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사라 폴리 / 출연 미셸 윌리엄스, 세스 로건, 루크 커비 / 제작연도 2011년
내가 처음 영화관에 간 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면서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여름방학 동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감상문과 영화 티켓을 가져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돌이켜보면 내 직업(조명감독)의 시작이 그 과제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지만 당시의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랐고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영화 <비트>의 유명한 대사처럼 “나에겐 꿈이 없었”다.
수능까지 치르고 나서야 힘들게 선택한 길이 음향제작과 진학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를 다녀 조금 다룰 수 있었던 기타와 작은 음향기기는 내가 레코딩엔지니어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었고, 그렇게 시골 소년이었던 나는 대학에 진학하며 서울 근교로 올라왔다. 하지만 1년 동안 열심히 수업을 들었는데도 음향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휴학을 했고 빨리 군대에 가려 했으나 나와 같은 마음의 지원자들이 많아서인지 빨라야 1년 뒤에나 입대할 수 있었다. 당시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누나가 나에게 일을 찾아보라며 ‘필름메이커스’라는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그나마 조금 할 줄 알았던 음향 관련 일은 하나도 없었고 곽경택 감독의 <똥개>(2003) 조명팀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글만 올라와 있었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그렇게 시작하게 된 조명팀 막내 일은 조명감독이 된 지금의 내 모습으로 이어졌다.
영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대부분 대중적인 영화들이었다.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보게 된 건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의 영향이 컸다. 나에게 맞는 영화들을 많이 추천해주었고 그 덕분에 영화의 폭도 생각도 넓어질 수 있었다. <우리도 사랑일까>도 그중 한 편이었는데, 사실 이 영화는 그녀와 헤어진 후에 보게 됐다. 준비 중이던 영화의 레퍼런스 중 하나였는데 하필이면 새벽녘 침대에서 쓸쓸히 보다가 주인공 마고의 남편 루의 모습이 왠지 내 모습 같아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고 그리워서 이 영화는 내 마음 한편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사랑했던 순간이 나에게 다시 찾아올까….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환상이 나에게 더욱더 특별한 영화로 남았다. 내 사업자등록증의 사업자명이 ‘라이트하우스’인데 그 단어를 선택하게 된 계기도 이 영화에 나오는 등대 장면 때문이다.
이 영화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사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배우들 각자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영화 중반과 엔딩에 흘러나오는 노래 <Video Kill the Radio Star>는 헌것도 처음에는 새것이었다는, 사랑에 대한 비유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설렘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순간을 다들 한번씩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인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사랑에 대한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누가 맞고 틀렸는지 정답은 없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과연 있을까. 영화를 핑계로 다시 사랑하고 싶다는 바람을 남겨본다.
● 정해지 조명감독. 신경만 조명감독의 조수 출신으로, <미쓰백>(2017), <안시성>(2018)에서 조명을 맡았고, 얼마 전 <콜>(감독 이충현) 촬영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