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김병인 대표의 <매트릭스>
2019-04-16
글 : 김병인 (현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 대표)
모든 것의 의미

감독 릴리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 제작연도 1999년

1999년 <매트릭스>는 혁명적이었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비주얼과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로비 총격전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다층적인 스토리 구조가 나를 사로잡았다. 볼만한 영화라고 하면 보통 둘로 나뉘는 것 같다. 보는 동안 즐겁긴 했지만 극장을 나오면서 ‘뭘 봤더라?’ 하게 되는 영화와 이게 뭐지 싶다가 어느 순간 끝 모를 깊이 속으로 나를 내던지게 만드는 영화. 그런데 <매트릭스>는 둘의 장점을 합친 영화였다. 표층은 명확한 선악 구조를 띤다. 인간을 생체 배터리로 써먹는 나쁜 인공지능(AI) 기계들과 놈들이 만들어놓은 매트릭스 속에서 반동분자를 처단하는 에이전트들. 그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사람들. 초등학교만 나와도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대결 구도다. 그렇다고 식상하지도 않다. 특이점 너머의 AI는 인류의 재앙이 될 거라고 예측하는 식자들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설정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모피우스(로렌스 피시번)는 네오(키아누 리브스)를 훈련시키면서 끊임없이 말한다. “네 정신을 해방시켜라.”(Free your mind) 그래, 인류의 해방을 운운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해방하는게 순서겠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아니던가. 싸우고 때려부수는 액션물인데 주인공에게 이런 목표를 부여하다니. 별거 아니라고 보면 별거 아니지만,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는 유심론과 맞닿아 있음을 생각할 때 보는 이에 따라서는 훅 빠져들 깊이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성경의 내러티브다. 압제하에 신음하며 시온에 모여 사는 인류는 언젠가 ‘구원자’(The One)가 나타나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에 의지해 살아간다. 예수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 이스라엘의 상황 그대로다. 네오가 구원자라고 굳게 믿는 모피어스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의심하고 그를 팔아넘기는 사람도 있다. 가룟 유다가 배신하고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지듯이 네오도 동료의 배신으로 아파트 복도에서 에이전트 스미스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하지만 삼위일체라는 영어 단어를 이름으로 가진 트리니티가 네오를 구원자로 믿는 믿음과 사랑 때문에 네오가 부활한다. 이제 네오는 에이전트들이 난사하는 총알들을 허공에 멈춰 세우더니 에이전트 스미스의 몸속으로 뛰어들어 놈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성경의 뼈대 그대로이다.

<매트릭스>는 시간을 때울 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영화이지만 사색할 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훌륭한 영화다. 이런 교집합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다. 당시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이 영화를 장면별로 끊어가며 분석해보기도 했다. 디지털로 했으면 좀더 쉬웠겠지만 일반 비디오 리모컨을 가지고 그 짓을 하자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체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이끌려 영화를 해부하듯 들여다보았다. 장면별로 봐도 깊이는 끝이 없었다. 프레임을 크게 잡았다가 다시 인물로 좁혔다가 다시 넓게 잡는 순서와 타이밍에도 모두 의도가 있었고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색깔을 쓰는 데도 의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녹색은 ‘앎’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모피우스가 매는 넥타이 색이 그랬고 오라클의 옷 색깔이 그랬다.

이걸 만든 사람은 정말 미친 거 아닌가 싶었다. 각본과 연출을 모두 워쇼스키라는 형제가 해냈는데, 어느 순간 남매가 되더니 이제는 자매가 되었다. 역시 보통의 인간은 아니다.

● 김병인 현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 대표. <마이웨이> 각본을 쓰고 <화려한 휴가> <미녀는 괴로워> <타짜> <범죄의 재구성> <말죽거리 잔혹사> <오! 브라더스> <몽정기> 등에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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