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스파이더 맨>의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
2002-05-02
글 : 최수임
기이한 키스가 낳은 화학작용

<스파이더맨> 첫 촬영일, 토비 맥과이어는 커스틴 던스트에게 노란 꽃 한 송이를 선물했다. “노란색은 우정을 상징하죠?” 던스트는 말하며 받았다. 영화가 개봉을 앞둔 요즘,미국에는 맥과이어와 던스트가 친구를 넘어 연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우리의 화학작용은 실재했어요. 그건, 그녀가 용감한 여배우였기 때문이에요.” 맥과이어는 영화 안에만 머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묘한 말을 남겼다.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스파이더맨>에서 맥과이어와 던스트는 소문나기 충분할만큼 어울린다. 맥과이어가 아닌 스파이더맨을, 던스트가 아닌 메리 제인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투명한 눈빛에 불안이 비치는 스물일곱의 토비 맥과이어와 생기어린 에너지가 머리칼 끝에까지 피어나는 갓 스물의 커스틴 던스트. <스파이더맨>에서 이들은 영화사상 아마도 가장 기이한 체위의 키스 신을 연기한다. 비 내리는 밤, 여자는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고, 남자는 건물 벽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마치 무중력 상태 우주에서 키스를 하듯, 남자의 윗입술은 여자의 아랫입술과, 여자의 윗입술은 남자의 아랫입술과 만난다. 열두살 때 이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브래드 피트의 입술을 가졌던 화려한 경력의 던스트도 힘들게 소화해냈다는, 어딘가 비현실적인 이 키스처럼, 스파이더맨과 그의 여자 메리 제인의 사랑은, 원작으로부터 묻어온 만화적 상상력과 더불어, 맥과이어와 던스트, 두 배우의 ‘화학작용’으로 영화 내내 몇번의 정점을 이룬다.

퀭할 정도로 창백하고, 감싸안아주기에는

또 너무 자폐적인 맥과이어가, 스파이더맨의 요란한 갑옷 속에서 비로소 자유를 느끼는 ‘왕따’ 피터 파커를 연기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나고 내 삶은 내 삶이다”라며 자신의 체취를 바이오그래피와 연결시키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그지만, 다른 어느 젊은 배우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그의 유례없는 습한 어두움은 그가 살아온 시간들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건 바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들의 헛헛함이다. 스무살 때 동거 중에 그를 낳은 맥과이어의 아버지는 맥과이어가 2살 때 아내와 아들을 버렸다. 맥과이어는 거의 무일푼의 엄마와 함께 미국 곳곳의 친척들 집을 옮겨다니며 자랐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어” 16살에 학교를 관둔 그는 기억나지도 않는 아버지의 직업이었던 요리사를 스스로 꿈꿨다. 그를 연기자로 만든 건 어머니. 요리학원을 다니려는 그에게 어머니는 연기워크숍을 들으라며 100달러를 주었고, 맥과이어는 연기를 배웠다.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 베지테리안 식당의 주방장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맥과이어는 술담배를 전혀 안 하고 두부와 요가를 즐기는 채식주의자로, 요즘도 절친한 친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곧잘 독창적인 요리를 대접한다고 한다.

맥과이어의 첫 영화는 열여덟살에 출연한 <디스 보이스 라이프>였다. 주인공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친구 중 한명이 그의 역. 리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부터 그의 필모그래피는 색깔을 뚜렷이 한다. <아이스 스톰>에서 스와핑 파티에 가게 되는 부부의 아들, <라이드 위드 데블>에서 남부군에 가담했지만 허무의 기운을 벗지 못하는 염세적 청년, <플레전트 빌>에서 1950년대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는 남매 중 오빠, <사이더 하우스>의 주인공 호머는 그가 연기한 인상적인 캐릭터들이다. “나는 영화가 아니라 캐릭터를 골라요. <스파이더맨>도 피터 파커에게서 나의 무엇을 보았기 때문에 하기로 했죠.” 맥과이어는 영화 속에서 주로 내성적이고 우울하며 어딘가 광기가 있는 인물을 많이 연기했다. 마이클 더글러스와 공연한 <원더 보이즈>는 그 대표적인 예. 와이어 액션으로 마천루 사이를 날아다니는 스파이더 맨의 마스크 속 외로움은, 눈 먼 개를 쏴죽이고 ‘러브 퍼레이드’라는 소설을 쓰는 <원더 보이즈>의 젊은 소설가 제임스 리어의 그로테스크함과 그리 다르지 않다.

커스틴 던스트는, 토비 맥과이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 던스트는 여덟살 때, 뉴욕에 관한 세 단편들의 옴니버스영화 <뉴욕 스토리> 중 우디 앨런이 연출한 <엄마 참으세요>(Oedipus Wrecks)로 영화 데뷔를 했다.

그리고, 12살 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와 흡혈 가족을 이뤄 고아소녀 클로디아를 연기, MTV 어워드 최우수 ‘약진’ 연기상, 새턴상 최우수 아역연기상 등을 받은 이후, 던스트는 통통하고 야무딱진 아역배우에서 싱그럽고 발랄한 틴에이저로 막힘없이 커나갔다. 남들이 좋다 해도 자기가 싫으면 관두는 딱 부러지는 성격의 던스트는, <아메리칸 뷰티> 여주인공 역을 제안받고는, “나체로 장미꽃잎 속에 파묻혀있는다구요? 하하하”하고 ‘비웃으며’ 그 역을 아낌없이 미나 수바리에게 넘겼다. <작은 아씨들> <쥬만지> <버진 수어사이드>가 그녀가 택한 작품들. 고등학교 치어리더로 그녀의 건강미를 유감없이 발휘한 <브링 잇 온>과 <겟 오버 잇>은 던스트의 마지막 십대물로, <크레이지/뷰티풀>에서 성숙한 캐릭터를 소화하기 시작한 던스트는 최근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캣츠 뮤>에서 나이를 훨씬 앞선 배역을 훌륭히 해내, 오히려 ‘캐릭터의 소녀다움이 그녀로 인해 살아났다’는 찬사를 받았다. 소녀에서 발랄한 10대 캐릭터로, 스크린의 미녀배우로 눈깜짝할 새에 변신한 던스트는, 그러나 지금도 나이트클럽보다는 디즈니랜드를 좋아하는 소녀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은 맥과이어에게와 마찬가지로 던스트에게도 첫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였다. “나는 언제나 원하는 것들을 해왔다. 영화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라는 밝고 똑똑한 던스트와 “<스파이더맨>은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한 인간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다.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주문은 바로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진지하고 명상적인 맥과이어의 조합은 영화에 독특한 기운을 불어넣었고, 그건 그들 각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맥과이어와 던스트가 정말로 연인이 되었다면, 바로 그런 자극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