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22일 본지 1148호를 통해 알려진 영화 제작자 안동규의 강제추행 사건 공판 결과가 나왔다. 7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6단독(김용찬 판사)은 안동규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160시간의 사회봉사와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1심 내용이 확정됐다.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안동규는 피고인 소유의 승용차 안에서 피해자에게 “근육이 많이 뭉친 것 같다”며 손으로 피해자의 어깨를 만지고 피해자의 상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피해자의 속옷 끈을 만지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강제추행했다. <씨네21>이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및 변호인은 “피해자의 머리, 목, 어깨 부위를 안마하였을 뿐 이른바 기습추행의 방식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을 행사하여 어깨를 주무르거나 피해자의 상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피해자의 속옷 끈을 만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해자 등의 진술은 그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또한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아니된다”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비추어볼 때, 피해자의 진술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수사기관과 이 사건 법정에서 범행 당시의 상황, 추행 과정, 그에 대한 자신의 대응, 당시에 느낀 감정 등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는 점, 피해자가 진술한 내용이 물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 피해자가 <씨네21>에 제보한 내용이 기사화된 후 안동규가 기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는 점,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영화판에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잘못 건드리면 영화판에 더이상 발을 디디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는 진술 내용) 등에 비추어보면 사건 즉시 고소하지 않은 이유가 납득이 된다는 점 등을 인정했다. 또한 범행 시기 및 장소에 대한 일부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배척하지 않은 이유도 언급됐다. 이는 범행일 이후 피해자의 고소 시점 및 법정 진술까지 꽤 오랜 시간이 경과했음을 고려할 때 시간 경과에 따른 기억력의 한계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피고인 역시 자신의 차량에서 피해자의 어깨 등을 안마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한 것이 그 근거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인은 영화 제작자로서 영화 촬영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인 피해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오히려 위와 같은 지위를 이용하여 사회 초년병인 피해자에 대하여 강제추행 범행을 저질렀고 그 추행의 정도도 가볍지 않아 그 죄질이 좋지 않은 점,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가 적지 않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피고인이 보인 태도로 인하여 수사 및 재판 과정 중에도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 그럼에도 피고인은 수사기관 이래로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의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다만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등 이 사건 기록 및 변론에 나타난 모든 양형의 조건을 참작하여 형을 정했다. 안동규 영화 제작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2조 제1항의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되어 같은 법 제43조에 따라 관계기관의 장에게 신상정보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 다만 피고인의 나이, 직업, 재범 위험성, 이 사건 범행의 종류, 동기, 범행 과정, 위 각 명령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와 예상되는 부작용, 그로 인해 달성할 수 있는 등록대상 성범죄의 예방 및 피해자 보호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피고인의 신상정보를 공개·고지하거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취업을 제한하는 명령은 선고하지 않았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한유림 전문위원은 “영화계 내 성폭력 피해자가 미투 운동에 참여해 언론에 보도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첫 사례”라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언급했다. 또한 영화계 내에서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직급 차이가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얻어낸 의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든든에서 소송 과정 전체를 지원해 피해자가 안전하게 보호받으면서 이 건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번 결과를 보고 다른 피해자들이 좀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이번 판결에서 <씨네21>의 기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언론사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안전하게 공론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인권위원장을 거쳐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 중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정춘숙 의원도 이번 판결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의 경우 성폭력피해자보호법의 기존 법과 제도 시스템 안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가해자들은 무고와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가 부지기수였다”는 점을 먼저 지적했다. “이번 <씨네21>이 취재한 해당 사건의 판결을 통해, 향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가 한발 나아갈 기회를 만들었다고 본다. 더 많은 사건들이 사회에 드러나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세상에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통해 제도적 미비점을 바꿔나갈 수 있는 단초가 되어야 한다. 더 많은 말하기로 연대하고, 바꿔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