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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캅스> 정다원 감독 - 개인‘들’이 연대하면 세상은 바뀐다
2019-05-30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논란도 혐오도 여자 형사들의 거침없는 질주를 막지 못했다. 개봉 전부터 특정 영화와 비교하며 조롱하는 댓글들이 달려 논란이 됐던 영화 <걸캅스>가 지난 5월 18일 개봉 열흘 만에 100만 관객(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시원하게 돌파했다. 온갖 ‘악플’ 공세에 시달린 정다원 감독도 주말(5월 18일 토요일, 19일 일요일) 동안 무대인사를 돌다가 100만 관객 돌파 소식을 듣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장편영화 데뷔작인 독립영화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2015, 이하 <장기왕>)을 통해 청년실업,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재기 넘치게 그려낸 바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는 “어제(5월 19일) 무대인사를 마치고 배우, 스탭들과 뒤풀이를 했는데 간만에 술을 많이 마셨다”라며 웃었다.

-개봉 열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지난주 토요일(5월 18일) 무대인사를 돌 때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손익분기점을 가까스로 넘길 수 있어 다행이다.

-예상했던 성적인가.

=촬영하고 편집하는 동안 대중이 이런 형사물을 좋아하니 손익분기점(극장 수익 기준 150만명)을 넘기지 않을까 기대했다. 평범한 오락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의도치 않게 이슈가 돼 불안하기도 했다.

-제작사로부터 여성 형사물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장기왕>이 개봉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연락을 받았다. 이런 기획이 충무로에서 보기 드물어 신기했고, 그 기회가 내게 들어와 반가웠다. 라미란 선배도 출연하기로 결정됐다고 해서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라미란 배우의 어떤 모습을 좋아했나.

=<친절한 금자씨>(2005), <괴물>(2006)에 잠깐 나왔을 때부터 좋아했다. 특히 <소원>(2013)에서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신체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액션도 잘 소화할 것 같았다. 그를 통해 여자 형사의 애환을 잘 그려내고 싶었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다루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가 무엇인가.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는 지금처럼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었다. 그 시나리오를 투자사에 돌리면서 모두 퇴짜 맞았다. 어떤 투자사는 주인공을 남자로 바꾸면 투자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나도 제작사 대표님도 고집이 세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여자 형사들이 주인공이라면 이들이 공감할 만한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탐사 취재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접했다. 이 범죄는 범인을 잡기도 힘들고, 잡더라도 처벌이 약한 데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피해 여성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성 피해자들의 사례를 접하면서 내 일처럼 안타까웠다. 영화에서 이런 범죄를 소탕하면 의미가 있겠다 싶어 관련 사건들을 취재해갔다.

-여자 형사들이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소탕했을 때 발생하는 장르적 쾌감도 기대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 앞에 장애물을 놓지 않나.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현실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기 힘든 법적 절차를 그 장애물로 설정했다. 실제로 경찰 사이버 수사대는 업무가 과도하다고 하더라. ‘악플’이 너무 많아서 피해자가 신고해도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인력과 지원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답답함을 영화를 통해 시원하게 날릴 수 있기를 기대했다.

-영화는 여성 피해자의 피해 내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데.

=보통 형사물에선 관객에게 피해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굳이 영화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재현해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연출한 건 잘한 것 같다. 악당을 연기한 배우들에게도 몸에 힘을 빼고 놀 듯이 연기해해달라고 주문했다. 범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그들을 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미영(라미란)과 지혜(이성경) 두 콤비의 모델이 된 영화가 있나.

=폴 페이그 감독의 <스파이>(2015)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 영화에서 멜리사 매카시와 미란다 하트가 보여준 것처럼 라미란, 이성경 등 각기 다른 이미지를 가진 두 배우를 대비시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장미(최수영)를 국정원 댓글부대에서 활동하다가 민원실 주무관으로 설정한 이유가 뭔가.

=해커나 보안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국정원에는 수재들이 많이 들어간다고 전해들었다. 그런 수재들이 우리나라 최고의 정보기관에 들어가 한다는 게 고작 댓글 다는 일이지 않나. 이 사실을 이야기에 엮으면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있겠다 싶었다. (최)수영씨가 장미 역을 잘 살려주었다.

-민원실장(염혜란)을 포함해 교통정보센터에 소속된 여자 경찰들이 모두 힘을 합쳐 범인을 쫓는 이야기의 후반부는 쾌감이 꽤 컸다.

=교통정보센터에서 일하는 30, 40대 여자 경찰들이 되게 많다. 민원실장을 비롯한 그들 또한 수많은 장미 중 한명이지 않을까 싶었다. 현장에서 그 장면을 무척 재미있게 찍었다. 개인은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개인‘들’이 연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후반 20분의 서사가 쭉 달려가는데 그 지점에서 쾌감을 주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개봉 전부터 <걸캅스>를 특정 영화와 비교하며 조롱하는 글이 온라인에 많이 올라왔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논란이 흥행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나.

=양날의 검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악플도 관심이라고, 무플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봉 직전 악플 내용이 그 수위를 넘어서고, 배우들을 욕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라미란 선배는 악플이 달리는 배우도 아닌데도 말이다.

-속이 많이 상했겠다.

=영화와 감독인 내가 욕먹는 건 상관없는데 배우들에게 욕을 하니까. 집에서 댓글을 읽으면서 술 마시며 속상한 마음을 풀었다.

-최근 ‘영혼 보내기’(영화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예매하는 것) 운동 또한 화제가 되었는데.

=관객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방식의 일환으로 들었다. N차 관람(디회차 관람) 관객과 마찬가지로 감독으로서 그저 감사할 뿐이다.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데 속편 제작 가능성이 있을까.

=배우들은 속편 출연에 의욕적이다. 한편으로는 이 많은 욕들을 어떻게 견딜까 생각하면 부담되기도 하고. (웃음) 속편이 제작된다면 거대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이야기보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처럼 우리 일상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범죄들을 다루면 좋을 것 같다.

-전작 <장기왕>을 만든 경험이 <걸캅스>를 만들 때 어떤 영향을 끼쳤나.

=<장기왕>도 청년실업 문제, 직장 내 성희롱 문제 등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룬 영화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항상 그런 문제들을 시나리오에 쓰게 되더라. 내가 속이 깊은 사람이 아닌 까닭에 사회문제를 최대한 가볍게 풀려고 노력한다. 또 건국대 영화과 스승인 홍상수 감독님의 현장(<자유의 언덕> <우리 선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등)을 경험하면서 작은 규모로 영화 찍는 법을 배웠는데 그것 또한 많은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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