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음악평론가 황덕호가 본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왜 《Possibilities》 앨범 제작과정이어야 했을까
2019-03-07
글 : 황덕호 (재즈 칼럼니스트)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 새로운 삶의 가능성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영화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감독 더그 바이로, 존 파인, 2006)은 기본적으로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완성되는지에 관한 기록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 허비 행콕은 2005년 자신의 앨범 《Possibilities》를 만들면서 그 과정을 한편의 영화에 담았다. 음악이라는 것이 혼자 골방에 앉아 피아노를 치거나 기타를 퉁기면서 이를 악보에 적고 스튜디오에 가서 간단히 녹음해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과정은 그다지 영화에 담을 만한 것이 못 될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곡을 만든 작곡가가 연주 이전에 많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를 연주하는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음악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악보에 기록되어 있는 클래식 음악도 리허설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그 상황을 기록한 많은 리허설 녹음과 메이킹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 대략의 멜로디 라인과 화성 진행만을 적어놓은 대중음악의 작곡은 그것이 실제 음악으로 완성되기까지 여러 단계의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연주하는 밴드음악의 경우 음악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그 결과가 애초 작곡한 음악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특히 어떤 음악이 거의 백지상태에 있다가 뮤지션들이 서로 만나면서 비로소 출발한다면 그 음악의 완성 과정은 밀실에서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매우 공개적이고 시각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음악의 가능성, 방향성을 모두 열어둔 채 음악인들이 만나 구체적으로 결정해나간 허비 행콕의 앨범 《Possibilities》는 영화로 기록하기에 적합한 앨범이었다.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10개 곡과 13명의 게스트

건반 주자이자 밴드 리더인 허비 행콕은 《Possibilities》를 구상하면서 각각의 수록곡마다 자신의 파트너가 될 게스트 음악인을 선정했다. 10개 곡에 출연할 게스트 뮤지션은 13명으로, 존 메이어, 카를로스 산타나와 안젤리크 키드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폴 사이먼, 애니 레녹스, 스팅, 조니 랭과 조스 스톤, 데이미언 라이스와 리사 해니건, 라울 미동, 트레이 아나스타시오 등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일류 음악인들이다(영화에는 재즈 색소포니스트 웨인 쇼터, 전자음악가 브라이언 이노와 작업하는 모습도 나오지만 결국 음반에 실리지는 않았다). 이들이 각각 추구하는 음악은 팝에서부터 블루스, 록, 포크, 라틴음악, 아프리카음악까지 실로 다양한데 그럼에도 허비 행콕은 이들과 만나기 전 최소한의 아이디어만 주었을 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음악을 연주하면서 음악의 컨셉을 현장에서 함께 만들어간다. 그는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관습적으로 만들던 음악적 틀을 부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행콕의 나이는 65살이었다.

허비 행콕이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자신의 음악적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의 앨범을 위해 선택한 음악인은 대부분 그보다 나이 어린 젊은 음악인이며 그가 연주하는 재즈와 음악적으로 거리가 먼 포크, 팝 계열의 뮤지션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이 앨범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 누가 허비 행콕과 폴 사이먼, 심지어 데이미언 라이스, 리사 해니건이 협연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상상할 수 없었던 그 가능성은 《Possibilities》를 통해 현실이 되었다.

허비 행콕이 이토록 새로운 가능성에 집착하는 것은 젊은 시절 그를 재즈계의 중심인물로 성장시킨 마일스 데이비스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주지하다시피 마일스 데이비스는 1940년대 말부터 재즈계의 선두주자로 부각되어 세상을 떠난 1990년대 초까지 대략 40년동안 재즈의 흐름을 주도했는데, 그런 점에서 마일스 데이비스는 ‘변화’, ‘새로운 것’을 음악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한 전형적인 현대 예술가였다.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허비 행콕은 1963년부터 1968년까지 6년 동안 ‘마일스 데이비스 오중주단’에서 연주했는데 그 기간에 행콕은 데이비스가 추구한 음악의 본질을 체득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말이지만 데이비스는 자신의 밴드 멤버들에게 “무대 위에서 연주하지 말고 연습하라”고 주문했다. 다시 말해 무대 밖 연습실에서 연습하던 것을 완성해서 무대 위에 올려놓지 말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날것을 연주하듯이 무대 위에서도 늘 신선하고 새로운 것을 들려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트럼펫), 웨인 쇼터(색소폰), 허비 행콕(피아노), 론 카터(베이스), 토니 윌리엄스(드럼)로 구성된 마일스 데이비스 오중주단이 만들어낸 연주는 그 음악이 어떻게, 어디로 흐를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으며 그 긴장감은 살아 숨 쉬는 신선함을 만들어냈다.

