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걸캅스> 라미란 - 힘 있게, 치고 달리고 승리하다
2019-05-14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미영이 뜨면 범죄자들이 벌벌 떨었다. 한때 여자 형사 기동대의 에이스였던 그는 결혼과 함께 출산과 육아라는 큰 벽에 부딪혀 민원실 주무관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우연히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잠자고 있던 수사 능력이 되살아난다. 5월 9일 개봉한 정다원 감독의 <걸캅스>는 배우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 넘는 동안 영화 48편을 찍은 배우 라미란의 첫 주연작이다. 화창한 봄날에 만난 라미란은 “경사라면 경사인데… 책임감이 막중해져 설레는 동시에 부담스럽다. 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초조하기도 하다”며 첫 주인공을 맡은 소감을 말했다. 낯을 많이 가린다고 해서 살짝 긴장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그의 말솜씨는 청산유수였다.

-<걸캅스>는 전작 <소원>(2013)을 함께한 제작사 필름모멘텀의 변봉현 대표가 라미란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오랫동안 개발한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나를 염두에 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저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공수표를 날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시나리오 초고가 나오자 비로소 그 말이 실감났다. 진짜 촬영 들어가면 어떡하지 싶어 부담스러웠다. (웃음)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두근두근했겠다.

=캐릭터에 맞춰야 했던 전작과 달리 나를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라 나의 어떤 면을 눈여겨보았는지, 나를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지 무척 궁금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느낌과 시간이 지난 지금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달라졌더라.

-뭐가 달라졌던가.

=액션물? 처음부터 액션영화를 염두에 둔 건가 하고 의아했다.

-평소 액션영화에 대한 로망이 없었나.

=개인적으로 ‘와일드’한 쪽이 아니다. 액션영화라는 걸 알고나서 나의 와일드하고 터프한 면모를 원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의외다. 영화를 보니 뛰고 때리고 맞는 동작이 능숙하던데. (웃음)

=미영이 형사 일을 오래 쉬다가 사건에 뛰어들면서 과거의 감각을 되찾아가는 설정이라 부담감이 덜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용병처럼 날아다니는 역할이었다면 출연을 고민했을 거다.

-미영의 모습을 통해 서울예대를 졸업한 뒤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일을 쉬다가 30살에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오수희를 맡으면서 영화에 데뷔한 자신의 모습이 겹쳤을 것 같다.

=반대 방향으로 오버랩됐다. 한때 잘나가던 형사였다가 지금은 주춤한 상태인 미영과 달리 나는 출산과 육아를 하다가 뒤늦게 일을 시작해 지금은 활발하게 일하지 않나. 미영과 내가 정반대의 처지라 미영에 집중하기가 더 수월했던 것 같다. 미영의 삶은 내가 지나왔던 길이기도 해 공감이 많이 됐다.

-맡은 역할만 책임지면 되는 조연과 달리 서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법이 전작과 많이 달랐을 것 같다.

=그동안 짧은 시간 모든 힘을 쏟아붓고 치고 빠졌는데, 이번 영화는 1시간30분 동안 그렇게 힘을 빼면 지쳐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신마다 에너지를 어떻게 안배할지 고민이 많았다. 또 영화의 소재인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심각한 탓에 웃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유머는 주변 인물과 극적 장치를 믿고 맡겼다. 좋은 다큐멘터리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전사를 구축하는 조연과 달리 미영에 대한 설명이 충분해 수월했을 것 같다.

=신마다 행동의 동기에 대해 충분히 설명되어 있어 무언가를 더 보태지 않아도 되었다. 한편으로는 주연을 처음 맡다보니 뭔가 안 한 것 같고, 심심한 것 같아 가끔 걱정되기도 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나의 기우였다. 미영을 채워주는 장치들이 다 있어 믿고 갔다.

