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연애에 대해 말할 때 우리의 시야는 물기로 흐려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눈은 통속의 디테일을 그릴 때 누구보다 명철하다. 스페인으로 무대를 옮긴 신작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도 감독의 장기는 그대로다. 친척의 결혼식날 일어난 한 소녀의 납치 사건은, 관련된 여러 가족의 내력을 들쑤시고 구성원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파르하디 감독의 치밀한 서사는 범죄물의 그것이지만, 하나의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 둘 이상의 폐허를 남긴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멜로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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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일상적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보통 사람들의 일터는 극영화보다 텔레비전이 즐겨 찾는 영역이다. TV 엔터테인먼트가 직장을 그릴 때 즐겨 쓰는 장르는 시트콤이다. 다수 인물이 반복적 루틴 속에서 소소한 희로애락을 겪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서사를 담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노동은 딱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반면 영화는 노동 자체를 주제로 삼을 경우 비판적 접근법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다큐멘터리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에 포함된 비인간화와 소외의 과정을 폭로했고, 극영화들도 경제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은 히피, 실업자, 홈리스 같은 캐릭터를 통해 아웃사이더적 시선으로 노동을 조명해왔다. 그런데 <그녀들을 도와줘>의 앤드루 부잘스키 감독은 제3의 길을 간다. 숙련된 인간 행위의 아름다움, 노동이 주는 성취감을 주시하는 동시에, 아무리 일해도 부와 존중을 얻기 힘든 열악한 조건을 드러낸다. 최근에 비슷한 궤적을 보이는 감독으로는 <스탈렛>(2014), <탠저린>(2015),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의 숀 베이커가 있다.
<그녀들을 도와줘>에서 앤드루 부잘스키 감독을 인도하는 길잡이는, 텍사스의 식당 지배인 리사(레지나 홀)다. 카메라는 원인 모를 눈물을 훔치며 주차하는 아침 출근길부터 24시간 남짓 리사의 일과를 뒤따른다. 그의 직장 ‘더블 웨미’(Double Whammy)는 여성 종업원의 섹스어필을 상품성으로 내세우는 일명 ‘브레스토랑’(breastaurant)이다. 몸매를 노출한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이 서빙을 하며 고객을 상대하는 식당이다. 미국의 실존 프랜차이즈 ‘후터스’와 비슷한 컨셉이되, ‘더블 웨미’는 업장이 하나뿐인 자영업자의 가게다(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후터스의 직원 가이드북에는 “고객에게 미국적인(All American) 치어리더, 서퍼, 옆집 아가씨의 이미지를 제공한다”고 명시돼 있으며, 채용된 여성 직원들은 이 식당이 성적 어필에 기초하고 있으며 농담과 즐거움을 위한 대화가 노동환경의 일부임을 인지한다는 서류에 서명한다고 한다). 요컨대 ‘더블웨미’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기대어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장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여성 노동자들은 동료 이상의 결속을 맺는다. 성 상품화를 아예 전제로 한 직장에 다니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궁극적으로 아무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음을 알기에 오직 서로에게 의지한다. 영화의 제목 역시 리사가 어려운 직원을 돕기 위해 사장 몰래 여는 세차 이벤트의 구호 “아가씨들을 도와주세요”(Support the Girls)에서 나왔다.
