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1990
배우 전미선의 스크린 데뷔작이자, 당대 많은 청춘스타들을 배출한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속편에 해당한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수시로 부모님의 압박을 받던 고등학생 태호(최진영)가 시험지를 훔치다 들켜 창밖으로 몸을 날린다. 소식을 듣고 혜주(이미연)가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태호는 세상을 떠났다. 반 1, 2등을 다투던 혜주와 은경(전미선)은 전교 석차가 붙은 성적표를 동시에 찢어버린다.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1990년대 멜로를 대표하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전미선은 한석규의 캐릭터 정원의 첫사랑 지원을 연기했다. 오랜만에 동네에서 만난 지원을 보고 정원의 오토바이가 멈춘다. 노름도 모자라 폭행까지 하는 남편을 둔 지원, 미혼이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정원. 둘 사이엔 여전한 미련의 눈길이 감돈다. 서먹한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지원은 정원에게 자신의 사진을 지워주길 부탁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 2000
이병헌, 이은주 주연의 <번지 점프를 하다>는 당대 한국에서 낯선 멜로 이야기였다. 소나기가 쏟아지던 여름 날 운명처럼 만난 인우(이병헌)와 태희(이은주), 둘은 영원을 약속하지만 태희의 죽음으로 사랑은 지속되지 못한다. 국어 교사가 된 인우는 딸과 아내(전미선)와 함께 과거를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태희의 환생을 직감으로 느낀 남학생 현빈(여현수)에게 인우의 마음이 향하고, 아내는 망연자실한다.
살인의 추억, 2003
전미선은 봉준호 감독과 두 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두만(송강호)의 아내 설영을 연기한 <살인의 추억>. 설영은 간호사를 그만두고 동네 사람들에게 주사를 놔 주며 더 벌이가 쏠쏠해졌다. 설영은 방앗간 할머니에게서 링거를 놓다가 들은 백씨 이야기를 두만에게 꺼낸다.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던 두만은 이 소문을 빌미로 광호(박노식)를 수사하기 시작한다.
마더, 2009
전미선은 <살인의 추억>의 설영이 하던 속칭 ‘야매’ 진료를 <마더>의 김혜자에게 위임했다. 도준 엄마(김혜자)가 침통을 들고 다니며 동네 사람들의 진맥을 보고, 미선(전미선)은 사진관을 운영한다. 아들이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몰린 딱한 사정의 도준 엄마에게 미선은 단골 고객이자 유일한 말동무였다. 미선은 이번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진짜 범인을 잡으려는 도준 엄마에게 죽은 아정(문희라)과 관련된 기억을 들려주면서 <마더>의 흐름에도 속도감이 붙는다. 아마도 봉준호에게 전미선은 내러티브의 키를 쥐어주고 싶을만큼 믿음직한 얼굴이 아니었을까.
숨바꼭질, 2013
많은 감독들은 전미선에게서 어딘가 있을 법한 편안한 어머니, 또는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집 안에서 낯선 사람의 기척을 느끼는 생활 스릴러 <숨바꼭질>. 전미선은 성수(손현주)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민지 역할을 맡았다. 평온한 가정에 닥친 끔찍한 사건을 표현해 내기에 전미선의 온화한 얼굴은 적격이었다. 헬멧을 쓴 낯선 자에게서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어머니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봄이가도, 2017
<봄이가도>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세 편의 단편영화를 엮은 옴니버스 영화다. 장준엽 감독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 전미선은 고등학생 딸을 잃은 엄마 신애를 연기했다. 딸 향(김혜준)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고, 어느 날 엄마의 눈앞에 딸의 환영이 나타난다. 이 시간이 영영 사라지지 않길 바라지만 결국은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머니. 전미선은 세월호라는 소재 때문에 <봄이가도> 출연을 고민했지만 결국 출연을 결심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연기자로서 내 몫은 다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