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개막작 짐 자무시 감독의 <데드 돈 다이> 리뷰
2019-05-23
글 : 장영엽 (편집장)
이상하고 기묘한 세계의 풍경

“세계는 녹아내리고 있고, 지도자들은 폭력과 분노와 거짓말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며 사람들이 그 허구가 진짜라고 믿게 한다.” 제72회 칸영화제 개막을 알린 것은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정치적 발언이었다. 그는 5월 14일 저녁, 칸영화제의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 모인 전세계 영화인들 앞에서 이민자 문제와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는 세계 지도자들의 무지에 대해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예술가로서 마음을 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영화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냐리투의 말은 마치 짐 자무시의 개막작 <데드 돈 다이>를 소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짐 자무시의 좀비영화 <데드 돈 다이>는 이냐리투가 언급했던 바로 그 ‘기후변화’ 때문에 생겨난 참사를 조명한다. 북극에 균열이 생기고, 이로 인해 지구의 궤도가 달라지며 밤이 사라지고 동물들이 자취를 감추는 등 세계 곳곳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레스토랑도 하나, 경찰서도 하나, 장례식장도 하나인 미국 근교의 외딴 마을, 센터빌의 경찰 콤비 클리프(빌 머레이)와 로니(애덤 드라이버)는 마을의 소소한 분쟁을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두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로부터 얼마 뒤, 사라졌던 밤과 죽은 자들이 돌아온다.

<데드 돈 다이>는 고전 호러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좀비영화다. 무덤을 힘들게 파헤치고 나와 비틀거리며 살점을 뜯어먹는 좀비들은, 속도감 넘치며 공격적인 최근의 좀비영화를 떠올리면 귀여운 수준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딱 짐 자무시 영화답다. “와이파이”, “샤도네이” 등 살아생전 자신이 집착했던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되뇌는 좀비들과 아비규환 속에서도 지나치게 심드렁한 클리프, 로니 콤비의 모습은 자주 폭소를 유발하며, 배우 클로에 셰비니(패닉에 빠지는 또 다른 경찰), 스티브 부세미(극우 인종차별주의자), 케일럽 랜드리 존스(좀비영화를 너무 많이 본 주유소 직원), 뮤지션 톰 웨이츠(숲속에 사는 은둔자 밥), 이기 팝(‘커피’ 좀비) 등이 저마다의 역할을 만족스럽게 해낸다. 특히 짐 자무시 영화에 처음 출연한 셀레나 고메즈는 클리블랜드 출신의 힙스터를 연기하는데, 영화 속 그의 행보가 아마 많은 관객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것 같다. 이들 중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틸다 스윈턴이 연기하는 ‘젤다’다. 그는 마을에 새로 온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의사로, 어쩐 일인지 사무라이 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신비하고 엉뚱한 인물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뱀파이어 캐릭터와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이는 젤다는 극중 가장 장르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만, 무언가 보여줄 것 같다고 생각될 때쯤 황급히 퇴장해 아쉬움을 남긴다.

말하자면 <데드 돈 다이>에서 장르는 연막탄이다. 이 영화는 유서 깊은 좀비 장르에 새로운 스타일이나 설정을 추가하는 데에는 하등 관심이 없다. 좀비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기시감을 유발해, 이 장르의 팬이라면 다소 실망스럽다고 느낄 수 있겠다. 짐 자무시는 오히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하고 기묘한 일들(‘Strange’와 ‘Weird’는 영화 내내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발화되는 단어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현실을 직시하길 거부하고 안온하게 대세를 따르며 소비주의에 현혹된 세계의 풍경을 좀비 장르에 빗대어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직접 캐릭터의 대사를 통해 본인의 존재를 드러내기까지 한다. 이상하고 기묘한 사건들 이후, “뭔가 매우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로니는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말한다. 이 대사가 나올 때마다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게 되지만, 그것이야말로 짐 자무시가 관객에게 말하고 싶었던 이 세계의 운명에 대한 서늘한 전조일 것이다. 다음주 칸 리포트에는 짐 자무시와의 인터뷰를 실을 예정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