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사는 12살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이 사람답게 살고자 있는 힘껏 발버둥친 고난의 한철을 담아낸 이야기로, 이 어린 소년의 힘겨운 수난사에 어쩌면 우리가 평생 모르고 살았을 지구 반대편 폭력의 현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는 특히 지금 이 순간 레바논 사회의 여성들이 어떤 끔찍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마주하게 하며, 그들이 처한 잔혹한 상황이 자인의 인생을 어떻게 지옥으로 만들어가는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엄마처럼 조혼으로 팔려간 여동생 사하르는 이른 임신으로 사망하고, 가출 후 함께 살던 미혼모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은 아기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를 남겨둔 채 불법체류자로 잡혀간다. 시장에서 만난 또래 친구 메이소운은 스웨덴 입양을 꿈꾸지만 그게 악몽이 되진 않을지는 영원히 미지수다. 실상 자인의 고통은 모두 자인이 믿고 사랑하며 의지하는 주변 여성들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들이 괴로운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면 자인 또한 그런 고통을 감내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렇게 우리 인간의 삶의 조건들이 서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지 매 순간 처절하게 느끼고 바닥까지 좌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또한 이 전염병 같은 절망의 현장을 계속 지켜보고 응원하게 만드는데, 그 힘은 어떤 순간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그런 시늉조차 하지 않는 주인공 자인에게서 나온다. 자인은 또래에 비해 작고 마른 몸과 그 또래로는 절대 보이지 않을 맹렬하고도 피로한 눈빛을 하고서 늘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간다. 동생을 팔아넘긴 가족을 등지고 집을 떠나면서, 갑자기 사라진 보호자의 아이에게 자신이 먹을 것을 나눠주면서,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어른에게 칼을 휘두르고 또 다른 힘겨운 인생이 태어나지 않게 부모를 고소하면서. 그렇게 사랑하고, 분노하고, 자신을 주장하면서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어린 소년의 끝없는 생명력과 강력한 의지에 압도당하며 이 아수라의 지옥을 뚫고 함께 빠져나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고민하게 된다. 이 망해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결과를 짊어지고 사는 이들을 위해, 곧 나의 고통으로 번질 그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더불어 잘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최근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넷플릭스의 코미디 드라마 <굿 플레이스>를 보며 <가버나움>이 남긴 질문을 다시금 떠올렸다. 설계자 마이클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명의 인간도 ‘굿 플레이스’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요즘의 삶은 너무 복잡해서 천국에 갈 만큼 착하게 산다는 건 불가능해졌다고, 슈퍼마켓에서 토마토 하나를 사는 작은 행동으로 자신도 모르게 유해한 살충제 사용을 장려하고 노동력 착취와 지구온난화에 기여하게 된다고 탄식한다. 정말 그렇다. 오늘날 우리의 세계는 너무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우리의 작은 선택이 누군가의 불행을 자초하기 십상이며, 누군가의 고난이 곧 나의 것이 될 가능성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세계의 고통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가 더이상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저주의 땅에서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 그런 땅에서 우리는 끝없이 이런 고통의 영화를 만나야 할 것이다. 내 삶의 불안과 절망이 과연 진짜로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 낱낱이 들여다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