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에 장이 선 뒤 오후 3시에 마감할 때까지 시시각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숫자에 따라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돈>에서 원진아가 연기한 박시은은 검은 정장 차림의 남성 브로커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여성 브로커다. 원진아는 첫 장편영화인 <강철비>에서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다 미사일 폭격을 피해 북한1호와 남한으로 내려오는 북한 여성 려민경을 연기한 뒤로 <그냥 사랑하는 사이> <라이프> 등 두편의 드라마로 얼굴을 알렸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모습이 시종일관 여유 있는 시은을 쏙 빼닮았다.
-목소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저음이다.
=하하. 오디션을 보러 가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당황하는 감독님들도 계셨다. 목소리가 부드러울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평소에는 목소리의 높낮이 폭이 큰 편이다. 장난칠 때는 어린아이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고객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 주식 브로커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다.
=출연이 확정된 뒤 박누리 감독님이 “목소리가 좋고 힘이 있어 시은과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주셨다.
-시은은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정글 같은 곳에서 유일한 여성 브로커라 눈에 띄더라.
=배우가 되기 전에 잠깐 콜센터에서 직장 생활을 한 적 있다. 직장을 다녀보니 업무에서 남녀는 중요하지 않더라.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잘하면 된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시은은 단순히 센 여성이라기보다는 내공을 갖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이 시은 또한 증권회사에서 살아남고, 동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단발머리와 깔끔한 정장 차림이 남자들 사이에서 세련되어 보여 갑옷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시은은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성격이 시은의 매력이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묵묵히 유지하는 여성이기도 하다.
-증권회사 사무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대사를 신속히 주고받는 현장은 어땠나.
=매일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현장을 오갔다. 내 연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작업이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중학생 시절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배우들을 따라하면서, 연기를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특히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김해숙 선생님이 미역국을 우걱우걱 먹으면서 우는 장면은 어린 나이에도 울컥했는지 여러 번 따라할 만큼 좋아했다. 연기를 하고 싶어 고향 천안에서 상경해 CGV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단편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단편 <캐치볼>이 처음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얼굴을 알린 건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하문수 역을 통해서다. 백화점 붕괴사고에서 살아남았지만 동생을 잃고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는 여자였는데.
=연기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마음이 되게 아팠다. 촬영 내내 하문수로 살았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보니 어땠나.
=부담감이 컸다. ‘이렇게 큰 역할을 할 자격이 되는가’ 고민하느라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 촬영장에 가기 직전까지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감독님, 스탭들이 잘하고 있다고 격려를 많이 해주셨고, 덕분에 카메라 앞에선 걱정과 고민을 모두 내려놓고 작업했다.
-차기작은 얼마 전 촬영이 끝난 강윤성 감독의 신작 <롱 리브 더 킹>이다.
=인권 변호사 역할을 맡았다. 솔직하고 가식 없는 캐릭터다. 더이상 말하면 곤란하다. (웃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어린 나이에 데뷔한 경우가 아니라서 남들처럼 성공해야지, 잘되어야지 하는 바람은 없다. 그저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다. (웃음)
영화 2019 <롱 리브 더 킹> 2018 <돈> 2017 <강철비> 2015 <캐치볼>(단편) TV 2018 <라이프> 2017 <그냥 사랑하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