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미국인이 아닌 관객의 눈에 비친 <어스>
2019-04-25
글 : 윤웅원 (건축가)
당신의 어스(US)는 미국인가

나는 <겟 아웃>에 대한 이전 글(<씨네21> 1118호 ‘윤웅원의 영화와 건축’, “공포영화 <겟 아웃>을 보고 건축 프로젝트 ‘힐시티’가 떠오르다”)에서 조던 필의 영화가 건축적으로 보인다고 썼다. 그의 영화가 구조의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끝을 맺었는데, <어스>를 보고 나서, 이 생각에 대해 좀더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스>가 <겟 아웃>에 비해 덜 좋은 이유를 이 과정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자주 사용하는 설계 방법 중 하나는 다이어그램으로 건물을 개념화하는 것이다. 가끔 냅킨이나 영수증 위에 그린 스케치가 건축가의 영감을 보여주는 표식으로 사용될 때가 있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건축은 단순화된 구조의 형태, 즉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글로 요약한 시놉시스와 건축의 다이어그램의 차이는 다이어그램이 시각적 구조 개념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다이어그램을 통해 건물의 전체 구조를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관계도로 그려서 확인하는 경우를 들어본 적 있지만 건축만큼 광범위하게 다이어그램이 사용되는 예는 알지 못한다.

영화 <어스>를 시놉시스가 아니라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해본다면, 영화 스틸 이미지 중 하나인, 해변을 줄 지어 걸어가는 주인공 가족의 사진이 될 수 있다. 사진 속 그림자들이 만들어내는 도형이 예레미야 11장 11일절을 상징한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가족의 모습보다 더 정밀해 보이는 그림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진을 사진으로 보지 않고 다이어그램이라고 상상한다면, <어스>가 갖고 있는 영화의 구조가 드러난다. 그것은 ‘그림자인간’이다. 보통 <어스>에서 주인공 가족과 닮은 사람들을 ‘도플갱어’로 설명하지만, 나는 ‘그림자인간’이 정확한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사진 속 그림자들 중 하나를 사람 이미지로 바꾼다면 더 명확하게 영화의 구조가 드러난다.

우리의 적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다

<어스>는 “나의 그림자처럼 행동하는, 나와 닮은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조던 필 감독은 <어스>에서 많은 시각적 개념을 사용한다. 자신의 얼굴과 똑같이 닮은 가면을 들고 있는 포스터 사진, 어린 애들레이드 윌슨이 자신의 그림자인간과 같이 서 있는 거울방 장면, 손을 잡고 서 있는 가족의 모습 등이 그 예다. 조던 필 감독이 시각적 개념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그가 서사 구조에 관심이 많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겟 아웃>에서 흑인과 백인, <어스>에서 지상 인간과 지하 인간의 관계 같은, 개념적인 구조를 통해서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는 조던 필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주 다이어그램을 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구조에 관심이 많은 창작자가 구조가 단순할 경우 찾게 되는 것은, 구조가 쉽게 읽히지 않는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이다. 조던 필 감독은 그림자인간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에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기제들을 부여했다. 이민자, 난민, 제3세계 등과 같이 그림자인간의 의미를 더 넓게 확장시키는 것이다.

<어스>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림자인간이 살고 있는 지하 세계에 대한 디자인이다. 그림자인간의 공간을 어떻게 설계할지는 <어스>에서 쉽지 않은 과제로 보인다. 지상 인간과 그림자인간이 동일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은 과학 실험의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그들의 세계를 지상의 모든 장소와 동일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추상성의 정도를 선택하는 것뿐이다. 조던 필 감독은 상징적인 형태의 공간 구조, 즉 복도와 방을 선택했다. 큰 규모의 건물을 설계할 때 자주 반복되는 개념 중 하나는 ‘도시 같은 건물’이다. 기능적인 복도 대신에 도시의 길처럼, 건물 내부에 장소로서의 복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 ‘복도’는 보통 거대한 아트리움 형태로 디자인되곤 한다. 길과 광장을 건물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방들은 도시의 건물처럼 이 아트리움으로 열리게 된다. 지하 도시를 만들 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러한 방법과는 다르게, <어스>는 도시를 ‘흉내’ 내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어스>에서 지하 세계의 구조는 상징적인 형태에 더 가깝다. 따라서 애들레이드 윌슨(루피타 니옹고)이 거울방에 가게 되는 어린 시절 장면에서, 지상의 행위와 대비되는 지하 세계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공간디자인에 적용한 이러한 상징적인 방식은 그림자인간의 복장, 가위, 토끼같이 지하 세계의 다른 요소들에도 적용되고 있다. 세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추상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림자인간이 과학 실험의 부산물이라는 설정과 관련 있겠지만, 동시에 지하 세계가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소룡의 <용쟁호투>(1973)에 나오는 유리방만큼이나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는 유리방을 통해서 지하 세계는 지상과 연결된다. 이 유리방은, 지하 세계는 지상 세계의 거울상이라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도플갱어를 주제로 다루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도플갱어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반면에 조던 필 감독은 개연성에 관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스>에서 그림자인간을 과학으로 설명하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연이나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적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 아닐까.

장소 특정적인, 그리하여 미국인에게 더 잘 느껴질

기대를 많이 했는지, 나는 <어스>가 <겟 아웃>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고민하다, <어스>가 지나치게 ‘다이어그램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스>는 <겟 아웃>과 비교하면 더 개념적이다. <겟 아웃>이 흑인과 백인간의 긴 역사적 관계를 배경으로 한 반면, <어스>는 지상의 인간과 그림자인간의 개념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그림자인간을 트럼프 장벽으로 상징되는 이민자와 난민들에 대한 은유로 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인이 아닌 나에게는, 어떤 감정적인 잔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적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는 흥미로운 그림자 구조에도 불구하고 <어스>는 지나치게 구조의 문제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더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그림자인간에 관한 개연성 문제다.

나는 모든 영화는 장소 특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선입견과 달리 <어스>도 역시 ‘장소 특정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 시대에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더 잘 느끼는 것이 있으리란 의미다. <어스>는 ‘어스’(US)가 정말 ‘미국‘으로 느껴지는 것이 필요한 영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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