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히어로물을 즐기는 지금, DC 코믹스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DC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더 나아가 자신들의 기존 히어로물과 차별화되는 작품을 내놓기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등장한 시리즈가 바로 <둠 패트롤>과 <스웜프 씽>이다. <둠 패트롤>이 5명의 괴짜 슈퍼히어로로 이뤄진 그룹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통제하면서 히어로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다룬다면, <스웜프 씽>은 늪지에서 태어난 괴물을 주인공 삼아 초자연적 현상이 계속되는 한 마을의 이야기를 호러 장르 문법을 활용해 펼쳐낸다. 흥미롭게도 두 시리즈는 모두 눈앞의 적뿐만 아니라 자신과 싸워야 하는 다크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기존 히어로물과 차별화된 매력을 선보인다. 이처럼 새로운 히어로물을 위한 DC 코믹스의 시도는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 2월과 5월에 DC 코믹스의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인 ‘DC 유니버스’를 통해 공개된 두 시리즈는 평단과 DC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 호평과 함께 방영을 마무리했다. 두 시리즈는 9월 4일(수)과 11일(수)에 캐치온2를 통해 방송되며, 이후 캐치온앱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다섯 명의 빌런 슈퍼히어로 <둠 패트롤>
지금까지 DC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영화나 시리즈는 다소 무겁고 진지한 색채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DC 유니버스를 통해 올해 공개된 시리즈 <둠 패트롤>은 다르다. 다섯 명의 빌런 슈퍼히어로들과 함께하는 이 시리즈는 인물들의 과거와 그들이 가진 고통, 슬픔을 이야기하면서도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이들의 행보를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톤을 잃지 않고 그려낸다. 유명한 레이서였던 ‘로봇맨’ 클리프 스틸(브렌든 프레이저)은 아내와 다툼으로 심란했던 와중에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는다. 낯선 곳에서 깨어난 그를 맞이하는 것은 ‘치프’ 나일스 콜더 박사(티모시 달튼). 클리프는 자신이 사고로 신체를 잃었으며, 나일스 박사가 자신의 뇌를 기계 몸에 이식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클리프는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자신의 새로운 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훈련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머물고 있는 둠 저택의 이상한 인물들과 만난다. 비행 테스트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와 접촉하면서 변형된 신체를 늘 붕대로 가리고 다니는 ‘네거티브맨’ 래리 트레이너(맷 보머), 한때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였지만 아프리카 촬영 중 사고를 당해 신체가 녹아버리는 증상을 갖게 된 ‘엘라스티 걸’ 리타 파(에이프릴 볼비), 64개의 인격을 가진 ‘크레이지 제인’(다이앤 게레로)은 클리프와 마찬가지로 사고를 겪은 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힘을 갖게 된 인물들이다. 스스로를 끔찍하게 여길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이들은 모두 나일스의 보호 아래 둠 저택에서 생활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일스가 다른 업무로 저택을 비운 사이 이들은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몰래 외출을 감행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통제하지 못한 탓에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이들의 외출은 단순한 소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을 노리고 있던 정체불명의 빌런 ‘미스터 노바디’(앨런 튜딕)가 등장하면서 마을과 나일스 박사가 다른 공간으로 사라져버린 것. 4명의 능력자들은 마을과 나일스 박사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이보그’ 빅터 스톤(조이반 웨이드)과 함께 그들에게 닥친 위협에 맞서 싸우면서 히어로로 거듭난다.
<둠 패트롤>의 가장 큰 매력은 5명의 인물이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전형적인 히어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통제되지 않는 이들의 기행은 각종 사고를 불러일으키며, 이 때문에 이들은 히어로라기보다는 차라리 악동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받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종종 마블의 <엑스맨>(2000)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은 자신의 새로운 육체와 정체성을 둘러싸고 고뇌하며, 이는 단순히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고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저스티스 리그’ 멤버로 영화에 등장한 적 있는 사이보그가 이 시리즈에 등장한다는 것. 사이보그는 이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히어로로서 활약하고 있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 역시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하며 성장해나간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티모시 달튼이 나일스 박사를 연기하고, 과거 <미이라> 시리즈의 주역이었던 브렌든 프레이저가 복귀해 로봇맨을 연기한다. 또한 미국 드라마 <화이트칼라>의 맷보머, 넷플릭스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다이앤 게레로가 네거티브맨과 크레이지 제인을 연기한다. 영화와 시리즈를 통해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이들은 괴짜 히어로 집단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면서 시리즈에 재미를 더한다.
