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영화계 미투, 배우 정요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받아
2019-03-08
글 : 임수연
남성 페미니스트로 활동했던 배우의 성폭력 가해 공론화가 의미하는 것

지난 2월 26일 <씨네21>이 영화계 미투(#MeToo) 제보를 받기 위해 개설한 계정(metoo@cine21.com)으로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자신을 배우 겸 미술가라고 밝힌 A씨가 지목한 가해자는 <인연인지> <테이블 매너> <오목소녀> 등의 독립영화에 출연한 배우 정요한이다. 그는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 페미’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등(2017년 2월 활동을 중단했다.) 남자 페미니스트로서 영화계에서 목소리를 냈던 인물이다. 최근에는 한 유튜브 채널의 촬영 및 편집자로도 인지도를 높였다. 같은 날 트위터 계정 ‘배우 정요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연대모임’에도 정씨의 성폭력 가해를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고발문에 따르면 정씨는 2010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 관람을 위해 지인들과 함께 숙박하기로 한 숙소에서 만취 상태의 A씨를 강간했고, 2011년에는 A씨의 집에서 추행을 했고, A씨가 완강히 거부했다. A씨는 2018년 6월 SNS에서 “정요한은 강간범이다. 주변인들이 이 사실을 묻어주느라 공론화가 안 되고 있다”는 제3자의 글을 보고 공론화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A씨의 사정을 알고 연대하게 된 반성폭력 활동가 B씨의 도움으로 심리상담 등의 지원을 받았다. 정씨와의 일이 2013년 친고죄 폐지 이전에 발생했기 때문에 법적 다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B씨가 소개한 성폭력 상담사의 조언을 얻어 실질적인 보상수준을 정리한 것이 지난해 말. 하지만 A씨가 정씨에게 원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따르지 않고 합의에 이르는 데 실패하자 A씨와 연대인이 공론화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3월 초, A씨와 B씨를 직접 만나 구체적인 사건 정황과 정씨가 1월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입장문 내용, 2월 26일과 28일에 올린 추가 입장 표명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A씨는 2010년 당시 술에 취해 기억이 부분적으로만 났고, 사건 다음날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맞은편에서 웃으면서 밥 먹는 정씨의 얼굴을 본 후 “무언가 잘못됐구나 깨달았다”고 부연했다. 상호 합의하에 맺은 관계였다는 정씨의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이 ‘왜 술을 마시고 남자들과 숙소를 같이 썼냐’고 생각할 것이 우려되고, 스스로도 자책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A씨의 주변인들이 그의 집을 공용 숙소처럼 쓰던 2011년의 강제추행은, 다른 친구가 정씨와 동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설마 문제가 생길까” 생각했다가 벌어진 결과였다. 더불어 “위계관계가 존재할 수 없는 사이였다”는 정씨의 반박은 사실과 다르다며, 문화예술계에 진출하고 싶었던 A씨가 겹치는 지인이 많은 정씨 때문에 다른 인맥까지 포기하기 어려웠고 “미술과 영화 작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이라” 그와 동행한 작업을 피할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B씨는 남성 페미니스트에게 쉽게 마이크가 주어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문화예술계 내 조직 환경을 좀 고민했으면 한다. 정씨가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며 얻은 지지가 최근의 입장문을 공개하는 데 가장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남성에게 너무 쉽게 자리를 내주고, 그것이 젠더권력을 흐릴 수 있다.”

기자는 정씨에게 팩트를 확인하고 충분한 반론권을 주고자 여러 번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먼저 SNS 계정을 통해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우선 연락 감사드린다. 입장문에서도 보셨듯 이 일이 공론화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 호소인이 납득할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 중재를 요청하고 조사 및 수사를 거쳐 제대로 해결되어 매듭지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방식으로든 제대로 조사를 받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가해지목인의 입장으로는 먼저 중재를 요청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피해 호소인이 중재 요청을 해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일에 관해 피해 호소인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후 전화 통화 등 다른 방식의 취재를 요청했으나, 더이상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이에 A씨는 “해당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수사가 불가능하며, 정씨는 소속된 기관, 단체가 없기 때문에 조사를 위한 진정을 넣을 수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 조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성폭력 피해자의 호소를 일방적이고 비이성적인 주장으로 여기는 남성 중심적 사회의 편견을 보여준다. 나중에라도 법이 바뀌어 처벌이 가능해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 올해도 <씨네21>이 #미투(#MeToo) 운동을 이어갑니다. 영화계 #미투를 metoo@cine21.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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