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13년의 공백> 사이토 다쿠미 감독 - 영화를 만들며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2019-07-11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드라마 <메꽃~평일 오후 3시의 연인들~>(2014)로 큰 인기를 얻은 배우 사이토 다쿠미가 자신의 첫 영화 연출작 <13년의 공백>을 들고 한국을 방문했다. <13년의 공백>은 진지하고 따스한데 엉뚱한 구석까지 갖춘 사이토 다쿠미 감독의 매력을 그대로 복사한 듯한 영화다. 도박빚으로 가족을 13년 동안 떠났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남편을 원망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온 가족의 이야기가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전반부의 드라마와 후반부의 블랙코미디가 기묘하게 결합된 구성은 감독 사이토 다쿠미의 야심을 보여주는 대목. 연기, 연출, 예능 등 다방면에서 자신의 창의적인 재능을 쏟고 있는 사이토 다쿠미 감독을 6월 28일 서울에서 만났다. 일본의 예술가 집단 칭퐁과 함께하는 차기 연출작 <COMPLY+-ANCE>, 배우로 참여한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만리키> 등 자신의 새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스티커까지 손수 챙겨주는 자상함까지, ‘완벽한 남자’ 사이토 다쿠미와의 대화를 전한다.

-친분이 있는 버라이어티 방송작가 하시모토 고지의 실화에서 시작된 영화다.

=처음에는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영화 후반부의 엉뚱하고 기발한 장례식 장면을 콩트나 코미디 영상으로 만들어볼까 싶었는데, 거기에 드라마를 더하면서 한편의 영화가 됐다.

-얘기한 것처럼 영화의 구성이 특이하다. 전반부는 감성적인 드라마로 흘러가고 후반부는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이 그려진다.

=한국의 <곡성>(2016) 같은 영화도 하나로 장르를 규정하기 힘들지 않나. 단순히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는 작품이 아니라 두개의 서로 다른 식재료가 각각의 맛을 내면서도 하나의 멋진 음식으로 어우러지듯, 영화 또한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 전형적이지 않은 장르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촬영은 6일 동안 했는데 편집에는 5개월이 걸렸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워낙 유명하고 바빠서 이들을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정이 6일이었고, 최대한 효율적인 로케이션과 프로덕션을 고민해서 빠른 시간 내에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편집 기간이 꽤 길다.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프리미어로 출품하기 위해 영화제 일정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만약 마감 기한이 없었다면 편집이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웃음)

-아들 코지(다카하시 잇세이)와 아버지 마사토(릴리 프랭키)가 13년 만에 만나는 병원 옥상 장면에서, 두 사람의 심리적 거리감을 물리적 거리로 표현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다카하시 잇세이, 릴리 프랭키 그리고 나는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났다. 사전에 배우들에게 서로 친하게 지내지 말자고 당부했다. 어색하고 서먹한 감정이 연기에도 묻어나길 바랐다. 아버지와 아들이 멀찍이 떨어져 얘기 나눌 때의 그 거리는 두 사람이 말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 거리다. 옆에 나란히 서 있다면 대충 중얼거려도 뜻이 전달되겠지만, 이만큼 떨어져 있으면 정확히 말해야 뜻이 전달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대화가 맞물리는 것 같으면서도 맞물리지 않고, 맞물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맞물리는 느낌이 든다. 또 다른 의미로, 아들과 아버지가 캐치볼하는 장면이 몇번 등장하는데 캐치볼을 할 때의 거리, 바로 몸이 기억하는 거리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 역에 릴리 프랭키, 엄마 역에 간노 미스즈, 둘째 아들 역에 다카하시 잇세이를 캐스팅했고 첫째 아들 요시유키 역을 본인이 연기했다. 어떻게 이 네 배우를 한 가족으로 캐스팅하게 됐는지.

=일본의 스타 배우 중 한명인 다카하시 잇세이를 중심으로 캐스팅을 진행했다. 배우의 실제 나이와 캐릭터 나이가 10살 정도 차이나고, 여자친구 사오리 역으로 나오는 마쓰오카 마유와도 10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다카하시 잇세이는 나이를 초월한 느낌이 있는 배우라 상대 배우와 자연스레 어울렸다. 릴리 프랭키와 간노 미스즈 역시 함께했을 때 부자연스러움이 전혀 없었다. 관객이 봤을 때 무리한 가족 구성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고 자연스러운 캐스팅에 집중했다. 캐스팅에선 정말 승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웃음)

-후반부 장례식 장면에선 지인들이 한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 마사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현실적이면서도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 같은 인물들이 우스꽝스럽지만 짠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재밌는 스탠딩코미디쇼를 한편 본 것 같았다.

=처음엔 모두 코미디언으로 캐스팅하려 했는데 전반부와 후반부의 밸런스가 중요한 만큼 코미디언과 배우, 연기 경험이 없는 예술가 등 다양한 조합을 꾸렸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독특한 분위기가 살아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전반부의 거리감과 비슷하게 이들의 독특한 거리감도 살리고 싶었다. 워낙 실력이 좋은 분들이라 믿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영화가 어떻게 완성될까, 반쯤은 확신을 갖고 반쯤은 불안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 (웃음) 그리고 장례식장에 모인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아버지 마사토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가 있고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 이미지를 종합했을 때 결국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육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두 아들은 처음으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보게 된다.

-사이토 다쿠미라는 사람을 놓고 봤을 땐,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나.

=타인에게 어떻게 비쳐지는지 앎으로써 나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상만 좇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을 한다. 나는 배우이지만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데, 부끄럽기도 하지만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인체 실험’을 하는 중이다. (웃음)

-얘기한 것처럼, 예능에 출연할 땐 멋있고 진지한 사이토 다쿠미가 아닌 모든 걸 내려놓는 예능인이 된다.

=예능에 나가서도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 하면 ‘이 사람 안 되겠구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고정된 역할을 하는 건 재미없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자기를 엄격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한계를 뛰어넘는 표현도 하게 된다.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만들 생각인데, 여러 환경을 경험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행동을 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 나를 채찍질하며 계속 나아갈 생각이다.

-앞서 한국영화에 대한 언급도 했는데, 한국영화를 즐겨보나.

=유지태, 김하늘 주연의 <동감>(2000)의 일본 리메이크작이 내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고, 신작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도 담을 생각이다.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 이창동, 홍상수 등 여러 한국 감독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나의 베스트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다. (<13년의 공백>이 표지 기사로 실린 <씨네21> 1209호를 들추며) 내 영화에 대한 기사와 봉준호 감독의 특집 기사, 심지어 <살인의 추억>의 두 배우 송강호와 박해일이 출연하는 신작 <나랏말싸미> 영화 스틸까지 한 잡지에 실리다니 정말 신기하다. (웃음)

-첫 영화를 연출한 소감이 궁금하고, 감독으로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지 들려달라.

=영화는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선 배우들을 모으고 이야기와 공간을 제공했다는 의미로 ‘연출’을 했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를 보면 그 나라만의 리얼리티를 보게 된다. 내 영화를 통해 그런 고유한 리얼리티를 전달하고 싶고, 영화로 사람들과 이어지고 싶다. 이렇게 한국에서 한국 관객과 영화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감독으로서 행복한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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