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주성철 편집장] 제이슨 스타뎀, 이연걸이 되고 싶었던 백인 배우
2019-08-02
글 : 주성철

제이슨 스타뎀만큼 흥미로운 액션배우도 없는 것 같다. 왕년의 하드보디 액션스타들이 삐걱대는 몸을 이끌고 총출동했던 <익스펜더블> 시리즈를 거쳐 <스파이>(2015)를 통해 가공할 반전 매력을 보여주더니,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을 시작으로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합류한 뒤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2017)에 이어 최신작 <분노의 질주: 홉스&쇼>에 이르기까지, ‘무술 하는 액션배우’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할리우드에서 딱히 경쟁상대를 찾을 수 없는 배우가 됐다. 그사이 <블레이드> 시리즈의 웨슬리 스나입스는 기나긴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차례대로 팔순과 칠순과 환갑을 바라보는 척 노리스와 스티븐 시걸과 장 클로드 반담은 이제 와서 굳이 이름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예상치 못하게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 배우는 <존 윅> 시리즈의 키아누 리브스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원화평 무술감독을 통해 홍콩 액션을 경험하며 뒤늦게 액션에 눈을 뜬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맨 오브 타이치>(2013)를 직접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기도 했다.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8)로 데뷔한 제이슨 스타뎀은 오래도록 다이빙 선수로 활동했기에 탁월한 운동신경을 지니긴 했으나 액션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존 카펜터의 <화성의 유령들>(2001)에서도 딱히 액션 연기를 선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평소 이연걸의 팬이었던 그가 제임스 웡의 <더 원>(2001)에서 이연걸을 추적하는 요원으로 나오면서 자신감을 얻은 뒤, 원규의 <트랜스포터>(2002)를 시작으로 시리즈를 거듭하며 환골탈태하기에 이르렀다. 무술감독이기도 했던 원규 감독을 졸라 돌려차기와 올려차기 등의 발기술을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결과였다. 급기야 <황비홍> 시리즈에서 이연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물 먹인 천을 봉처럼 휘두르는 장면을 <트랜스포터 엑스트림>(2005)에서 기다란 소방 호스를 이용해 응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여러 영화를 거쳐 지금의 ‘가장 무술 잘하는 백인 액션 기계’ 제이슨 스타뎀이 만들어졌다.

<씨네21>에서 파리 한 마리 잡지 못할 정도로 액션과는 거리가 먼 송경원, 김현수 두 기자가 꾸린 이번호 특집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새로운 트렌드다. 아마도 가장 큰 전환점은 원화평 무술감독이 참여한 <매트릭스>(1999)일 것이다. 홍콩 무술영화 스타일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액션 연출의 중요한 문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묘한 쾌감도 줬지만, 한편으로 역시 원화평이 참여한 <킬 빌2>(2004)를 거치며 극동아시아 액션영화가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어떤 거대한 세계가 붕괴되는 것 같은 상실감을 주기도 했다. 특히 원규 무술감독이 <엑스맨>(2000)에 참여하면서 이후 DC와 마블의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이 홍콩영화처럼 액션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흐름의 정점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이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서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가 구사하는 액션은 정확히 원화평 무술감독과 서울액션스쿨 스타일을 반반씩 합쳐놓은 느낌이다. 물론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추측일 뿐이지만, 엘리베이터 액션신을 두고 <신세계>(2013)의 ‘드루와 드루와’ 액션신을 떠올린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어쨌거나 이제 할리우드에서는 홍콩 무술감독을 초빙하던 시대를 지나 <존 윅> 시리즈를 대표로 하여(<존 윅> 시리즈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바로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스턴트 대역 출신이다), 보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그들끼리 알아서 잘하기 시작했다. 이번 특집은 바로 ‘그날 이후’ 달라진 할리우드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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