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에는 러닝타임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남긴 질문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올여름, 영화로부터 받은 영감을 각자의 고유한 시선과 언어로 재해석한 미술 전시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7월 5일부터 28일까지 롯데갤러리 10개점에서 열리는 LAAP(Lotte Annual Art Project) 전시다. LAAP 전시는 전국에 위치한 롯데갤러리 10개점(잠실 에비뉴엘, 본점 에비뉴엘, 청량리, 영등포, 일산, 인천터미널, 대전, 광주, 대구, 광복)에서 동일한 테마로 펼쳐지는 통합 주제전으로, 미술과 타 예술 장르의 관계를 탐구하며 이를 통해 예술의 메시지를 대중에 보다 친근하게 알리기 위한 의도로 기획됐다. 올해 LAAP의 테마는 ‘영화’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영화와 미술간의 미학적 또는 기술적 영향 관계를 조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영화를 본다는 일상적인 행위가 우리에게 남기는 강렬한 감정들의 의미를 반추하는 미술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한국 현대미술작가 100인이 그들이 인상 깊게 보았던 한국영화의 장면을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100 Movies 100 Artists 한국영화 100년> 전시(잠실 에비뉴엘 아트홀)부터 미국 감독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 대한 오마주 전시(롯데갤러리 인천터미널점)까지, 전국 각지 롯데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와 미술의 콜라보레이션 아트워크 중 추천작을 엄선해 소개한다.
“지난 한국영화의 100년을 수백, 수천개의 프레임으로 다시 불러오는 주문.”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열리는 <100 Movies 100 Artist 한국영화 100년> 전시를 기획한 롯데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초에 24프레임을 대중 앞에 ‘전시’하는 예술인 영화는 상영시간이 정해져 있어 이미 지나간 장면을 자유자재로 소환할 수 없다. 그러나 극장에서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던 영화 속 그 장면들은 미술이라는 또 다른 예술 장르를 통해 시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됐다. <100 Movies 100 Artist 한국영화 100년> 전시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 현대미술작가 100인이 그들 각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한국영화 속 장면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100여점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 영감을 준 한국영화로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마더> <괴물>을 비롯해 이창동 감독의 <시>와 <초록물고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공동경비구역 JSA>,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풀잎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이 있다. 모두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들이다. 특히 <8월의 크리스마스>와 <시>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미술작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영화이기에 눈길을 끈다. “영화에서 한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여느 예술가의 모습과도 흡사하다고 느껴졌다”는 김미영 작가의 말처럼 이창동 감독의 <시>는 삶과 예술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아티스트들의 공감과 선택을 받은 듯하다. 이 밖에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등이 많은 작가들의 선택을 받았다.
또한 <100 Movies 100 Artist 한국영화 100년> 전시에서는 영화 포스터 수집가 양해남,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의 최지웅 실장,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가 오랜 시간 수집해온 한국영화 포스터, 전단지, 카드, 영화음악 앨범 등을 함께 소개한다. 또 배창호, 임권택 감독의 영화 포스터 사진을 촬영한 바 있는 구본창 사진작가의 <시> 포스터, 인물사진의 대가로 평가받는 오형근 사진작가의 <쉬리> <접속> <친절한 금자씨> <태극기 휘날리며> 포스터, 패션 포토그래퍼로 유명한 홍장현 사진작가의 <아가씨> <국가부도의 날> <신과 함께> 포스터 스틸컷이 전시된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한 또 다른 전시, 대구 현대미술작가들이 <웰컴 투 동막골> <공작> <택시운전사> 등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이는 <Recollection 한국영화 100년>전(롯데갤러리 대구점)도 더불어 보면 좋을 것 같다.
한명의 작가 감독에 헌정하는 전시도 있다. 한국 작가 6명(08AM(박세진), 구나현, 김용오, 버라이어티숨(박수미), 주재범, 정수)이 미국의 대표적인 비주얼리스트 감독, 웨스 앤더슨에 대한 오마주의 의미로 작업한 <웨스 앤더슨: 노스탤지아>전(롯데갤러리 인천터미널점)이다. 슈퍼히어로의 일상을 조명하는 스웨덴 작가 안드레아스 잉글룬드의 개인전(롯데갤러리 청량리점)과 영화의 한 장면을 브릭으로 재해석하는 브릭 사진가 이제형의 사진전(롯데갤러리 일산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안드레아스 잉글룬드의 개인전 <Everyday Hero>는 초인적 능력과 비현실적인 아우라에 가려져왔던 슈퍼히어로의 일상을 상상해 작품으로 구현한 전시다. 슈퍼히어로라는 존재를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곳곳에 배치하는 잉글룬드의 작품은 영화가 만들어낸 판타지에 균열을 일으킨다. 브릭 미니 피겨에 페이소스와 이야기를 덧입히는 작가, 이제형 작가의 사진전 <Bric_Behind the Scenes>에서는 영화 포스터 또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한 작품 20여점이 소개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터미네이터2> <대부> <킬 빌> 등의 신작 4점과 <올드보이> <스타워즈> 등 이제형 작가의 이름을 알리게 한 대표작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 밖에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밤비>의 제작 과정이 담긴 아카이브를 선보이는 <디어 밤비, 사랑이 필요한 밤이야>(롯데갤러리 부산 광복점), 1933년 설립된 광주극장의 유서 깊은 역사와 의미를 탐구하는 <시네마 ‘광주’ Into the Memory>(롯데갤러리 광주점), 추억의 만화 속 캐릭터 로보트 태권브이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My Memories, My Heroes>(롯데갤러리 대전점), 고전영화 <메트로폴리스>를 모티브 삼아 영화와 미술간의 시각적 의미구조를 살펴보는 <Hidden Pictures in Cinema: 영화, 미술로 읽다>전(롯데갤러리 영등포점)이 열린다. 예술 매체간의 크로스오버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 LAAP ‘Behind the Scenes’ 전시는 영화와 미술이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