로 옆이다. 그래서 한번 내려가서 두 영화를 찍었다. <칠곡 가시나들> 찍다가 울산 가서 <미스 프레지던트> 찍고 그랬다. 두 영화의 노인들에게 ‘설렘’이라는 연결점이 있다.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을 그린 <미스 프레지던트>는 젊은 시절 자신을 설레게 했던 사람을 오르페우스처럼 되살리는 것이라면, <칠곡 가시나들>은 오늘, 지금의 나를 설레게 하는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모습을 그린다.

-<칠곡 가시나들>은 ‘시시한 다방’이라는 팟캐스트에서 할머니들의 시를 듣고 시작하게 됐다고.

=그전까지 4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불편한 소재라 우리 어머니에게도 부담이었겠구나 싶었다. 항상 동료 권사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시는데, <쿼바디스>에서는 아들이 목사를 향해 ‘예수 믿는 사람 맞냐’고 따지니. (웃음) 그러던 차에 할머니들 사연이 소개된 팟캐스트를 들었다. 영화는 어떻게 돼도 일단 ‘효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어머니가 친구 분들과 함께 보며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봐야겠다 싶었다.

-영화 속 할머니들의 평균 나이가 86살, 1930년대생이다. 민족말살정책으로 시행된 우리말 사용 금지의 영향,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움에서 소외됐던 세대의 노년기를 담는다.

=1930년대 여성들은 여성이 겪는 일반적인 차별에 더해 민족 차별이라는 특수성까지 이중으로 짊어진 세대다. 당시 여성들은 배움에서 소외됐다. 여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면 친정에 시댁 흉보는 편지 보낸다고 안 가르쳐줬다고 하더라. 영화가 나오고 ‘왜 칠곡 머스마들은 없냐, 차별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웃음) 가부장제와 맞짱 뜨는 식으로 ‘그래, 우리 가시나들이다’ 하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칠곡군에 한글 교육을 하는 곳이 여럿 있는 걸로 아는데, 약목면 경로당의 일곱 할머니를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이었나.

=더 오지도 있었고, 또 말씀 잘하는 분들도 있었고, 시를 잘 쓰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약목면 할머니들이 다른 곳 할머니들보다 연세가 많았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도 노동하는 다른 할머니들과 달리 이미 노동을 졸업하신 분들이라 촬영할 시간이 더 많았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들이 칠곡군의 다른 26개 학교 할머니들에 비해 한글을 배운 지 얼마 안 됐다는 것도 촬영을 따라가기에 좋았다. 뭣보다 나는 약목면이 좋았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곳 골목이 가진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동네에 길고양이가 많다. 사람들이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곁에서 지켜보니 고양이가 할머니들과 외로움도 나누고, 같이 살아가는 존재더라.

-촬영하는 3년여 동안 할머니들의 카메라에 대한 인식도 변했겠다.

=당사자인 할머니들도 그렇고, 자녀들도 처음엔 걱정이 많았다. 도시에서 어떤 남자가 와서 영화를 찍겠다고 하니 걱정도 되고, 게다가 MB와 박근혜 관련 영화를 찍은 감독이고. (웃음) 6개월간은 스킨십을 위해 카메라도 설치하지 않고 한글 교실 옆방에서 참관만 했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마음을 여셨다. 한번은 촬영 중에 박금분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촬영 언제 끝나냐’고 하시길래 부담이 되셨나보다 해서 ‘금방 끝날 거예요’ 했더니, ‘끝나면 그럼 안 오겠네’ 하시면서 우시더라.

-촬영 후 현재의 변화도 있겠다. 할머니들이 영화는 다들 보셨나.

=얼마 전에 칠곡에 처음 영화관이 생겼고 거기서 할머니들이 <칠곡 가시나들>을 보셨다. 할머니들이 자주, ‘내가 오늘이라도 콱 죽어버리고 싶은데 영화 보고 죽으려고 아직 안 죽는다’ 하셨다. 그럴 때 ‘너무 힘드시면 참지 말고 돌아가셔도 된다’고 농담하고 그랬다. (웃음) 한글 학교 다니고 촬영하면서 에너지가 생겨 건강이 좋아지셨다. 태어나서 처음 영화를 보신다고 하셨는데, 많이 웃고 우시면서 ‘이제는 죽을 수 있다’ 하시더라. 지금도 한달에 한번씩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조만간 약속대로 서울 좋은 데 구경시켜드리고 싶다.

-앞서 노년의 생활을 그린 <워낭소리>(2008),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같은 다큐멘터리가 가진 비극성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큰 사건 없이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의 유쾌한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장르의 다큐가 성공하려면 관객을 울려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나는 그게 선입견이라고 보지만 산업적으로 데이터라고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번 작품의 투자 미팅을 하면서도 그런 요구가 더러 있었는데 내가 가진 방향과 맞지 않아 고사했다. 이 작품에서 노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노년을 바라보는 획일적인 프레임, 과거를 뜯어먹고 사는 회고 아니면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말 그거밖에 없을까. 노년의 일상을 설렘이라는 시각으로 재해석 해보겠다는 생각이 컸다.

-결국 ‘노화’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다.

=약목면 할머니들이 재밌게 사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같이 즐길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경로당에서 한글도 배우고 함께 즐겁게 지내신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KBS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분으로 <TV소설>을 폐지하고 일일드라마를 재방영하는 걸 지적하고 싶다. <아침마당> <6시 내고향> <가요무대> 등 KBS 프로그램은 노년층의 유일한 엔터테인먼트인데, KBS가 수신료를 받으면서 공영방송을 포기하고 있다. 개선되지 않으면 곧 전국 할머니들이 이를 성토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배포할 거다. 할머니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허하라! 누군가 그러더라 ‘김재환은 이런 휴먼 다큐를 하면서도 싸울 수 있다’고. (웃음) 유쾌하게 싸워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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