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위신 감독과 배우 견자단이 3편까지 끌고 온 <엽문> 시리즈가 외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연출은 <매트릭스>(1999), <와호장룡>(2000), <킬 빌>(2003)로 할리우드까지 접수한 홍콩의 전설적인 무술감독이자 영화감독 원화평이 맡았다. <엽문3: 최후의 대결>(2015)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던 원화평은 <엽문 외전>에서도 액션 거장의 여유를 뽐낸다. <엽문 외전>은 3편에서 영춘권의 전통 계승자를 자처하며 엽문(견자단)에게 도전했던 장천지(장진)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엽문에게 패한 뒤 무술계를 떠나 아들과 평범하게 살려고 했던 장천지가 홍콩의 갱단과 얽히면서 다시 무술인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엽문 외전>에서 견자단의 자리를 대신하는 건 <라이즈 오브 더 레전드: 황비홍>(2014), <살파랑2: 운명의 시간>(2015), <더 브링크>(2017) 등으로 유명한 배우 장진이다. 무술을 하다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장진은 “홍콩 액션영화는 하나의 예술”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액션배우다. <엽문 외전>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지난해 10월, 원화평 감독과 배우 장진을 만났다.
-<엽문> 시리즈는 엽위신 감독과 견자단의 작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엽문 외전>의 감독과 주연배우로서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원화평_ <엽문> 시리즈와 다른 <엽문 외전>만의 새로운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편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보면 부담과 압박을 느끼며 작업한 영화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엽문3: 최후의 대결>에서 엽문에게 도전장을 내민 장천지의 이야기가 <엽문 외전>에서 펼쳐지는데, 협을 중시하고 정의감이 넘치며 무술에 애착이 있는 이 캐릭터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진_ 기쁜 마음으로 <엽문 외전>을 찍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작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부담이 있다면 어떻게 멋있게 잘 찍을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액션에선 기존 <엽문> 시리즈와 어떻게 차별화를 꾀했나.
원화평_ 사람은 팔이 두개고 다리가 두개인지라 액션에 큰 변화를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항상 새로운 액션을 고민한다. <엽문 외전>에서는 간판 위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액션 장면이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다 나온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좋은 액션영화에는 새로운 액션이 있어야 한다.
장진_ 액션영화를 준비할 땐 고생할 준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에도 액션 신이 꽤 많은데, 땀 흘리고 지치고 고생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며 작업에 임했다.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연기하고 싶다면 액션영화를 찍으면 안 된다. (웃음)
-간판 위 액션 장면을 찍을 때 간판의 높이가 생각보다 높아서 놀랐다고. 그러자 원화평 감독이 직접 시연하며 안전하다는 걸 보여줬다던데.
원화평_ 모든 장면을 내가 다 테스트하진 않는다. 급박한 상황이나 꼭 필요한 상황일 때 직접 테스트해보고 어떤 안전장치가 추가로 필요한지 얘기하는 식이다.
장진_ 감독님이 몸소 시연하는 걸 보고 있으면 사실 심경이 복잡해진다. (웃음) 감독님을 존경하는 마음도 들고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어쨌든 이 장면이 내게도 큰 도전이었다. 와이어에 매달린 배우 여럿이 간판에 올라가 액션을 하기 때문에 동선과 액션의 합이 정확히 맞아야 했다.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동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러 배우와 작업했는데 장진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또 장진 배우가 경험한 무술감독 그리고 감독 원화평은 어떤 사람인가.
원화평_ 장진은 액션뿐 아니라 연기도 잘한다. 두 가지 모두 잘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 머릿속으로 이 역할엔 이 배우가 어울리겠다고 상상한다. <엽문 외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장진의 캐스팅은 이상적인 선택이었다.
장진_ 원화평 감독님의 추천으로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2013)에도 참여했다. 내겐 늘 고맙고 가족 같은 존재다. 평상시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편하게 대해준다. 배우의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에 의견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감독님의 현장은 굉장히 안전하다.
-무섭거나 어려운 감독은 아닌가 보다.
원화평_ 무섭다거나 거칠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착한 사람이다. 그런 오해를 받아서 억울하다. (웃음)
장진_ 카리스마는 있지만 화내는 모습은 한번도 본 적 없다.
-<와호장룡>, <영춘권>(1994) 등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양자경 배우도 <엽문 외전>에 출연한다. 이번엔 일종의 악역을 맡겼다.
원화평_ 양자경이 악역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처음엔 양자경이 연기한 갱단의 보스 캐릭터를 남자배우에게 맡길까 했지만 그러면 종전의 악역과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양자경 배우에게 일단 연락이나 해보자 싶어서 캐스팅을 제안했는데, 오랫동안 고민한 뒤 출연을 수락했다. 결과적으로 양자경 덕에 카리스마 있고 멋있는 캐릭터가 탄생한 것 같다.
장진_ <와호장룡>에 무술팀으로 참여했을 때 양자경 배우와 같이 작업했다. 그때 액션 신을 찍다가 양자경 배우가 손을 다쳤다. 피가 나는데도 괜찮다며 촬영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프로라고 느꼈다. <엽문 외전> 때도 양팔에 멍이 들 정도로 쉽지 않은 액션을 소화했다. 이번에도 자신의 몸에 난 멍이나 상처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촬영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금 프로 정신을 볼 수 있었다.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홍콩 액션영화가 그때의 인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원화평_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 홍콩영화가 전성기를 누리던 1980~90년대엔 1년에 영화를 300~400편 제작했다. 제작 편수는 많았지만 그 영화들이 모두 건강하고 좋지는 않았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실질적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모든 것이 워낙 빨리 돌아갔다. 요즘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프로덕션 과정에서부터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 그 결과 현재 해외에서 홍콩영화가 좋은 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제작 방식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와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원화평_ 비결은 없다. (웃음) 열심히 계속 일을 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까. 누군가 이제 그만 은퇴할 때가 됐다고 말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만, 움직일 힘만 있으면 계속 영화를 찍고 싶다.
-액션 외에 다른 장르에 도전하고 싶진 않나.
장진_ 액션배우로서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건, 액션배우가 액션을 하지 않으면 의외라고 생각하는데 일반 배우가 액션을 하면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당연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다만 변신을 위한 변신을 위해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화평_ 관객은 장진을 액션배우로 인식하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연기를 워낙 잘하는 배우라 액션뿐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도 연기를 잘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