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검은 여름> 대학 영화과에서 두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
2019-07-03
글 : 김소미

대학 영화과에서 두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 오래된 여자친구를 뒤로하고 서로에게 감정을 느낀 그들은, 친밀한 관계가 담긴 동영상이 교내에 퍼지면서 원치 않은 비극을 겪는다. 영화과 기자재 조교인 지현(우지현)과 배우 지망생 건우(이건우)는 비교적 성소수자 혐오로부터 안전한 환경에 놓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검은 여름>이 그리는 예술계 청년들의 모습은 미래를 향한 불안과 조바심에 휩싸여 되레 폐쇄적이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맥이 전부인” 영화판의 현실을 일찌감치 체감한 그들은 쉽게 서로의 존재를 불안해하고 배척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지현이 가끔 끄적인 메모지들이 켜켜이 쌓이는 것처럼, 개연성에 의존하지 않고 파편적인 전개를 지속해나간다. 한 인물의 죽음은 오프닝에서 미리 예견되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몰아치듯이 불현듯 형성된다.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건 장우진 감독의 <춘천, 춘천>(2016)을 통해 주목받은 배우 우지현의 담담하고도 세밀한 연기다. 우지현은 온화하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정물화처럼 스크린을 힘 있게 채운다. 그런 배우의 힘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영화는 대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풍경 속에 녹아드는 인물의 일상적 행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롱테이크를 즐겨 썼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에 청춘의 절망이 더해지면서 <검은 여름>의 공기는 끝없이 눅진해진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이원영 감독의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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