1960년 전설적인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이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탈퇴한 후 대략 3년간 마일스 데이비드 밴드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침체에 빠지는 듯했는데 그것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실로 오랜만에 재즈의 왕좌에서 물러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왕좌를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탈퇴한 콜트레인의 새로운 사중주단이 차지하자 마일스 데이비스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63년 허비 행콕을 비롯해 새롭게 영입한 젊은 연주자들의 영민함은 마일스 데이비스를 다시 한번 왕좌로 복귀시킨다. 이때 마일스 데이비스가 젊은 단원들에게 지시한 것은 오로지 신선한, 새로운 음악이었다.

허비 행콕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곁을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한 1968년, 마일스 데이비스는 자신의 밴드를 전체적으로 개편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1960년대 내내 지속되던 반전, 인권 운동의 분위기하에 1967년 디트로이트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기존 재즈로는 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담을 수 없다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하지만 밴드를 탈퇴하기로 결심했던 허비 행콕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데이비스보다 14살이나 젊은 당시 20대의 그는 그 점을 더욱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1960년대를 20대로 맞이한 1940년대생 백인들의 음악이 로큰롤이듯이 동시대를 살던 흑인 청년들의 음악은 솔과 펑크(funk)였다. 영화에서도 자료 화면이 등장하듯이 허비 행콕은 1970년대 초 새로운 밴드 ‘헤드 헌터스’를 결성해서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풍의 펑크 리듬에 무그 신시사이저 즉흥연주로 청중을 도취시키며 당시 재즈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는데 그 활력과 기발함은 선배 데이비스도 질투할 정도였다.

<허비 행콕: 무한한 가능성>

해보지 않은 것들을 찾아서

1980년대 초 허비 행콕은 종전에 그가 유지했던 모든 음악적 범주를 깨버렸다. 새롭게 대두한 전자 음향에 DJ의 스크래치 사운드마저 도입한 그는 싱글 《Rock It》으로 미국 음악 차트를 강타했고 이 곡은 당시 ‘브레이크댄스의 예찬가’가 되었다. 영화 에서 허비 행콕은 당시를 증언한다. “어느 날 브레이크댄스 경연 대회에 갔더니 25개 출전 팀 중 24개 팀이 《Rock It》을 틀고 춤을 추더라고요.” 이후로도 행콕은 재즈계에서 활동했고 그의 음악의 중심은 재즈였지만, 실상 그의 음악적 경계는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원했다.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데이비스가 젊은 연주자들에게서 새로운 사운드의 아이디어를 얻었듯이 그는 새로운 인물, 재즈 밖의 인물을 찾아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즉흥 록밴드 피시의 기타리스트 트레이 아나스타시오와 잼세션을 하던 허비 행콕은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 “헤드헌터스 스타일의 펑크를 연주하고 싶었다면 폴 잭슨(헤드 헌터스의 베이스 주자)에게 전화했겠죠. 하지만 난 내가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을 연주하고 싶어 당신을 찾아온 거예요.”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경이로웠던 장면은 평소 허비 행콕 음악과 비교적 거리가 먼 라울 미동, 폴 사이먼과 함께 작업하는 모습이었다. 라울 미동은 자신의 기존 음반에는 들려주지 않던 대단한 스캣을 재즈 보컬리스트들이 무색할 정도로 뽑아냈는데 이는 영화가 아니었다면 결코 확인할 수 없었던 대목이다(아쉽게도 이 대목은 음반에 실리지 않았기에 영화로 볼 수밖에 없다). 폴 사이먼은 그의 대표곡 <I Do It for Your Love>를 부르는데 이 곡에 중동 지역 타악기의 절묘한 그루브가 입혀지는 낯선 상황에서도 폴 사이먼은 전혀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노래한다. 허비 행콕만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것이 아니라 그의 게스트 음악인들도 행콕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서로의 음악적 가능성을 찾게 해주는 작업은 결국 음악은 인간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허비 행콕의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독실한 SGI(국제창가학회) 회원으로, 한 인터뷰에서 음악의 경계를 나누고 서로 배타하는 것이 얼마나 속물적인 것인지를 명상을 하며 깨우쳤다고 밝힌 적 있다. 그러니까 음악적 경계를 부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작업은 허비 행콕에게 단지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근본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그가 영화에서 말했던 것, “나의 일상적인 사소한 경험들을 보다 높은 차원의 무엇으로 고양시키는 것” 바로 그 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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