재기발랄한 연출도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 빠르고 경쾌한 템포를 유지하는 <둠 패트롤>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인물들의 무거운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곳곳에 유머를 효과적으로 배치해 처지지 않고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든다. 코믹스를 떠올리게 하는 연출도 적재적소에 흥미롭게 활용된다. 내레이터와 극중 인물의 경계를 오가고, ‘제4의 벽’이라고 부르는 관객과 캐릭터 사이의 경계를 깨기도 하는 빌런 미스터 노바디 역시 이러한 시리즈의 분위기에 일조한다. 캐릭터와 배우, 연출의 매력에 힘입어 <둠 패트롤>은 DC 히어로물의 색다른 매력을 선보이면서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공포의 세계 속 다크 히어로 <스웜프 씽>
DC 코믹스에서 가장 유명한 다크 히어로 중 하나가 드라마로 찾아왔다. ‘<컨저링> 유니버스’로 이름을 날린 호러 명인이자 <아쿠아맨>(2018)과 함께 DC의 희망으로 떠오른 제임스 완이 제작에 참여하고, <언더월드>(2003)의 감독 렌 와이즈먼이 연출에 참여해 탄생시킨 <스웜프 씽>은 DC 코믹스의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 DC 유니버스의 세 번째 TV시리즈다. DC 코믹스의 다크 히어로 그룹 ‘저스티스 리그 다크’의 멤버이기도 한 늪지 괴물 스웜프 씽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스웜프 씽>은 호러 장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히어로물을 선보인다.
질병관리본부(CDC) 소속의 애비 아케인(크리스털 리드)은 루이지애나의 작은마을 마라이스에 퍼진 전염병의 원인 조사와 치료를 지시받고 마을로 향한다.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마라이스에서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전염병을 치료하는 데 고전하는 동시에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와도 마주한다. 전염병의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빠르게 성장하는 식물이 인간을 뒤덮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마을에 인접한 늪지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상현상을 조사하고 있던 생물학자 알렉 홀랜드(앤디 빈)와 만난다. 함께 병의 원인을 조사하게 된 애비와 알렉은 자신의 과거를 서로에게 털어놓으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하지만 마을에 퍼지고 있는 전염병이 늪지대의 이상현상과 관련 있으며, 이 현상 뒤에 마을의 누군가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알렉은 그를 막으려는 세력에 살해 당한다. 알렉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애비는 전염병의 치료 방법을 찾고, 알렉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마을 유지인 에이버리 선더랜드(윌 패튼)의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편 알렉은 죽음에 가까워진 순간 늪지대의 식물들에 뒤덮이면서 기이한 형상과 능력을 가진 괴물 스웜프씽(데릭 미어스)으로 변한다. 그는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곧 악의 세력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늪지대에 나간 배를 정체불명의 존재가 습격하는 순간을 섬뜩하게 보여준 오프닝에서 알 수 있듯이 <스웜프 씽>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호러다. 시리즈 전반에 드러나는 괴물영화의 흔적은 물론이고 추격 장면에서는 슬래셔 장르가, 죽은 이와 접촉하려는 인물에게는 오컬트 장르의 영향이 엿보이는 등 <스웜프 씽>은 다양한 호러의 세부 장르를 경유한다. 신체 훼손이나 폭력 장면의 묘사 역시 잔혹한 편. 제작자인 제임스 완도 “우리는 이 이야기가 가진 고딕 호러의 면모를 더 파고들고 싶었다”(<CBR>)고 말하면서 <스웜프 씽>의 방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제임스 완과 렌 와이즈먼을 비롯해 호러 장르에서 경험을 쌓아온 제작진의 영향력을 분명히 드러나는 장면들은 <스웜프 씽>에 다른 히어로물과 차별되는 특유의 기이하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주인공인 스웜프 씽 캐릭터도 이러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예기치 못한 계기를 통해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고, 역경과 고뇌를 거치면서 싸움에 나서게 된다는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다른 히어로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온몸이 늪지대의 식물로 뒤덮인 괴물인 스웜프 씽은 전형적인 히어로와는 조금 다른 존재다. 그는 멋지고 화려하다기보다 기괴하고 끔찍한 외양을 갖췄으며, 자신의 신체를 재생시키고 주변의 식물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시리즈 안에서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특히 이러한 스웜프 씽의 모습은 초반 에피소드에서 제시한 알렉의 엉뚱하지만 선한 캐릭터와 대비되면서 더 극적으로 제시된다. 인간적인 과거의 자신과 때로는 잔혹한 면모를 보이는 괴물인 현재의 자신 사이에서 겪는 스웜프 씽의 고뇌와 고통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배우들의 존재 역시 <스웜프 씽>이 가진 큰 힘이다. 그중에서도 과거의 알렉과 지금의 스웜프 씽을 각각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것도 흥미로운 선택. <13일의 금요일>(2009)에서 살인마 제이슨을 연기했던 데릭 미어스의 열연은 스웜프 씽이라는 독특한 다크 히어로를 탄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호러라는 기반을 통해 다크 히어로의 면모를 훌륭하게 그려낸 <스웜프 씽>은 DC 히어로물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미 이 시리즈의 매력에 빠진 수많은 팬들은 다음 시즌의 제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