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김영우·이승민 프로그래머, 조영란 인더스트리 프로듀서, 박진형 사무국장,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찾는 관객의 폭을 넓혀 나가기"
2019-09-11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박진형 사무국장, 이승민 프로그래머, 조영란 인더스트리 퓨로듀서, 김영우 프로그래머(왼쪽부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DMZ영화제)가 새로운 10년을 맞는다. 지난해부터 홍형숙 감독이 DMZ영화제의 새 집행위원장으로 온 이래 대대적인 변혁을 겪은 영화제는 프로그래머부터 사무국장까지, 영화제를 이끄는 핵심 인력들을 새로운 얼굴로 채웠다. 함께 일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김영우·이승민 프로그래머, 조영란 인더스트리 프로듀서, 박진형 사무국장은 10년도 넘게 얼굴을 봐온 사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끈끈한 신뢰를 안고 영화제 개막 전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영화제 프로그램을 세밀히 살펴보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다큐멘터리의 역량이 강화되고 신설된 산업 프로그램 ‘DMZ 인더스트리’의 촘촘한 세팅이 돋보인다. 개막을 앞두고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개막작은 박소현 감독의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로 선정됐다.

=이승민_지난해 DMZ영화제가 제작을 지원했던 작품이다. 20대 청년들이 철길을 따라 목포역에서 서울역,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까지 갔다온 긴 여정을 담았다. 여행기이면서, 춤을 익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청년에게 평화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는 것을 너무 무겁거나 계몽적이지 않게,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다룬다. 박소현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고, 감독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안학교 출신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이 길어 밀착도가 남다르다. 카메라가 누구 하나를 주목하지 않고 모두가 눈에 들어오게 만드는 작품이다.

-지난해부터 홍형숙 감독이 집행위원장으로 왔다. 홍형숙 집행위원장하에 움직이는 DMZ영화제가 이전과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김영우_현장에 있는 창작자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배경을 가진집행위원장과는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DMZ영화제가 힘든 과정을 거친 후 다시 재정비되는 과정에서, 현장에 있는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님들이 ‘미래비전TF’를 꾸려서 의견을 많이 모아주셨다. 홍형숙 집행위원장은 그 안에서 같이 활동하며 TF에서 나온 이야기를 영화제 운영과 프로그램 등 모든 측면에 반영한다는데 책임감을 가졌다. 영화제에 굉장히 좋은 가이드 역할을 했다.

이승민_조직의 구조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DMZ영화제 사무국 체제 안에 프로그래머가 포함돼 있었다면, 올해는 프로그래머의 독립성을 확실히 보장한다. 예전에는 섹션을 바꿀 때 여러 조직을 설득해야 했는데 이제는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박진형. 서울환경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박진형_홍형숙 집행위원장은 굉장히 꼼꼼하고 세밀한 분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영화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구상한 바가 있더라. 마차를 이끌어가는 수장으로서 굉장한 에너지를 갖고 있고,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새로 온 프로그래머의 얼굴을 보면, 역시 아시아영화의 면면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김영우_어딜 가든 국제 영화제들은 비슷비슷한 고민을 한다. 국제 영화제를 왜 한국에서 여는가, 그것은 결국 자국영화를 위하는 것이다. 완성된 결과물을 트는 ‘쇼케이스’의 역할은 시네마테크나 지방자치단체도 할 수 있다. 산업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해주고,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게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도 영화제에 필요하다. 그리고 경쟁부문 섹션을 아시아에 집중한 것은 이런 이유가 있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는 제작비도 높고, 준비 시간도 상당하다. 그런 작품을 경쟁부문에서 상영하는 것은 굳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니 쇼케이스쪽으로 분류하는 거다. 2019년 아시아지역 다큐멘터리 경향과 주요 작가들을 한 군데에서 볼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나름의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아시아 전체를 둘러봐도 다큐멘터리영화제는 몇개 없다. 중국은 검열 문제로 한계가 있고, 일본은 갈수록 폐쇄적이 되어간다. 유럽이나 북미 등에서 활발하게 운영되는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 작품에 관심이 있을 때,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할 파트너가 필요하다. 한국 영화인, 그리고 아시아 영화인들이 모이는 플랫폼으로 DMZ영화제가 성장한다면 유럽 영화인들도 자연스럽게 한국을 찾을 것이다.

-관객 유치를 위해 보다 대중적인 작품을 가져와야 한다는 고민은 없었나.

