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하 <판의 미로>, 2006)다. 델 토로는 스페인 내전을 중심에 두고 1939년 배경의 <악마의 등뼈>(2001)와 1944년 배경의 <판의 미로>를 일종의 자매 영화처럼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두 영화를 만드는 사이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 바로 2001년의 9·11 테러다. 실제로 그는 “내 영화를 이루고 있는 양면성이 잔인성과 순수성이라면, 9·11 테러를 목격한 다음 만든 <판의 미로>는 순수성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 비달 대위(세르지 로페즈)가 잔인하게 농부를 살해하는 장면을 보면 ‘나중에 반드시 나올 고문 장면은 얼마나 더 끔찍할까’ 싶지만, 이후 순수한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의 기운이 영화 전체를 감싸 안으면서 그런 장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세상의 폭력은 그렇게 힘을 잃게 되고, 결국 오필리아는 세계를 구원하는 존재가 된다. 실제로 영화 속 시대 배경이,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성공한 직후이니 유럽의 파시스트들 모두 종말의 문턱에 서게 됐을 때다.
델 토로 감독이 두 영화를 만드는 사이에 9·11테러를 겪었다면, 개봉 당시 <판의 미로>를 본 뒤 세월이 흘러 이제 다시 보게 된 나에겐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곧 5주기를 맞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처음에 델 토로의 스타일에 집중하면서 보다 깊이 생각지 못했던 애도의 윤리라는 것을 깨달으며 전혀 다른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만든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까지 그러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이번 1201호는 송형국 평론가의 <생일>과 안시환 평론가의 <우상>, 그리고 송경원 기자의 <강변호텔>을 중심으로 한 한국영화 비평 특집이다. <우상>과 <강변호텔>을 각각 장르성과 작가성을 중심에 두고 읽었다면, <생일>은 특정한 컨셉으로 명쾌하게 그 성격을 포착할 순 없었지만, 기실 그 어떤 컨셉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는 ‘9·11 테러 이후의 할리우드영화’, ‘오바마 시대의 흑인영화’, ‘중국 반환 이후의 홍콩영화’, ‘브렉시트 이후의 유럽영화’라는 식으로 묶어 명명해온 비평적 언어를 빌려, 지난 5년간 장르와 스타일을 초월해 한국 상업영화/독립영화 모두를 아우르는 영화인들의 집단무의식이 된 것 같다.
<생일>에 대해 쓴 송형국 평론가는, 지난해 개봉한 <살아남은 아이> <죄 많은 소녀> <봄이가도> <영주>에 이어 <생일>과 같은 주에 개봉한 <파도치는 땅>과 <한강에게>, 그리고 3월 잇따라 개봉한 <히치하이크> <선희와 슬기> <악질경찰>까지, 이들을 한데 묶어 ‘세월호 영화’라 명명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이들 10편 모두에서 예외를 찾기 힘든 핵심 정서이자 주제로 ‘죄책감’을 발견하게 된 것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평론가로서의 책임 있는 태도’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그것은 영화잡지로서 <씨네21>의 책임 있는 태도와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해외 영화를 아울러 단 3개의 비평만으로 그것이 해소되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곧 공지를 올리게 될 올해의 영화평론상 공모전을 기다리는 마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