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2018) 엔딩 크레딧에는 이전까지 이어져온 영화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주디 콜린스의 1967년 노래 <Both Sides Now>가 흐른다. 감미로운 선율이 오히려 뭔가 한방 더 ‘맥이는’ 것 같은 감독의 악취미랄까. 물론 ‘양쪽’을 다 보았다는 의미의 가사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한데 엮이긴 하지만, 연기가 피어오르듯 공중 부양하는 엄마 애니(토니 콜레트)의 모습과 함께 기분이 더 찜찜해지긴 했다. 앞서 아빠(가브리엘 번)가 불타오르는 장면도 그랬다. 오래전 가브리엘 번은 <스티그마타>(1999)에서 교회의 기적을 찾아다니는 신부이자 과학자이기도 했다. 스티그마타(Stigmata)란 손바닥의 못 구멍처럼 예수가 죽을 때 입은 상처가 그대로 똑같이 나타나는, 도저히 종교적 교리로 해석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그랬던 그가 <유전>에서는 악마가 행하는 기적(?)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심지어 가브리엘 번은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엔드 오브 데이즈>(1999)에서는 악마로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밀러스 크로싱>(1990), <유주얼 서스펙트>(1995)는 물론 <아이언 마스크>(1998)의 달타냥으로 출연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때였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유전>에서는 무능한 아빠로 등장해 결국 불에 타죽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1976)에서 10대들의 피칠갑 장면과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1989)의 교묘한 매혹을 좋아한다는 아리 애스터 감독은 신작 <미드소마>에서도 기분 나쁜 매혹을 충분히 전파하고 있나 보다. 영화에 대한 상세한 비평은 이번호 장영엽 기자의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기사에서 장영엽 기자는 “가장 끔찍한 순간과 가장 행복한 표정이 공존하는 축제의 클라이맥스는, 관객의 넋을 완전히 빼놓는다. <미드소마> 이후 이 괴물 같은 감독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그게 어디이든, 그의 영화를 보려면 정신을 단단히 다잡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다”고 썼다. <유전>에서도 그랬다. 후반부에 조안 아주머니(앤 도드)가 곧 악마가 될 피터(알렉스 울프)를 향해 멀리서 “잔타니 대그다니 아파라곤~” 하고 주문을 외칠 때였다. <엑소시스트>(1973)를 비롯한 수많은 오컬트영화에서 언제나 주문은 악마를 몸에서 내보내려는 목적이었지만, 반대로 <유전>에서는 악마가 몸에 잘 들어가게끔 외친 것이었으니 그 찜찜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즈음 봤던 가브리엘 번의 영화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라우더 댄 밤즈>(2015)였기에, 모처럼 반갑게 돌아온 그가 한때 자신의 이미지를 명징하게 직조했던 오컬트영화에서 다시금 맹활약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산산조각 내버린 영화가 바로 <유전>이었다. 또 다른 아일랜드 배우 킬리언 머피와 함께 다큐멘터리 <켄 로치의 삶과 영화>(2016)에도 출연했던 그는 켄 로치 감독과 함께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다 무산됐던(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지도부가 학살을 지휘했던 나치의 아돌프 아이히만과 사실상 협력관계였다는 내용이었기에)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뒤늦게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된 것이다. 한편 이번주에 새삼 케케묵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 배우가 한명 더 있다. 바로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이번호 28쪽 프리뷰 참조)의 장 위그 앙글라드다. <베티블루 37.2>(1986), <니키타>(1990), <여왕 마고>(1994), <세이 예스>(1995)는 물론 한때 영화광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킬링 조이>(1994)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던 그가 그냥 수영장의 아재가 돼 있었다. 그나마 아재들 중에서 예술적 취향을 뽐내는 로커이긴 했다. 그렇게 환갑 지난 두 배우를 보며 괜한 옛 추억에 빠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