박진형_우리는 영화제에 오는 관객에게 계속 가이드를 줘야 한다. 흔히들 얘기하는 대중성은 떨어지더라도 다큐멘터리영화제가 지녀야 할 공공성을 고려하면, 사회적 이슈에 말을 건네고 질문하는 작품을 관객과 소통시켜야 한다. 다큐멘터리영화제는 어떤 영화제보다 뚝심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다큐멘터리 시장이 발달한 유럽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DMZ영화제가 가져야 할 가장 큰 원동력은 믿음을 갖고 쉬지 않고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1년 내내 경기도 전 지역을 돌며 정기 상영회를 열고, 생애주기별로 다큐멘터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역시 다큐멘터리와 관객의 다리를 잇고자 하는 영화제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김영우_실험을 해보는 게 필요하다. 대중적인 영화를 많이 튼다고 관객이 더 많이 올까? 좀더 올 수는 있어도, 다음해에 그들은 비슷한 영화를 찾을거다.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게 DMZ영화제만의 매력이라는 것을 깨닫는 관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영화제의 성패가 달려 있다.

-프로그래머로 오래 일하던 박진형 사무국장이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됐다.

김영우_보통 영화제는 영화제를 운영하는 사무국과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파트가 나뉘고 한쪽에서 집중적으로 커리어를 쌓는데, 아주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서로의 업무를 모르지는 않지만 실제 해보는 것은 다르지 않나. 그래서 프로그래머를 오래한 사람이 사무국을 운영하며 생기는 장단점이 확실하다. 솔직히 우린 너무 피곤하다. (일동 폭소) 어떤 일이 안 됐을 때 당신이 잘 모르는 내용이 있다며 넘어가야 하는데, 박진형 사무국장에게는 그게 안 먹히니까.

박진형_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이거다. “장난해? 내가 다 아는데. (웃음)” 프로그래머는 주요 사업을 무엇으로 가져갈 것인지, 예산부터 굉장히 많은 일에 개입한다. 그런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영화제 전반적인 운영에 대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래머 일을 했던 사람이 운영을 맡게 됐을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 우연히 사무국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마음 맞는 사람들과 팀을 맞춰 가보면 재미있는 축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좋은 한국 다큐멘터리가 많이 제작된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이번 DMZ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서도 긍정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나.

이승민. 영화평론가이자 다큐멘터리 연구가로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DMZ-POV’와 한국영화 섹션을 담당한다.

이승민_확실히 다큐멘터리가 많이 제작되기도 하고, 그중 좋은 작품이 정말 많다. 만나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예전 작품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화했다면, 요즘은 한 단계를 더 거쳐 성찰한 결과물을 어떻게 영화적 언어로 풀어낼지 고민한 작품들이 많아졌다. 작품을 틀 수 있는 공간이 굉장히 한정적이기 때문에 DMZ영화제가 이들을 집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들이 세상에 나아갈 수 있는 첫 토대가 영화제가 됐으면 한다. 또한 이 작품들이 해외로 나갔을 때 너무 로컬한 이야기라고 치부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중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 과거엔 많은 부분에서 비평이 관객과 괴리되어 있었지만, 비평의 진짜 역할은 관객의 최전선에서 사람들과 영화를 교류시키는 것이다. 그 순수한 역할을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하기 위해 ‘DMZ-POV: 다큐멘터리를 말하다’ 섹션을 독자적으로 구성했다. 영화를 보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형식에서 더 나아가, 그간 한국 다큐멘터리의 동향과 흐름을 짚고 쟁점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드려는 시도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이해 비평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특별전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지형도: 한국 다큐멘터리 50개의 시선’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82년부터 올해까지 제작된 모든 한국 다큐멘터리를 대상으로 다큐멘터리 관련 비평과 기사를 쓴 50인의 비평가와 기자들이 관객에게 추천하는 한국 다큐멘터리 55편을 선정했다.

이승민_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주요 작품을 선정한 리스트를 보면 다큐멘터리는 많지 않다. 다른 곳에서 꼽는 한국영화 100선에서 다큐멘터리는 주류가 아니다. 그에 대한 아쉬움이 한축이라면, 또 다른 축은 한국 다큐멘터리를 한데 모아 관객과 오롯이 만나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 다큐멘터리를 접하는 분들을 위한 ‘입문서’다. 관객의 최전선에 있는 비평가들에게 소개하고픈 작품 선정을 요청했고, ‘50개의 시선’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10편을 먼저 틀고, 선정된 작품을 갖고 다른 독립영화 전용관을 돌며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역사, 여성 등 주제를 나누거나 시대별로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카이빙을 해서 관객과 만나고, 해외로도 나갈 수 있다. 지금 책 작업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

-‘DMZ 비전’이 기존 섹션 이름에 ‘인터-코리아’를 추가해 남북한을 집중 조명한다.

