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배리 레빈슨 / 출연 로빈 윌리엄스, 포레스트 휘태커 / 제작연도 1987년
때는 2016년 9월 2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처음 전파를 타는 날이었다. 지난 몇달간 걱정한 것과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했는데 문제는 방송이 끝나기 10초 전에 발생했다. “지금까지 김어준이었습니다, 안녕!!!” ‘내가 잘못 들었나?’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안녕히 계십시오’가 아니라 ‘안녕’이라니! 문자 게시판이 들끓었다. 청취자에게 웬 반말이냐, 건방지다, 불쾌하다, 무례하다 등등. 사내 반응도 싸늘했다. “파격도 좋지만 ‘안녕’이 뭐야 ‘안녕’이.” “팟캐스트처럼 진행할 거야? 당장 존댓말로 하라 그래!” 하지만 ‘그분’은 이 모든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튿날도 그다음날도 계속해서 그놈의 ‘안녕’을 외쳐댔다. 오 마이 갓! 그 순간 떠오른 영화가 바로 <굿모닝 베트남>이다.
1965년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애드리안 크로너(로빈 윌리엄스)는 미군 라디오 방송 DJ로 사이공, 즉 호찌민에 오게 된다. 뉴스는 검열을 거쳐야 한다, 흥겨운 팝은 틀지 마라,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으니 덥다고 하지 마라, 는 참견이 더해진다. 온 에어 불이 켜지고 마이크 앞에 앉은 애드리안. 그는 “굿~~~~ 모닝 베트남”이라는 특유의 우렁찬 오프닝으로 방송을 시작하며 속사포 같은 멘트를 쏟아낸다. 상사의 지시를 무시한 채 흥겨운 로큰롤을 트는가 하면 성대모사로 전· 현직 대통령을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날것 그대로의 방송을 내보낸다. 통제 불가능한 그의 방송은 윗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만 병사들은 그의 라디오 쇼에 열광한다. 베트남 사람들과 친구가 되면서 애드리안은 그들의 눈을 통해 미군이 자행하는 전쟁의 실체를 목격하게 된다. 영화의 백미는 애드리안이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What a Wonderful World>를 트는 대목이다. 베트남의 평화로운 마을. 하지만 이내 곳곳에서 포탄이 터지고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발가벗은 채 울며 밖으로 뛰쳐나오는 아이들. 이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배경으로 루이 암스트롱의 감미로운 노래가 흐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함께한 지난 2년 반은 내게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최순실과 태블릿PC 사건, 촛불 집회,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역사적인 남북 교류 그리고 북미정상회담. 하루가 멀다 하고 핵폭탄급 뉴스가 펑펑 터지는 가운데 아침 7시6분이면 어김없이 브레이크봇의 <Programme>이 흘렀다(<김어준의 뉴스공장> 시그널 음악). 10년 넘게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진행했던 손석희 앵커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쭈그리고 앉아 양말을 신을 때”를 가장 괴로운 순간으로 꼽았다지만 나는 이른 아침 머리를 감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때마다 난 영화 속 얼굴들을 떠올려보았다. 보트 위에서, 지프차 안에서, 때로는 참호 속에서 방송을 듣던 사람들. 오늘 내가 만드는 방송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웃음 그리고 의미 있는 메시지로 남기를. 이번 봄 개편으로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게 됐다. 지긋지긋한 새벽 출근도 이제 곧 추억이 될 것이다. 고로 이 글의 끝인사는 바로 이 멘트다. “굿바이! 뉴스공장! 안녕!!!”
● 이윤정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2003년 MBC 공채 작가로 방송 일을 시작했다. 설계실에서 밤새우는 게 싫어 건축 대신 방송을 택했지만 이후 작가실에서 더 많은 밤을 지새웠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작가로 일하며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와 tbs지부 수석 부지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