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토이후드
2019-07-17
글 : 김혜리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마블 스튜디오가 주도권을 가져와서 만든 두 번째 스파이더맨 솔로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2019년 오스카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절찬리에 거머쥔 소니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로부터 적잖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피터 파커(톰 홀랜드)가 홀로그램의 환각 안에 뛰어들어 거미의 육감을 발휘하는 장면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보여준 대담한 그래픽 스타일을 채택하고 있다. 지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동시에 존재한다는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홀)의 설명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멀티버스 세계관과 통한다. 평행우주론은, 폭스를 흡수해 엑스맨 등 캐릭터를 되찾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편리한 팽창의 근거도 될 수 있다. 마블과 소니의 협약이 연장된다면 다음 거미인간 영화에서는 톰 홀랜드와 앤드루 가필드, 마일스 모랄레스가 공조하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06/21

<토이 스토리4>는 장난감의 범주를 넓히고, 장난감이 사는 방식을 확장한다. 유치원에 간 보니(매들린 맥그로)가 버려진 1회용품으로 만든 포키(토니 헤일)는 곧장 살아 움직인다. 공장에서 형태와 쓰임새가 정해져 생산되는 장난감만 장난감의 자격을 갖는 건 아니다. 무생물에 영혼을 불어넣는 힘이 이목구비로부터 나오는지, 어린이의 상상력과 애착에서 비롯되는지 불분명하지만, 포키는 다른 공산품 토이들과 똑같은 생명을 얻고 어리둥절해한다(1편에서 버즈 라이트이어가 스스로를 진짜 우주비행사라고 믿고 우왕좌왕하던 것과는 반대의 부적응이다). <토이 스토리>에서 기존 장난감들을 부숴 재조립하는 옆집 소년 시드가 프랑켄슈타인 박사류의 잔인한 캐릭터로 묘사됐다면 <토이 스토리4>의 보니는 창의력이 뛰어난 소녀로 그려진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창의력 대장 시드는 앤디 또래였으니 지금쯤 로봇공학과를 졸업해 <빅 히어로>의 연구소 같은 기관에 채용됐을지도 모른다.

한편 소유주에 대한 충성과 봉사가 삶의 유일한 목적이던 우디(톰 행크스)는 난생처음 카우보이다운 선택을 한다. <토이 스토리4>에서 우디는 존 포드 영화의 존 웨인처럼 일행 중 낙오자를 모험 끝에 구조하고 다시 지평선을 향해 길을 떠난다. 우디의 로맨스 상대 보핍(애니 포츠)은 일반적 서부극의 여성 인물과 달리 정착이 아닌 모험과 개척의 상징이다. 우디는 더 많은 어린이와 장난감을 돕는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고용 안정성과 별개로, <토이 스토리4>에는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우디가 풍경을 음미하는 숏이 있다. 지금까지 해결사 우디는 언제나 누군가를 구하거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픽사는 군데군데 롱숏으로 인간 세계에서 장난감이 얼마나 작고 미약한지 상기시켰고 그 와이드 앵글에 담긴 풍경은 우디가 목표까지 극복해야 할 거리와 부피를 대변했다. 그러나 <토이 스토리4>의 비슷한 숏은 목적이 다르다. 앤티크숍에서 포키를 찾아 진열장을 오르던 우디는 문득 가게 깊숙이 드리운 석양빛에 시선을 뺏긴다. 샹들리에와 쇼윈도, 다양한 질감의 골동품 표면이 물비늘처럼 빛을 산란시키고 떠도는 먼지조차 별의 가루 같다. 공기의 질감까지 살리는 픽사의 날씨 이펙트 기술력에 감탄하게 되는 이 순간, 우디는 잠시 당면한 목표를 잊고 아름다움을 느낀다.