이승민_북한 작품을 직접 가져오는 것은 아무래도 변수가 많다. 외교·정치 상황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에게 낯선 북한을 다루는 다양한 다큐멘터리들을 준비했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우리와 너무 닮은 사람들을 너무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런 작품을 모아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보는 기획이다.

김영우. 서울환경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 등을 역임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한국을 제외한 해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맡았다.

김영우_북한영화를 보자는 것 자체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다 했다. 요즘의 고민은 ‘교류’에 더 가깝다. 평양에 가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가, 남북한 영화인들이 함께 공동제작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가 하는 실질적인 단계를 지향하는 거다. 그리고 북한에 들어가 영화를 찍는다면,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가 먼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문이 열리기만 하면 북한에서 작업하고 싶어 하는 영화인들이 해외에도 아주 많다.

-이번 영화제의 화두는 ‘NEXT’(다음)와 ‘비상’이라고 기자회견장에서 밝혔다. 그 핵심에 ‘DMZ 인더스트리’가 있는 듯한데.

박진형_DMZ영화제가 앞으로 나아갈 비전에 있어 작품과 산업의 연계가 무척 중요하다. 산업적, 문화적, 사회적 영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영화제 운영에 있어 필수적이다. 단순히 제작 지원금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기획·개발 단계에서부터 제작, 투자유치, 후반작업, 배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다양한 도움을 준다. 그저께는 감독들이 본 행사 때 피칭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사전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조영란 프로듀서가 다년간 관련 사업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많은 도움이 됐다. 이번 워크숍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조영란_홍형숙 집행위원장이 가장 고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제는 10년 동안 어느 정도 궤도에 안착했지만,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주었는가 말이다. 1회 때부터 ‘DMZ DOCS 펀드’라는 제작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이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는가에 대해 미래비전TF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단계별로 필요한 부분을 도와줄 수 있는 세밀한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다. 투자나 기획, 배급 관련된 부문에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고들 한다. ‘DMZ 인더스트리’를 통해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반드시 오고 싶은 자리로 키우자는 게 목표다. 기획·개발하는 분들에게는 제대로 된 조사 작업부터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고. 제작 단계에 있는 프로젝트에는 제작비를 지원하고, 후반작업 중인 창작자에게는 색보정이나 사운드 믹싱을 도와주는 거다. 완성된 작품은 극장 개봉이나 다른 플랫폼과의 연계를 돕는 프로그램을 짰다. 창작자들이 자기 작품을 능숙하게 셀링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곧 있을 피칭 프로그램에 대비해 준비를 잘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한 거다. 피칭 이후에도 일대일 미팅을 주선해 실질적인 비즈니스 기회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참여한 감독님들이 “너무 내 작품에만 매몰돼서 다른 작품이 내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사려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을 가장 많이했다. ‘다큐 메이트’라는 멘토들을 불러 소개 글을 쓰고 트레일러를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게끔 했다. 정말 오랜 세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감독님도 피칭 경험이 없으셔서, 다큐 메이트들이 내준 숙제를 성실하게 수행해 피드백받은 대로 트레일러를 다시 만들어오기도 했다. 젊은 친구들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지만 기성 세대 감독들에게도 필요하고, 이런 과정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됐다

-창작자들은 역시 관객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유통·배급에 대한 고민이 특히 깊을 듯하다.

조영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 마운틴픽쳐스 해외사업팀장을 거쳐 올해 시작한 산업 프로그램 DMZ 인더스트리의 프로듀서가 됐다.

조영란_전통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나는 방식은 극장 혹은 TV 방송이었다. 요즘엔 OTT 플랫폼이나 뉴미디어쪽을 창작자들도 많이 선호한다. 그쪽에서 다큐멘터리를 편성하거나 구매 권한이 있는 분들을 최대한 많이 모시려고 한다.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큐멘터리 시리즈 총괄 담당자나 중국 텐센트 및 아이치 같은 플랫폼 관계자들도 온다. 사실 영화제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것일 뿐, 창작자들이 적극적으로 작품 홍보도 하고 만나는 게 중요한데, 캐주얼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도 최대한 마련해보려고 한다. ‘매치 메이커’라는 전문가를 영입해 도대체 누굴 만나서 미팅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분들도 도와드린다.

-장기적으로 DMZ의 타깃층을 어떻게 보고 있나.