중간 관리자인 리사는 ‘더블 웨미’의 진정한 주인이다. 소유주는 백인 남성 사장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스탭과 고객을 속속들이 알고 돌보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이는 리사다. 스스로도 고용주의 변덕으로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처지이면서도 리사는 직원과 손님이 안전하고 행복한지 헌신적으로 살핀다. 리사의 분주한 하루는 신입 종업원 지망생들에게 긍지를 불어넣고 밤새 침입한 도둑을 경찰에 넘기는 업무로 시작한다. 절도와 관련된 내부자를 최대한 관대하게 정리하고 나면,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한 웨이트리스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출근하고, 여성 동료들은 자연스레 다함께 아이를 돌본다. 하필 큰 경기가 있는 날 TV 케이블이 고장나고 음향 시스템을 빌릴 일도 생긴다. 이 와중에 종업원을 모욕하는 손님이 나타나자 리사는 무관용 원칙으로 경찰과 협력해 동료를 보호한다. 앤드루 부잘스키 감독은 홀과 주방, 로커룸을 한달음에 드나들며 상황에 따라 매너를 바꾸는 리사와 동료들의 움직임을, 티나지 않지만 공들인 블로킹으로 따라잡으며 이들의 일상에 내포된 리듬을 표현한다. 리사의 일과는 이를테면 폭설 속에서 계속되는 제설 작업과 비슷하다. 끊임없이 치워야 할 장애물이 쌓인다. 그러나 삶은 참으로 배은망덕하다. 남편은 리사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떠나려 하고, 옹졸한 사장은 리사가 직원들의 개인적 곤경까지 배려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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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을 도와줘>의 최대 역설은, 유능하고 선량한 리사가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할수록 사장이 돈을 벌고 성 상품화는 지속되는 반면,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빈곤과 성차별은 개선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부잘스키 감독은 이 암담한 팩트를 소리내지 않고 명시한다. 그렇다면 리사의 긍지와 원칙은 무의미할까? 사회학도라면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영화는 다르게 답할 수 있다. 직장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척박한 조건의 노동현장이건, 자기가 관할하는 동료들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리사는 숭고한 인물이다. 명예와 책임을 매일 지키는 현대의 성인(聖人)이다. 이 작은 체구의 슈퍼히어로가 품은 목표는 세계를 구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실제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서포트’를 기대할 수 없는 동료들에게 리사는 가족 엇비슷한 울타리를 주고자 한다. 막 사회에 진출한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여기는 스트립 클럽이 아니다. 고객이 선을 넘으면 내가 지켜줄 것이다”라고 단단한 말투로 긍지를 불어넣는다. 리사와 동료들은 선봉에 서서 유리천장을 깬 엘리트 슈퍼우먼이 아니다. 시간과 감정 때로는 육체의 이미지를 팔며 생계를 지탱하는,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와 같은 조건에 처한 인물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노동에서 얻는 것이 임금만은 아니다. 일은 그들에게 임금뿐 아니라 웃음과 우정, 인간임을 확인하는 보람이다. 바쁜 일과 중 벽에 부딪힐 때마다 리사는 식당 뒷문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도로의 자동차 소음도 이제 눈을 감으면 파도소리 같아”라는 리사의 말은 일터 밖에서 따로 낙원을 찾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그녀들을 도와줘>는 “노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그 의미를 실현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사회적 조건을 조용히 적시한다. 이쯤해서 떠오르는 <그녀들을 도와줘>의 엉뚱한 남매 영화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매직 마이크>(2012)다. 댄스 뮤지컬의 속성이 강하지만 <매직 마이크>는 남성 스트리퍼들을 통해 남부 미국의 저임금 노동계급의 현실을 드러내는 영화이기도 했다. 퍼포먼스의 성격을 띠는 노동으로 육체적 매력을 파는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점도 유사하다. 춤추는 청년들은 <그녀들을 도와줘>의 여성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립쇼가 일시적 직업이라고 여기면서도 무대 위에서 자긍심을 느끼고 무대 뒤에서 유사 가족을 이룬다. 사람들은 창의적 일과 단순노동을 쉽게 구분하지만 모든 노동은 유의미하고 의미있어야 한다. 나와 남에게 영향을 주어 변화를 일으키고 세계를 움직여 흔적을 남기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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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 힐
<돈 워리>는 20년 전 로빈 윌리엄스가 카툰 작가 존 캘러핸의 자서전 영화 판권을 사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초기부터 함께 시나리오를 개발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윌리엄스가 타계한 후 호아킨 피닉스를 캘러핸 역에 캐스팅해 젊은 시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더불어 캘러핸의 알코올중독 극복 과정에 무게가 실리고 중독 치유 모임의 스폰서였던 도니(조나 힐)의 비중이 커졌다. 도니는 우리가 익히 아는 조나 힐의 철없는 캐릭터들과 사뭇 다르다. 중독과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성숙한 인물이자, 지병으로 인해 내일이 없는 사람만의 쓸쓸한 냉철함도 갖고 있다. 부유하고 우아한 취향을 소유한 캐릭터인 도니는 블론드 장발에 실크와 캐시미어를 걸친다. 조나 힐에게 매우 생경한 의상과 분장이지만 묵직한 연기의 힘으로 웃음이 터지는 일은 없다. 조나 힐은 <돈 워리>의 현장을 경험한 직후 감독 데뷔작 <미드 90>을 연출해 호평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