06/26

1990년 이전까지 근육질 스타의 한방을 선호하던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무술을 가볍게 여기고 담당 스탭도 존중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트릭스>(1999)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블록버스터 액션에 아시아 무술을 흡수한 격투가 등장했고 슈퍼히어로물이 액션 장르의 주류가 된 지금도 이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규모 시각특수효과(VFX)가 파괴의 스펙터클을 만드는 슈퍼히어로 세계 바깥에서는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덴젤 워싱턴의 <이퀼리브리엄>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시리즈가 상대적으로 사실적인 액션영화의 계보를 이어온 셈이다. <존 윅3: 파라벨룸>(이하 <존 윅3>)은 결혼 후 은퇴한 킬러계의 전설 존 윅이 아내를 여의고 상실감에 잠겨 있던 중 아끼는 차와 반려견을 범죄조직 보스의 아들에게 빼앗기고 복수에 나섬으로써 열린 피바다의 세 번째 장이다. <매트릭스>에서 다름 아닌 네오(키아누 리브스)의 대역이었던 액션 전문가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연출한 이 시리즈의 자부심은 당연히 편집과 CG의 눈속임을 최소화하고 배우의 액션 능력과 정교한 안무를 부각시킨 액션에 있다. <존 윅3>는 암살자 세계의 ‘영업’ 금지 구역에서 살인을 범한 존 윅이 조직에서 파문되고 1400만달러 현상금을 노리는 온 세상 암살자들의 표적이 되는 순간 시작한다. 요컨대 죽이려고 달려드는 다양한 집단의 킬러들을 존 윅이 차례대로 최대한 다채롭게 초토화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다. 일대일 액션의 연쇄가 주를 이루던 1편과 비교해, 3편은 가능한 경우의 수를 총동원한 액션 편람이다. 총 없는 일대일 맨손 싸움부터, 일당백 총격전까지 대결 조합도 가지각색이고 흉기로는 책, 허리띠, 단도, 도끼, 장검, 말, 개가 동원된다. 특히 스타 헬스키 감독은 영화 액션의 예술적 자부심을 강조하듯, 교양 넘치고 고풍스런 공간을 싸움터로 골랐다. 존 윅은 뉴욕 공공 도서관에서 출발해 앤티크숍, 골동품점, 마구간, 카사블랑카의 우아한 건물, 호텔 유리 라운지를 거치며 시체의 산을 쌓는다. 버스터 키튼, 해럴드 로이드 등 무성영화 스타의 이미지를 2편에 이어 인용하는 이 영화는 살인 슬랩스틱 또는 슬랩스틱 슬래셔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존 윅3>의 모든 액션 시퀀스는 차별화를 위해 고심한 흔적을 드러낸다. 특히 무기와 사용법의 미스매치가 눈에 띈다. 뉴욕 공공 도서관에서 2m가 넘는 거한(보반 마르야노비치)과 벌이는 최초의 결투는, 돌돌 만 잡지로 사람을 잡은 제이슨 본의 액션을 하드커버 고서로 대체한 버전으로,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키 작은 적수와의 싸움과 대구를 이룬다. 딱딱하고 무거운 책은 자체가 둔기지만 타격을 극대화하는 받침대로도 쓰인다. 앤티크숍 창고에서 벌어지는 칼 액션은 찌르고 베기보다 던지기 위주다. 존 윅은 진열장에서 수많은 칼을 털어 쟁여놓고 눈싸움하는 어린아이처럼 양손으로 쉬지 않고 칼 팔매질을 한다. 겨냥 따위 할 틈이 없다. 반면 총은 칼이나 망치처럼 쓴다. 존 윅은 “요새 방탄복이 왜 이렇게 좋아졌냐”고 불평하면서, 마치 중세 기사들이 갑옷 틈새 노리듯 적의 목덜미나 겨드랑이를 헤쳐 총탄을 꾹꾹 박아넣는다. 굳이 원치 않아도 쿵후 말고 건푸(gun fu)라는 조어의 의미를 절감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영화 액션의 요체는 상대의 균형을 흐트러놓는 행위이며 치는 사람과 맞는 사람이 서로를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무용이라는 점을 잘 안다. 클라이맥스의 무대인 유리 칸막이 방은 영화 속 총격 액션 배경으로 익숙한 거울방과는 또 다른 유희를 연출한다. 상대의 반영과 실체를 분별하는 거울방의 긴장 대신, 투명한 유리벽은 허공인 척 공격을 가로막아 근접 액션의 안무를 복잡하게 만든다. 메인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 외에도 좌우 위아래의 방까지 한눈에 들어와 깊이감을 극대화한 유리방 시퀀스는, 격투기를 연기하는 배우뿐 아니라 촬영과 조명팀까지 마스터숏의 그림을 숙지하고 철저히 공조할 때에만 달성 가능한 영화 액션의 재미를 예시한다. “나쁜 액션에는 이유가 있다. 무술감독에게 맡겨놓고 찍기 얼마 전 테스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우, 조명, 촬영, 스테디캠 오퍼레이터가 액션의 동선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액션영화보다 리허설에 세배의 돈을 들였다.” 스타헬스키의 말이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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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 스토리

2019년이나 되어서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1984)의 주제가 때문에 글썽일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지난 7월 4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3는 조르조 모로데르가 작곡하고 리말이 불러 히트했던 이 노래를 결정적 순간에 10대 인물들의 듀엣으로 들려준다. 괴물이 추격해오고 세계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 울려퍼지는 이 순진무구한 판타지 찬가는, 일촉즉발의 위기 한가운데에서 미소를 부른다. 노래하는 소녀가 아톰처럼 한쪽 팔을 쭉 뻗는 순간에는 감격마저 솟는다. 비할리우드영화로서 최대 예산을 자랑했던 미하엘 엔데 원작의 1984년 영화에서 이 노래는, 동화 안팎의 두 소년이 행운의 하얀 용 팔코를 타고 창공을 가르는 장면을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히컵과 투슬리스의 비행 전에, 해리 포터가 벅빅을 타고 날기 전에 <네버엔딩 스토리>가 있었다. <기묘한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죽음을 포함한 잔혹한 모험도 씩씩한 아이들이 평생 써내려갈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일부임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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