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삶의 마지막 풍경, <흐르는 강물처럼>
2002-05-02

‘내 인생의 영화’라….

<흐르는 강물처럼>… 그리고 <월하의 공동묘지>?

<흐르는 강물처럼>하나만 꼽으면 무난한 선택이 되겠는데 아무래도 내 영혼에 가해진 충격의 강도로 따져보면 <월하의 공동묘지>를 ‘공동수상’으로 집어넣어야 될 것도 같다.

1. <월하의 공동묘지>

소도시의 초등학교 1학년생 김병욱은 어느 여름날 밤 멋모르고 쫄래쫄래 엄마 손을 잡고 시내 극장엘 따라가 이 영화를 본다. 영화 중반까지의 순애보적인 드라마에 또록한 눈망울로 화면을 응시하던 그는 갑자기 착한 여주인공이 죽더니 웬걸 귀신이 돼서 나타나면서부터 ‘에메?’ 하며 적이 당황하다 이윽고 그 귀신의, 피가 질펀한 복수극이 시작되고 무덤이 쪼개지는 등 감당키 어려운 장면들을 마주하며 그 여름밤이 온통 몸서리치는 악몽이 된다.

그날 밤 이후 그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다. 밤마다 불을 끄고 누우면 미치고 환장하게시리 자꾸만 상상 속에서 자기 자신이 마루문을 열고 밖의 깜깜한 어둠 속으로 귀신을 만나러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그의 집에선 그가 잠들기 전까지 절대 불을 끄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한동안 계속됐고…. 비상한 기억력과 영민함으로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차츰 강박증으로 인해 지능발달이 더뎌지며 마침내 길에서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보통의 평범한 어린이가 되고 만다.

이야기가 약간 곁길로 새지만 한편 병욱의 동생 병철도 어느 날 어디서 무서운 이야기 하나를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아(충격을 잘 받는 심약한 형제들이라) 한동안 아주 힘들어한다.

어느 봄날 오후 마루에 나란히 누운 두 형제의 대화.

병철: 와∼ 새벽에 얼핏 깼다가 옴∼짝달싹도 못하고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병욱: 왜?

병철: 벽장에 귀신 있나 싶어서…. 혹시 내가 꿈쩍하면 “너! 안 자고 있었구나!!” 그러면서 벽장문 열고 나올 것 같더라고.

병욱: 맞아. 그럴 때 있어.

병철: 코 가려운데 긁지도 못하고 있다가 형 몸부림칠 때 그때 틈타서 얼른 긁었어.

병욱: 어.

두 형제 어린 날의 한심한 삽화다.

2. <흐르는 강물처럼>

유년기의 강박에서 벗어나며 이젠 좀 쾌활하고 즐거운 청소년기를 보내는가 싶었는데 난 좋은 길을 놔두고 또 음울한 사변(思辨)의 구불구불한 소로를 택한다. 늘 어울려 지내던 형과 누나가 모두 서울로 유학을 떠나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나는 강가에 나가 방죽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어떤 친구의 표현처럼 ‘늦은 오후처럼 나른하게 슬픈’ 글을 가끔씩 끼적이며 보냈다. 이 시기의 흔한 감상(感傷)으로 시작했지만 내 경우에는 흘러가버린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커 어린 나이에 ‘슬픈 회고’에 너무 빠졌고 지금도 ‘회고취미’는 내 가장 소중한 취미 중 하나가 됐다. 그래서 영화도 좋은 회고가 있는 영화에 난 대체로 허물어진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그랬고, 마지막 제물 낚시 장면이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가슴을 서늘하게 한 <흐르는 강물처럼>은 그래서 늘 ‘내 인생의 영화’다.

“이해는 못했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강의 소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든다. 그리고 강이 그것을 통해 흐른다….”

고향 강가 방죽에 앉은 내 삶의 마지막 풍경을 그릴 때마다 난 늘 이 낮은 읊조림을 생각한다.

글: 김병욱/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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