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이 뿌옇다. 어떤 사태의 실체를 파악하기란 탁한 창밖을 내다보는 일과 같다고 말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화면이 조금씩 선명해지면 차창 밖으로 취재진이 보인다. 저 기자들은 이번 사안을 선명하게 보여줄까. 영화 속 기자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취재하는 첫 국민참여재판의 부장판사가 누군지도 몰라본다. 실제 기자들이 그 정도로 수준 이하는 아니지만, 기자 생활 19년 중 8년 정도를 사회부에서 근무한 나는 이 장면이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범죄 관련 보도는 제한된 자료와 취재원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유명인의 비리 사건이 아닌 형사 범죄를 다루는 경우 더욱 심하다. 검경의 수사 결과 브리핑이, 언론이 보도할 수 있는 전부인 경우가 대다수다. 그 다수 중의 대다수는 법원 최종 판결이 아닌 수사기관의 영장신청 단계까지만 비중 있게 보도한다. 비난하기 쉽기 때문이다. 재판을 치르기도 전 ‘공소사실’은 종종 ‘사실’이 돼버린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한국 언론에 의해 수시로 훼손된다. 이를 통해 소식을 접하는 TV 시청자들은 둘 중 하나로 선택된 결과만을 본다. 나쁜 놈인가 아닌가. 중요한 건 민사재판은 돈 문제 등의 사건을 판결하지만 형사재판은 ‘사람’을 판단한다는 점이다. 2008년 첫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배심원들>은 여기에 주목한다.
“맞아요, 안 맞아요?” “싫어요!” 이 동문서답은 피고인이 나쁜 놈인지 아닌지 투표로 결정하고 어서 집에 가자는 다른 배심원의 재촉에, 8번 배심원 남우(박형식)가 내뱉는 선언이다. 확신이 들 때까지 결정 내리지 않겠다는 거다. <배심원들>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 법의 존재 이유임을 드러내기 위해 달려가는 영화다. 지금껏 봐온 숱한 법정극들은 무엇이 진실인가, 혹은 어떻게 진실을 밝히는가를 따라가는 추적이었다. <배심원들>은 ‘모름’에 대한 집요한 문제제기다.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이 영화의 결말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서는 판사 출신 정재민 작가의 책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의 해설이 명쾌하다. “판결에서 ‘어떤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판단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그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뜻일 뿐이다. 우리나라 형사재판에서 판사가 ‘피고인은 무죄’라고 선고하는 것도 피고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준 것은 아니다. 판사가 유죄로 인정할 만큼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모른다. 유죄인지 알 수 없다면 무죄다. 무죄인지 알 수 없어도 무죄다. 10명의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1명의 억울한 자를 만들면 안되는 게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무책임한 양자택일을 거부하고 ‘책임 있는 무지’를 택한다.
극 초반 피고인 강두식(서현우)은 패륜범죄를 저지른 것이 확실해 보인다. 기초생활수급 신청 문제로 다투던 어머니를 망치로 때려 숨지게 한 뒤 아파트 발코니에서 떨어뜨려 사고로 위장했다는 것이 검찰측 수사 결과다. 모든 정황과 목격자의 진술이 일치했다. 강두식이 범행을 자백까지 했으므로 수사를 철저히 할 필요도 없었다. 변호인은 우발적 살해로 형량을 낮추는 정도에만 힘을 쓴다. 하지만 8번 배심원은 그의 유죄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 창업에 번번이 실패하고 개인회생절차를 밟으려는 그는 피고인을 패륜범죄자로 단정지어 삶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정을 함부로 내리지 못한다. 결국 그의 불확신, 즉 무지하다는 확신은 재판부로 하여금 ‘시간’을 갖도록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어쭙잖은 작품비평을 늘어놓기보다, 실제 법조 현장에서 체감하는 국민참여재판의 효용과 <배심원들>과의 접점을 찾는 편이 이 영화의 가치에 더 가까이 접근하는 일이라 여긴다. 법무법인 화론의 문성윤 대표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일반 재판에 비해 판사가 사건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그만큼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조건이 확보되는 것이 이 제도의 분명한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문 변호사는 “배심원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증인신문을 포함한 재판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하고, 절차를 빨리빨리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 판사는 배심원들과 함께 1~3일 정도의 시간 동안 해당 사건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개 판사 한명이 일주일에 수십건의 판결을 내리며 건당 수백~수만 페이지에 이르는 사건 기록을 살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민참여재판은 상대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보장함으로써 억울한 피고인이 나오지 않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배심원들>은 배심원들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결론났을 재판이 지체되면서 부장판사(문소리)가 새로운 의심의 단계로 넘어가는 자각 과정을 그린다. 여기서 배우 문소리의 미간이 설득력 있게 말한다.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데 필요한 건 시간이다.
김형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배심원들의 ‘합리적 정서’가 판결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며 예를 들어줬다. “한 대학생이 연필 한 자루를 훔쳐 달아나다 뒤쫓아온 문구점 주인의 팔을 멍들게 했다면, 엄연히 ‘강도상해’에 해당한다. 강도상해는 판사의 재량으로 형량을 낮춘다 해도 3년6개월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이 사례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절도’인 ‘강도’와,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한 ‘상해’임이 원칙적으로 분명하다. 강도상해죄는 최소 3년6개월의 실형에 처하는 것이 대한민국 법이다. 사정이 딱해도 원칙이 무너지면 법이 아니다. 이 학생은 연필 한 자루 때문에 장기간 실형을 살아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다를 수 있다. 김 판사는 배심원제 도입 초기 일각의 우려와 달리 참여 배심원들이 놀라울 만큼 성심껏 재판에 임하고 있음을 전제로 설명을 이어갔다. “배심원들은 이런 경우 ‘그건 상해가 아니다. 그 정도 멍든 것 가지고는 약국에도 안 간다. 부상의 심각성을 놓고 상해 여부를 따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이런 정서를 판사가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형량이 낮아져 집행유예를 받은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국민참여재판이 처음 실시된 2008년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라고도 했다. 법을 알지 못하는 시민의 합리적 의심이 사법부를 바꾼 것이다. 참여재판의 무죄율(10.9%)은 일반 사건(4.3%)보다 월등히 높다(<한국일보>, 5월 27일자).
어떤 극영화를 놓고 현실과 부합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일은 재미도 의미도 없는 경우가 많지만, <배심원들>은 홍승완 감독의 면밀한 취재로 현실과의 접점이 폭넓어진 올해 한국영화의 드문 사례다. 허구와 현실이 이처럼 경쾌하고도 정돈된 방식으로 상응한 경우 역시 만나본 기억이 멀다. 그 결과 <배심원들>은 사회 이론이나 법·제도 담론의 영역과 구분되는 층위에서 ‘영화만의 사회적 메시지’를 길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