박진형_예전에 일했던 장르영화제는 20대 초중반이라는 타깃층이 분명히 있었다. 다른 영화제도 아트하우스영화의 가장 큰 소구층을 20대 초중반으로 본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그런 게 없다.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만 가봐도 모든 연령층이 다 있다. 전 연령층과 소통이 되는 장르로 나아가야 관객의 저변 확대가 가능해지고, 그게 맞는 방향이다. 다큐멘터리는 지루하고 어렵다는 진입 장벽을 넘어서면 오히려 모든 취향을 커버할 수 있는 장르다. 음악·스포츠·사회·정치 그리고 어떤 미학적 접근까지 모두 어우러진다. DMZ영화제가 생애주기별로 교육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영우_동의한다. 다큐멘터리의 확장성은 이미 충분히 넓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TV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접한다. 한없이 대중적이면서 한없이 어려운 장르인데, 관객을 어떻게 오게 만들 것인가가 관건이다. 개인적으로 그 말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넌 예능을 다큐로 보니?” (웃음) 너무 진지하다며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거 아닌가. 결코 쉽지 않은 작품들을 상영하는 IDFA를 찾는 관객이 매해 약 20만명이다. 이것을 해내기까지 복합적인 성공 요인이 있었으니, 우리도 그 길을 찾아야 한다. 더불어 경기도 지역 주민과의 관계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한 영화제 중 성공한 곳을 본 적이 없다. 국가 주도로 강제 이식된 형태의 영화제는 생명력이 빨리 끝난다. 영화제가 지역 단체 및 기관, 주민들과 결합하고, 더 넓게는 한국영화계와 함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조영란_어렸을 때부터 다큐멘터리가 익숙해져야 나이가 들면서 계속 이 장르를 볼 수 있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20대 초중반인데, 지루하고 낯설게 느껴졌던 장르가 알고 보니 재미있다고 한다. 제대로 접하지 못해서 멀리할 뿐이지, 연령대별로 편하게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친숙해질 수 있다.

박진형_극영화든 뭐든 던지는 이슈에 에너제틱하게 반응하는 것은 보통 젊은 관객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40~50대 관객도 아주 열정적으로 반응한다. 사적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하게 만드는 장르인 것이다. 삶과 연계되어 쉽게 이입할 수 있고, 어떤 의견을 내기에 아주 직접적이다. 명목상 중장기적으로 보는 타깃층이 전 연령층이라는게 아니라, 실제가 그렇다.

이승민_난 다큐멘터리가 정말 재미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한번 접촉해서 보고 나면 재밌는데, 그러기까지 갭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다큐멘터리에는 진심이 있고, 감독을 만나서 얘기해보면 작품에서 느껴진 결이 90% 이상 그 사람에게도 반영돼 있다.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진정성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힐링도, 투사도 될 수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나의 숙제이기도, 영화제의 숙제이기도 하다.

●내가 꼽는 올해의 추천작

박진형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한 어리사 프랭클린에 대한 다큐멘터리 <어메이징 그레이스>. 최근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던 휘트니 휴스턴이나 비욘세의 대모다. 요즘 나오는 인물다큐멘터리를 보면 그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결들을 모두 포착하는 재미가 있더라. 어리사 프랭클린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면서 솔음악의 대모이고, 미국의 팝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60년대의 사회적 맥락도 영화에 담겨 있다.

이승민 한국 다큐멘터리 <사랑폭탄>. 어떤 여성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주는데, 이 사람의 인생에서 사랑이나 결혼은 완전히 ‘폭탄’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우리네 여성의 삶과 연결된다. 영화제에 소개된 후 어떤 방식으로든 담론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김영우 <사마를 위하여>. 이번 칸국제영화제에서도 수상했고, 올해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아랍의 봄’이 일어난 시리아 알레포 지역의 젊은 여성 저널리스트 이야기다. 이 안에서 결혼하고 딸까지 낳게 되는데, 그 딸의 이름이 ‘사마’다. 자식을 생각하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게 맞지만 그는 조국을 지키겠다며 알레포에 남는다. <사마를 위하여>는 딸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이자, 조국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라 할 수 있다.

조영란 우선 DMZ가 제작 지원한 개막작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감사하게도 너무 좋은 작품이 나왔다. 그리고 <The Biggest Little Farm>은 가족 단위로 보기에 아주 좋을 대중성 있는 영화다. 다큐멘터리 촬영감독과 친환경 유기농을 지향하는 셰프가 결혼한다. 키우는 개 때문에 계속 아파트에서 쫓겨나다 결국 사랑하는 동물을 위해 귀농을 결심한다. 그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농장을 일궈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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