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행>은 북한이탈주민 여성 10명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이자, 이들의 궤적을 강렬한 이미지적 체험으로 전달하는 임흥순 감독의 영상미술이다. 인터뷰와 픽션화된 장면, 퍼포먼스가 나란히 이어지는 구성은 날 선 현실과 아득한 꿈의 감각을 뒤섞으면서 이탈주민 여성들의 생을 미지의 여행처럼 묘사한다.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의 지원을 받아 안양의 삼성산, 안양천 등을 주무대로 삼은 <려행>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이야기, 사회에서 비주류로 취급받고 가시화되지 않았던 풍경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듯 깊은 새벽녘 어두컴컴한 숲의 이미지를 매혹적으로 표현했다. 처음엔 관객이 북한이탈주민의 삶을 엿보는 듯했던 영화는, 어느새 그들의 시선을 통해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재인식하는 계기로 탈바꿈한다. “우리의 거울로서의 북한이탈주민을 그리고 싶었다”는 임흥순 감독과 두명의 출연자 김미경, 이설미씨를 만났다.
-<려행>을 통해 10명의 북한이탈주민 여성들의 한국 생활을 접하게 된다. 처음 임흥순 감독은 어떤 경로로 출연자들과 만났나.
=임흥순_ 시작은 가수 김복주였다. <북한산>이라는 단편을 만든 적 있는데 북한에 있는 가족이나 일상적 이야기를 소소하게 늘어놓으면서 이른 새벽부터 산에 오르는 과정을 쭉 따라가는 영화다. 북한산 원효봉에 올라 임진강을 부르는 모습도 담았다. 이 컨셉을 확장한 것이 <려행>인데 10명 출연자 모두 각기 다른 경로로 만났다. 이설미씨는 리서치를 하는 가운데 하나통일원정대(남북한 청년 합창대.-편집자)의 공연을 직접 보러갔다가 섭외하게 됐다. 설미씨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곧장 눈에 띄었다. 김미경씨는 이전에도 다른 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 있던 분이라 APAP 기획팀을 통해 소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설미_ 타이밍이 잘 맞았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사실을 꽁꽁 숨기고 살았다. 새터민에게 주어지는 암묵적인 차별이 분명 존재한다고 느꼈고, 살려고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또 부당한 대우를 받기는 싫었다. 대학 졸업하고 첫 회사를 다닐 때까지 숨기고 살다가, 퇴사를 하고 나서 남북한 합창단에 참여했다. 그렇게 고향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면서 통일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하게 되고, 그리움도 커져갈 때에 마침 감독님의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 참여함으로써 나를 더 오픈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김미경_ <려행> 이전에 참여했던 미술 프로젝트는 내가 북한에서 살던 집을 그대로 재현해 소개하는 작업이었다. 어느 날 임흥순 감독이 연락와서 대본 같은 건 따로 없으니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편하게 하면 된다고 하더라. 당시에 시민단체에서 나 같은 북한이탈주민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 다큐멘터리가 공개되면 북한이탈주민의 생활에 대해 더 잘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임 감독님과 대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신뢰가 갔다. 같이 있는 사람에게 부담을 안 준다고 해야 할까, 워낙 편안하게 배려를 잘해주는 분이다.
-이탈주민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 저마다 성격, 성장환경, 직업 등이 판이하게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는 매우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메시지로도 환원된다. 감독은 고통과 트라우마가 뒤섞인 이야기를 듣고 가공하는 입장에서 윤리적으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을 테고, 출연진 입장에서는 개인사를 이야기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을 법하다. 감독과 출연자 각각의 입장에서 촬영의 경험을 들려준다면.
임흥순_ 덜어내야 할 것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다. 그건 지금까지 해온 많은 작업들에서도 비슷했다. 북한이탈주민 여성들과 대화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안타까운 지점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탈출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인신매매와 같은 문제들이 빈번하게 거론됐지만 편집 과정에서 반복적인 부분은 일부러 제외했다. 과거의 비극에 초점이 가기보다는 이들의 현재를, 지금의 삶을 말하는 작업이고 싶었다. 김미경씨가 <려행> 촬영 중에 한국 사람들이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해서는 수치스럽게 생각하면서 남북 분단의 현실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에 특히 공감했다. 이 고민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단순히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이슈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에 대한 책임이나 죄책감, 혹은 부끄러움 정도는 가지자,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다음으로 중요했던 부분은 같이 참여하는 출연자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출연자들의 프라이버시 등 실질적으로 생활에 끼칠 영향을 고려해 우리 영화는 극장 상영만 할 뿐, VOD 서비스로는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도 그런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이설미_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일 텐데 ‘나 정말 괜찮을까’ 하고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결심이 섰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부산에서 태어나든 전주에서 태어나든 자기 고향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엔 그저 정착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겁을 먹고 출신을 숨기다보니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져만 갔다. 나는 강원도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려행> 촬영과 동시에 지금은 남편이 된 과거의 남자친구에게 이 사실을 밝히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어제는 개봉을 앞두고 KBS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나와서 깜짝 놀라고 민망했다.