-크고 작은 액션 신을 소화하기 위해 서울액션스쿨에서 몸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3개월 동안 운동했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무술감독님이 나보고 운동신경이 좋아 욕심이 생긴다면서 별 걸 다 시키더라. (웃음) 레슬링, 복싱을 가르쳐주고, 매일 헤이리도 한 바퀴 뛰고, 액션 합도 맞췄다. 숨이 차오르는데도 오랜만에 몸을 쓰니 개운하고 좋았다.

-평소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 성격이라고 들었다.

=주로 누워 있는다. 한번 움직이기 위해 힘을 비축해두는 스타일이다. 먼저 움직여 힘을 빼면 촬영할 때 (연기를) 못한다. 이번에는 준비를 안 하면 액션 신을 소화할 수 없고 다치게 되니 어쩔 수 없었다. 태어난 뒤로 가장 많은 연습을 했다.

-액션이 몸에 잘 맞던가.

=형사 일을 오래 쉰 미영의 설정에 맞게 액션배우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춤을 춘다고 생각하고 동작을 했는데 무술감독님이 “춤, 그만 추시라”라고 하더라. (웃음) 무술감독님의 권유로 욕을 함께하면서 연습해보니 액션이 힘 있게 나왔다. 어떤 연기를 해도 항상 아쉬운데 이번에는 좀더 잘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미영이 지혜(이성경), 장미(수영)와 함께 근무시간 몰래 밖에 나가 사건을 조사하고, 그 과정에서 맨손으로 건장한 용의자를 때려잡을 때 쾌감이 크게 다가오는 것도 이들이 보여준 경찰에 대한 사명감과 피해자에 대한 연대의식 때문이다.

=제목은 ‘걸캅스’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건에 뛰어드는 여성 셋은 ‘캅스’가 아니다. 미영과 장미는 민원실 주무관이고, 지혜는 강력반에서 징계를 받아 주무관 보조로 들어왔다. 공권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일반 경찰영화와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개봉하기도 전에 여성 편향적인 이야기가 아니냐고 얘기하지만 그동안 많은 한국영화에서 여성은 사건의 피해자나 누구의 아내로만 그려지지 않았나. 이 영화가 그런 설정을 바꾸었다고 해서 남녀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건 적절치가 않다. 어쨌거나 그 또한 관심의 한 종류라면 감사하다. 다만,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우리 영화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까봐 걱정된다. 보고 느끼는 건 사람마다 다 다르니 일단 영화를 본 다음에 평가해달라. 어떤 평가라도 달게 받겠다.

-<친절한 금자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걸캅스>에서 주인공을 맡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친절한 금자씨> 때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연락받은 건, 25살, 26살 때 찍은 프로필 덕이다. 20대 중반 때 영화를 하고 싶어 프로필을 찍어 여러 영화사에 돌렸다. 당시에는 연락이 없다가 육아로 연극 활동을 쉬고 있던 때에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됐다. 그때 그 연락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영화를 시작하게 해준 사람이 박찬욱 감독이라면 배우로 더 많은 기회를 펼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준 사람은 윤제균 감독이다. 그가 제작한 <댄싱퀸>(2012)이 오디션을 보지 않고 캐스팅된 첫 작품이다.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와 <응답하라 1988> 또한 ‘웃긴’ 조연 라미란이 주연이 되는 발판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하는데, 두편의 어떤 포인트가 반전의 발판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두편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덩달아 라미란이라는 이름 석자의 인지도가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게 이후 연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홍콩영화 <폴리스 스토리>처럼 <걸캅스> 또한 시리즈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제 시작이다. 거대 조직과 관련된 사건 말고 일상에서 사람들이 쉽게 자각하지 못하는 사건을 환기시켜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시원하게 꿀밤 때리고 싶은 사건들 말이다.

-주연까지 거머쥐었는데 이제는 뭘 하고 싶나.

=감독이나 제작자를 해야 하나. (웃음) 연기를 계속 열심히 하겠다. 크든 작든 이야기와 캐릭터가 흥미로우면 다 할 수 있다. 역할 크기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지 말고 섭외 연락 많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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