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로망> 오랜만에 다시 둘이 된 남봉과 매자의 삶
2019-04-03
글 : 장영엽

남봉(이순재)과 매자(정영숙)는 결혼 45년차 부부다. 평생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해본 적 없는 남봉은 사소한 일로도 매자를 타박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매자가 치매 판정을 받는다. 처음으로 집 안에서 큰소리를 내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매자의 모습을 보며 남봉은 가족을 건사한다는 핑계로 매자에게 소홀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스스로 아내를 돌보겠다고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봉 역시 치매에 걸린다. 이후 함께 살던 아들(조한철)과 며느리(배해선)를 내보내고 오랜만에 다시 둘이 된 남봉과 매자의 삶이 펼쳐진다.

영화의 공동 제작사이기도 한 충북MBC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모티브를 얻은 <로망>은 부부 동반 치매를 소재로 하는 영화다. 65살 이상 인구의 10분의 1이 치매에 걸리는 한국에서 부부 동반 치매는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현실이다. 영화는 치매를 소재로 한 영화가 으레 다루는 가족들의 고통을 묘사하기보다 치매 이후 노부부가 경험하는 일상과 관계의 변화를 지극히 현실적인 대사와 에피소드로 그려내고 있다. 남편의 백팔십도 달라진 모습을 보며 “진작에 치매나 걸릴걸 그랬다”고 뼈 있는 말을 던지는 매자와 “울퉁불퉁 자갈길을 열심히 달리다 보면 보상받을 줄 알았는데, 세월이 오리발 내밀고 인생이 뒤통수 친다”는 남봉의 말은 노년이 된 두 사람이 마주한 인생의 씁쓸한 진리다. 완벽하진 못했지만 오랜 시간 삶을 공유해온 두 남녀가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다시금 반추하는 젊은 시절의 ‘로망’은 이순재와 정영숙, 두 명배우의 연기에 힘입어 관객의 마음에 짙은 여운을 남길 듯하다. <사랑을 놓치다>(2006)의 연출부를 맡았던 이창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신파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감정 과잉의 덫에 빠지지 않는 담담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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