김미경_ 촬영하면서 북한이탈주민 중에도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이 만남 또한 감사할 일이구나 그렇게 느꼈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이 이탈주민이면서도 분단 현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1도 없었다’. (웃음) 내가 당사자성을 띠고 있기는 하나, 어떻게 보면 나 또한 그들을 대상화해서 보고 있던건 아니었나 싶다. 한 묶음으로 탈북자라고 불리는 게 싫기도 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작업 등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교만을 깨닫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동질감과 연민을 마주하게 됐다. 인권에 대해서도 더 고민하기 시작했다.
-출연자들이 직접 참여한 퍼포먼스 장면 중 숲속에 덩그러니 노란 풍선이 돌아다니는 이미지가 반복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교환일기>와 마찬가지로 세월호라는 사회적 트라우마가 감독의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북한이탈주민의 상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상처와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교류 지점이 있다고 봤나.
임흥순_ 그렇다. 그런데 노란 풍선을 처음부터 준비한 건 아니다. 산기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풍선을 만들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노란 풍선이 우연히 날아왔다. 사실 그땐 세월호 사건에 대해 어디 가서 입 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너무 고통스럽게 다가와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적도 없고, 세월호 관련 영화 같은 것은 아직도 못 본다. 그런데 그 노란 풍선을 보고 김미경씨가 먼저 세월호가 떠오른다고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걸 영화에 자연스럽게 썼다. 노란색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회복이라는 상징적인 색의 이미지가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김미경_ 감독님은 노란 풍선을 보고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으셨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당시 아들이 중학교에 갓 들어갔었기 때문에 바다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자식을 찾는 부모의 마음에 이입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감독님의 의도와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또 출연자 중 나와 같이 산을 올랐던 한영란 언니는 북한에서의 생활이나 탈출 과정 중에 너무나 많은 아픔을 겪은 분이었기에 감정적으로 연결 고리가 생겼다.
-<위로공단>에서 한국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를 다루었듯, <려행>에서도 북한이탈주민 중 여성 인물들에 집중한 이유가 있었나. 전체 출연진이 모여서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임흥순_ 남성들은 사회 안에서 실질적으로 권력에 가깝기 때문에 그 시선 또한 수직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여성들은 환경적으로 주변부에 놓인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더 넓고 수평적인 시선을 갖게 되고. 그런 사회적 요인이나 남녀의 타고난 성향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언제나 여성들이 가진 넓고 유연한 태도에 대한 동경 혹은 존경심 같은 것이 있다. 그 점을 나도 배우고 싶다. 금천 지역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하면서 한 4년 정도 주부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깨달은 것도 많다. 남편이 바깥에서 일한다면 그들은 늘 집에서 일하는 셈이어서 지역 현실을 훨씬 더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분들과 오래 함께하면서 내 미술에 대한 희망, 대안을 발견했다. 이런 점들은 내 성장환경과도 관련이 있을 텐데, 나는 언제나 여성들과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느꼈고, 마음이 편했다. 20대에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내 특성을 무시하고 아닌 척하기도 했는데, 나이 들면서 결국 나답게 돌아온 거다. <려행>의 경우 내가 보기엔 북한이탈주민 여성들이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 평화나 통일의 징후로서 이분들을 바라볼 수 있다. 두 체제를 모두 경험했고, 한국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지혜롭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지 않나. 여성들과 연대하면서 부조리든 불편함이든 비상식적인 일이든, 지금 현실과 관련한 대화의 장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싶다.
-한복을 입고 산에 올라 퍼포먼스를 하거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은 비전문 배우 입장에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김미경_ 북한에서 지역 아나운서로 일한 경력이 있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한국에 와서는 절대 연기 같은 걸 안 할 줄 알았는데 비슷한 일을 또 하고 있으니 신기했다.
이설미_ 나는 북한 대학생들이 입는 한복을 입고 대학생 이윤서씨와 함께 산을 올랐다. 북한에서 대학은 정말 부유한 집의 자식만 갈 수 있고, 나같은 깡촌 출신은 꿈도 못 꾼다. 특히 아직까지 ‘여자들이 대학 가서 뭐해’, 하는 인식도 강하다. 그 대학생 복장을 너무나 입어보고 싶었는데 영화를 통해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임흥순_ 사실 감독으로서 가장 걱정했던 지점은 10명의 출연자가 저마다 성격도 강하고 개성이 세서 전부 모였을 때 갈등이나 마찰은 없을까, 하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고향을 향한 동질감이 있으니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마술같이 조율이 이뤄졌다. 무대 경험이 풍부한 김복주씨와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한 이향씨가 리드를 하니까 다른 분들이 잘 따라와줬다. 계획적으로 준비하기보다 이렇게 정해놓지 않고 촬영하는 방식에서 생기는 불안감이 있는데, 그게 곧 기대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또 비전문 배우라 할지라도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김복주씨가 자기 언니와 산을 오르는 장면을 찍을 때, 정상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제를 지내고 싶다기에 그렇게라도 북에 계신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을 해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동안 창구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자기표현의 도구로서 영화 매체가 도움을 주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