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설경구, 거기에 천우희까지. 3월20일 개봉하는 <우상>은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영화다. 뺑소니 사건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영화에서 세 배우는 각각 가해자의 아버지(한석규), 피해자의 아버지(설경구), 피해자의 아내(천우희)를 맡아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배우들의 연기 외에도 <우상>에는 또 하나의 기대 포인트가 있다. 2013년 평단의 호평 세례를 받았던 독립영화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 <한공주>는 여중생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 담담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노와 슬픔을 전달했다. 이수진 감독은 암담한 현실을 조심스러우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으며 주인공 한공주를 연기한 천우희는 단번에 충무로를 이끌어갈 차세대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이수진 감독 외에, 독립영화에서 반짝이는 재능을 보여줬던 다른 감독들은 어떤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날까. <우상>의 개봉과 함께 독립영화, 단편영화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감독들의 차기작을 모아봤다.
<파수꾼> 윤성현 감독 차기작 <사냥의 시간>(가제)
첫 번째 기대주는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다. 2011년 불안정한 소년들의 모습을 심도 있게 그려내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파수꾼>. 학교 폭력을 소재로 가해자, 피해자 등 여러 인물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담아내며 “보기 전엔 소년을 안다고 말하지 마라”는 극찬까지 이끌어낸 작품이다. 당시 28살이었던 윤성현 감독은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갈 신인 감독으로 꼽히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다.
<사냥의 시간>(가제)은 그런 그가 8년 만에 내놓는 장편영화다. 디스토피아와 드라마 장르를 결합한 영화로 경제 위기로 인해 망가진 도시 속, 범죄를 계획하는 네 친구들과 그들을 쫓는 정체 모를 남자의 추격전을 담았다. 순 제작비에만 90억 원이 소요됐으며 <파수꾼>의 이제훈, 박정민이 다시 주연을 맡았다. 거기에 최우식, 안재홍까지 합류해 네 친구들을 연기했다. 윤성현 감독은 “시각적으로는 <칠드런 오브 맨>, <매드 맥스> 등을 참고했고 추격전이라는 점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터미네이터> 사이 어디엔가 위치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7월 촬영을 완료하고 현재 후반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들> 윤가은 감독 차기작 <우리집>
2011년 정연주 주연의 단편영화 <손님>, 2013년 김수안 주연의 단편영화 <콩나물>로 호평을 받은 윤가은 감독. 그녀는 2015년 첫 장편영화 <우리들>을 통해 다시금 그 재능을 입증했다. 관계에 대한 모호함과 불안을 아이들을 시선으로 그려낸 <우리들>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부산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 노미네이트됐다.
윤가은 감독의 차기작은 <우리집>이다. 제작, 촬영, 미술, 음악 등 <우리들>의 주요 스탭들이 그대로 참여하고 로케이션까지 동일하게 설정한 영화다. <우리들>의 속편 혹은 스핀오프 같은 느낌을 주지만 <우리집>은 전혀 다른 내용을 다룬다. 초등학교 5학년 하나(김나연)가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유미(김시아) 자매와 가까워지고, 함께 그들의 부모님을 찾아가는 이야기. <우리들>은 오묘한 ‘밀당’이 주가 됐다면 이번에는 아이들의 의기투합을 볼 수 있겠다. 윤가은 감독도 “자기복제를 해서는 안 되는데”라고 생각, <우리들>과 겹치지 않기 위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 현재 <사냥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후반 작업이 진행 중이다.
<폭력의 씨앗> 임태규 감독 차기작 <파도치는 땅>
군대 부조리를 다룬 영화로는 윤종빈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 등이 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임태규 감독의 <폭력의 씨앗>이다. 다만 앞선 영화들이 부조리한 현실에 고통받는 인물들을 그렸다면 <폭력의 씨앗>은 폭력에 점점 물들어가는 인물을 내세웠다. 지나칠(?) 정도의 현실감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관객들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 군대라는 소재를 활용해 폭력의 전염성을 매섭게 집어낸 <폭력의 씨앗>은 그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폭력의 씨앗>에서 군대 문제를 가정 폭력 문제로까지 확장한 임태규 감독. 그는 차기작 <파도치는 땅>에서는 개인이 아닌 국가의 폭력을 꼬집었다. 생활고로 힘들어하는 문성(박정학)이 간첩 혐의를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아버지(전영운)의 투병 소식을 접하고, 그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간첩으로 오해받아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한 어부의 실화를 모티브로, 가족의 이야기를 더한 영화다. 이미 제작을 완료하고 오는 4월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또한 임태규 감독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스릴러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정리하고 있는 아이템이라 공개하기는 좀 어렵다”며 <파도치는 땅> 이후 차기작에 대하 언급하기도 했다.
<소공녀> 전고운 감독 차기작 <키스가 죄>
2018년 평단과 관객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독립영화는 단연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가 아닐까. 담배와 위스키를 위해 집까지 포기하는 주인공 미소(이솜)는 다소 철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고운 감독은 그 ‘철없다’는 생각 자체를 재기발랄하게 반문했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취향을 지켜나가는 미소의 짧은 여정은 ‘N포 세대’의 공감을 이끌며 호평을 받았다. 독립영화 집단, 광화문 시네마의 공동 대표로서 첫 장편영화 <소공녀>를 연출한 전고운 감독은 청룡영화상, 판타지아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무려 열 개의 상을 거머줬다.
전고운 감독은 조금 독특한 형식의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아온다. 미스틱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아이유(이지은) 주연의 옴니버스 영화 <페르소나>에 참여했다. 총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 각각 다른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그중 전고운 감독이 연출하는 에피소드는 <키스가 죄>. 소녀들의 발칙한 복수극으로, 아이유와 함께 단편영화 <동아>로 미장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연기부문을 차지했던 심달기가 주연을 맡았다. <페르소나>는 <키스가 죄> 외에 임필성 감독의 <썩지 않게 아주 오래>, 이경미 감독의 <러브 세트>,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로 구성되며 4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몸값> 이충현 감독 차기작 <콜>
단편영화가 이토록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나. 이충현 감독이 연출한 14분짜리 영화 <몸값>(2015)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매매를 시도하는 남자(박형수)와 여고생(이주영)의 몸값 흥정을 담은 <몸값>은 충격적인 반전과 메시지로 평단, 관객들의 놀라움을 샀다. <몸값>으로 국내외 영화제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충현 감독은 당시 26살의 나이로 단번에 한국 영화계의 유망주가 됐다. 이후 영화 제작사 용필름이 곧바로 그를 스카우트했다.
이충현 감독은 용필름에서 정지우 감독의 <침묵> 각색에 참여한 후, 현재 장편 데뷔작인 <콜>을 준비 중이다. 박신혜와 함께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첫 영화부터 칸 레드카펫을 밟았던 전종서가 주연으로 캐스팅됐으며 지난 1월부터 촬영에 돌입했다. <콜>은 매튜 파크힐 감독의 <더 콜러>(2011)을 원작으로, 1999년과 2019년 각각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 이충현 감독은 <콜>에 대해 “겹치는 캐릭터가 없다. 시대도 성격도 달라서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2019년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