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13년의 공백> 13년 만에 전해진 아버지 소식
2019-07-03
글 : 이주현

영화의 처음과 끝은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은 화장장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례식 장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인물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는 마츠다 마사토(릴리 프랭키)의 장례식장을 상주인 첫째 아들 요시유키(사이토 다쿠미)와 둘째 아들 코지(다카하시 잇세이) 그리고 코지의 여자친구 사오리(마쓰오카 마유)가 지키고 있다. 코지의 기억 속 아버지는 원망의 대상으로서의 도박꾼만이 아니라 함께 캐치볼을 하며 일본 고교야구인 고시엔 대회에 대한 꿈을 나누었던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빚 독촉에 시달리다 ‘담배 사러 간다’며 집을 나간 아버지는 13년 동안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 요코(간노 미스즈)는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느라 몸과 마음을 혹사해야 했고, 요시유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떠안으며 성공을 향해 매진해 결국 대기업 직원이 된다. 남편과 아버지의 빈자리를 의식하며 살아온 가족들에게 13년 만에 마사토의 소식이 전해진다. 위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이다.

<13년의 공백>의 타이틀 크레딧은 영화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나서야 등장한다. 가족의 기억 속 마사토의 이야기는 이제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대체된다. 도박 친구, 단골 술집 직원 등 마사토에게 이래저래 신세 진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13년 동안 그의 행적을 짐작하게 해준다. 더불어 마사토와 가족의 끊어졌던 관계를 조심스레 이어준다. 별다른 대사 없이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어머니 요코 역의 간노 미스즈의 연기가 일품이며, 아버지로 출연한 릴리 프랭키의 존재감 역시 여지없이 반짝인다. 첫째 아들로 출연하는 배우 사이토 다쿠미가 연출까지 맡은 작품이다. 진지한 드라마와 블랙코미디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출, 차분한 호흡과 따스한 시선이 인상적인 사이토 다쿠미의 놀라운 연출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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