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시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2014년 9월 27일부터 시작된 홍콩 주민들의 시민 불복종 운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시위 전개 과정에서 홍콩 경찰이 최루탄과 최루액, 살수차 등을 이용해 진압을 펼치자 시민들이 지참하고 나온 우산을 이용해 최루액을 막아내면서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그처럼 1997년 중국 본토 반환을 전후로 하여 과거의 영국, 현재의 중국에 저항해왔던 홍콩 사람들의 자존심은 여전히 건재하다. 1967년 당시 영국 통치에 반대하던 반식민시위 양상은 오우삼의 <첩혈가두>(1990) 초반부에 잘 담겨 있다. 홍콩 노동자들의 시위가 격해지며 혼란스런 가운데 세 청년(양조위, 장학우, 이자웅)은 베트남으로 떠났었다. 서극의 초기 걸작 <제일유형위험>(1980)에서 완전무장한 영국인 무기밀매업자와 싸우는, 급기야 영화 속에서 사제폭탄까지 만드는 홍콩 청년들의 광기어린 혼돈의 모습 또한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순류역류>(2000)의 촬영감독이면서 <팔선반점의 인육만두>(1993) 같은 하드고어 장르영화부터 <여왕에서 행정장관까지>(2000) 같은 사회파 영화까지 만들기도 했던 독특한 이력의 구예도 감독도, 이제는 홍콩의 향수가 되어버린 <찹쌀볶음밥>(2010)이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통해 과거 홍콩 사람들의 시위 장면을 담아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우산 혁명이 당대의 홍콩영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어떤 모습으로 담길지는 알 수 없다. 더구나 한국에서 (이제는 구분법이 무의미해진) 홍콩영화 혹은 중국영화의 마지막 실질적 흥행작이 2002년에 개봉한 <무간도>라는 것을 감안하면(공식 집계가 시작된 이래, 기록상 현재 국내 중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은 오우삼의 2009년작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의 269만 관객이다), 한때 하루가 멀다하고 홍콩 스타들이 국내 TV 예능 프로그램과 CF를 섭렵했던 옛 기억을 뒤로한 채 그야말로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후 견자단이 직접 방한해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친 <엽문>(2008)도, 주윤발이 모처럼 복귀해 만든 <공자: 춘추전국시대>(2010)도, 장국영의 향수를 떠올리게 했던 엽위신 감독의 리메이크 <천녀유혼>(2011)도 조용히 개봉하고 사라졌다. 왕가위는 너무 띄엄띄엄 영화를 만들고, 두기봉의 영화들은 거의 영화제에서나 만날 수 있으며, 주성치의 영화조차 중국 박스오피스를 여전히 들었다 놨다 하고 있음에도 한국 개봉이 힘들긴 마찬가지다. 그렇게 홍콩/중국 영화는 한국 극장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번주 김성훈 기자가 독야청청 열일했던 관금붕의 <초연> 특집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뤄졌던 것인데, 혹시나 하고 국내 개봉에 맞춰 실을 수 있을까 하여 꽤 공들여 준비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수입/개봉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최근의 홍콩 분위기와 홍콩영화의 흐름을 반영한 특집을 준비했다. <연지구>(1987), <완령옥>(1991), <쾌락과 타락>(1997), <란유>(2001) 등 관금붕의 영화세계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겠냐만,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1994) 이후 거의 20년 넘게 한국에서 그의 영화가 정식 개봉하지 못한 것도 실로 충격이다. 영화에 관한 자세한 내용과 인터뷰(정말 좋다!)는 기사를 참고해주시기 바라며, 이를 통해 혹시라도 관객을 만날 기회가 만들어지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